행주산성의 초롱불

박남수의 ‘초롱불’

별 하나 보이지 않는 밤하늘 밑에
행길도 집도 아조 감초였다.

풀짚는 소리따라 초롱불은 어디를 가는가

山턱 원두막일 상한 곳을 지나
무너진 옛 城터일 쯤한 곳을 지나

흔들리던 초롱불은 꺼질 듯 보이지 않는다.

조용히 조용히 흔들리던 초롱불…
고양시의 대표적인 명소를 꼽으라면 아마 행주산성을 들 수 있으리라. 이곳에 가면 왜군을 물리친 우리 민족의 드높은 함성소리가 여전히 들리는 듯 하다. 그러나 주변환경은 음식점이나 유흥점으로 엉망진창으로 변해 버렸다.

박남수 시인의 대표적인 시「초롱불」은 1940년 『문장』지에 발표되었고, 그래서 일제시대의 암울했던 시대적 상황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별 하나 보이지 않는 밤”에 초롱불은 흔들거리면서도 끊임없이 걸어가고 있다. “山턱 원두막일 상한 곳”과 “무너진 옛 성터일 쯤한 곳”을 지나 시 자아의 눈에서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리곤 이제 깜깜한 어둠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깜깜한 어둠속에서도 시자아는 “조용히 조용히 흔들리던 초롱불…”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의 내면에서 여전히 불을 밝히고 있다. 별, 밤하늘, 행길, 山턱 원두막일 상한 곳, 옛 성터 등의 이미지 때문에 암울하면서도 고적한 느낌을 우리에게 던져 주지만 마음의 초롱불로 인해 반전된다. 이제 마음의 초롱불보다도 실제의 초롱불을 행주산성 주변에서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휘황찬란한 음식점들의 선전불빛보다는 더 아름답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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