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마을사람들- 효자동 엿장수 김삼두씨

▲ 빨간 모자 아저씨 오늘도 리어카를 끌고 그의 길을 가는 모습

30여 년 전부터 효자동 주변에 가위 소리를 내며 리어카를 끌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은 김삼두씨(73세) 복장은 항상 어느 옷을 입던 모자만큼은 빨간 모자를 쓰고 다닌다. 효자동은 물론 인근 이 마을 저 마을 골목을 누비며 다닌다. 그의 직업은 엿장수, 강냉이 장수, 고물장수 등으로 불려진다. 쇠붙이, 양은냄비, 구멍난 것 헌 고무신, 못쓰게 된 가재도구, 빈병 등을 엿이나 강냉이 또는 돈으로 바꾸어 주며 다니고 있다.
십여 년 지나서부터는 ‘빨간 모자’ 하면 효자동 주민들은 누구를 지칭하는 말인지 바로 알아들을 정도다. 그만큼 효자동 지역에서 빨간 모자를 모르면 이 지역 사람이 아니라고 할 정도다. 

그는 사람들을 만나면 자신보다 윗사람에게는 어디 가슈 아랫사람에게는 어디 가는 가 친구 대하듯 존댓말도 반말도 아니게 말한다. 전남광주가 고향이어서 말씨에 사투리가 섞여 그런 것이라고 한다.
1973년도 상경해서 시작한 엿 장사를 중간에 한두 해 걸렀지만 약 30년이나 됐다. 리어카를 끌고 이 마을 저 마을 돌며 남의 일에 끼어들어 참견을 잘 한다. 어떤 사람들은 싫어하며 냉대를 하지만 소용없다. 그 때마다 이제는 더 이상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말아야지 다짐도 해보지만 다음날이면 또 참견하고 다닌다. 천성적으로 타고난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마을 사람들과 쉽게 알고 지냈다.

그는 평소 점심 도시락을 가지고 다녔다. 20년 전 쌀쌀한 늦가을 어느 날 점심에 먹으려고 가져온 도시락을 펼쳐보니 차갑게 식어 있었다. 리어카를 세워놓은 인근 음식점을 찾아 더운 물 좀 얻으려고 했다. 그런 그가 측은한지 식당 주인 K씨는 편안한 마음으로 더운물과 김치와 반찬 몇 가지를 함께 주며 한쪽 식탁에서 식사를 하라고 했다. 넉살좋은 빨간 모자지만 그 한마디에 눈물이 핑 돌았다고 한다. 그날 이후 식당 주인만 보면 깍듯이 인사를 하며 다녔다. 그 뒤로도 그 마을에 갈 때마다 따듯한 물을 편안하게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인연이 된지 10여 년 정도 될 무렵, 식당 주인은 구파발 삼거리(은평뉴타운)에서 앞차 운전자가 급정차를 하는 바람에 멱살까지 잡는 싸움이 있었다. 한동안 실랑이를 버리고 있을 때 어느 사람이 앞차 운전자를 막대기 같은 종이 봉(장판지를 말아놓을 때 쓰는 종이로 된 것)으로 때리려고 달려들었다. 내가 봤는데 네가 잘못 해놓고 무슨 짓이야 그에게 위협을 가했다. 그러자 앞차 운전자는 겁을 먹고 도망치듯 가버렸다. 그리고는 식당주인에게 다친 곳이 없냐며 반갑게 대했다.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냐고 물었더니 마침 고향 사람 지물포에 잠시 있었다. 도로에서 싸우는 모습이 보여 자세히 보니 K씨가 보였다고. 좋은 일과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K씨를 도와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추운 날씨에 건네받은 더운물 한잔이 너무 고마워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그랬다"고.
 
음식점 주인 K씨도 그 당시 그 곳에서 빨간 모자 그에게 도움을 받으리라는 생각을 못했다. 이러한 일을 두고 어르신들 말씀에 작은 것이라도 남에게 은혜를 베풀면 언젠가 자신 아니면 후손에게라도 복이 되어 돌아온다는 말이 생각난다. 그리고 직업에 귀천 없다. 사람 사귀는데 겉모습만 가지고 판단하지 말고, 함부로 대하거나 평가하지 말라. 후 일 당신의 진정한 벗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진리를 빨간 모자가 깨달게 해준 것 같다고 했다.
 
빨간 모자. 그는 요즘도 지축교 다리건너 고물상에서 이른 아침 리어카를 끌고나와 효자동 지역을 다니고 있다. 그러나 지축지구 개발로 사람들이 거의 다 떠나 마을이 텅 비었다. 남아있는 마을도 새롭게 전원주택으로 개축을 하여 문을 꼭 닫고 살아 인심도 수입도 예전만 못하다. 하지만 이른 새벽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습관적으로 옛날을 그리워하며 다닌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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