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대표적 서원 중 하나
문봉서원은 조선후기 연천군의 미강서원(1680∼1864)과 함께 서울 인근의 걸출한 인재를 많이 길러 낸 서원으로도 유명하다. 이 서원에는 이른바 ‘고양팔현(八賢)’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학식과 성품이 뛰어난 조선조의 여덟 선비가 ‘배향’되어 왔는데 추강 남효온, 사재 김정국, 복재 기준, 추만 정지원, 행촌 민순, 모당 홍리상, 석탄 이신의, 만회 이유겸이 그들이다. 대개 김종직, 김굉필 등의 학풍을 이은 사림 출신들로서 도의정치를 지지하거나 벼슬을 외면하고 학문과 수도에 전념했다. 성리학을 탐구하면서 도의정치를 이상으로 삼았고 향촌에 유교적 질서를 펴는데 애를 썼다.
서원에는 여러 유형이 있었는데 가문을 빛낸 조상을 모시고 정치적인 세력의 근거지로 삼는 경우와 순수한 선현을 섬기고 숭상한 경우, 그밖에 그 고장 출신이거나 인연이 있는 현인들 여러명을 함께 모시는 경우가 있다. 이중 문봉서원은 세 번째 유형이라고 볼 수 있는데 후학들을 중심으로 세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봉서원의 8현(출생순)
◆남효온 - 단종∼성종. 학문과 절의에 힘쓰고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나중에 이조판서가 증직되었다.
◆김정국 - 성종∼중종. 황해감사로 있을 때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파직되었다. 나중에 재 기용돼 예조참판에 올랐다. 향촌 교화에 힘썼다.
◆기준 - 성종∼중종. 조광조의 동지로 개혁정치를 추진하다 기묘년에 화를 입었다. 홍문관 직제학을 지냈다.
◆정지운 - 중종∼광해. 김정국에 사사(師事)했으며 예조판서가 증직되었다.
◆민순 - 중종∼선조. 서경덕의 문인으로 사헌부 장령을 지냇다.
◆홍리상 - 명종∼광해. 임진왜란때 임금을 호종했고 대사헌과 참판을 지냈다.
◆이신의 - 명종∼현종. 형조참판을 지냈다.
◆이유겸 - 선조∼현종. 성혼(成渾)의 문인으로 참의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