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학부모회 조인숙 회장

▲ 장애를 가진 딸을 20년 이상 돌봐왔던 조 회장. 그녀가 남편을 위해 병실에 누워있을 때 얼마나 많은 걱정, 근심, 두려움이 다가왔을까.

사랑 앞에 두려움 없다고 한다. ‘두려움’보다는 좀더 ‘달콤한’ 말이 사랑과 어울릴 것 같지만 인생을 살만큼 살았다는 사람들은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안다.

사랑으로 시작된 삶이지만 산다는 것이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기에 살기위해 잡았던 사랑의 손을 놓고 싶은 순간들이 있고, 또한 그것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진짜 사랑한다면, 삶이 주는 두려움을 이길 수 있고, ‘두려움 없는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한국장애인부모회 고양시지부 회장인 조인숙씨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병원문을 열고 들어가는 기자를 금방 알아보고 환하게 웃는 조인숙씨.  “저는 신장을 떼어 주고도 너무나 행복한 사람이예요”라며, 진짜 행복하게 웃는다.

그녀는 15년 전 사망 후 장기기증을 하겠다고 서명했고, 뇌사시 망막기증에도 서명했지만 이렇게 빨리 남편에게 장기기증을 하게 될 줄은 몰랐으리라. “남편은 네 차례나 심근경색이 발병하여 촌각을 다투며 응급실로 향했고, 심장혈관을 확장시키는 스탠트를 6개를 심었어요. 그런데 남편에게는 콩팥에 많은 물혹이 생겨서 신장기능이 나빠지는 다낭성신질환이 있었어요.”

유전되는 병인 다낭성 신질환은 40대 이후에 발병한다고 한다. 콩팥 사구체에 수많은 물혹이 생겨서 신장이 나빠지고 뇌출혈, 심장판막이상 등 여러 가지 병을 동반하는데 효과적인 치료법이 없다고 한다.
그녀의 남편은 결국 투석판정을 받았지만 심장혈관에 있는 6개의 스탠트 때문에 투석도 불가능했다. 투석을 못한다면 마지막 방법인 신장이식을 해야하지만 신장이식을 기다리는 대기자가 많을 뿐만 아니라 투석을 안할 경우 신장이식 신청을 할 수도 없다고 한다. 그냥 천천히 최후의 순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어떤 선택도 할 수 없을 때 “혈액형이 달라도 신장 조직만 적합하면 이식하는 수술법이 있기는 합니다.”라는 의사의 말이 그녀의 귀에 꽂혔다. 의사 입장에서도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기에 흘리듯 한 말이었지만 그녀에게는 마지막 희망으로 들린 것이다.

“살려주세요”라며 달려들 듯 조직검사를 했고, 신장이식이 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희망이 보이는 듯 했지만 남편을 살리는 길은 굽이굽이 험난했다. 수술을 하려면 투석을 해서 혈액을 맑게 해야 하는데 그때 또 두 곳의 혈관이 막힌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다시 스탠트를 넣어 혈관을 확장시키면 신장이식은 영원히 포기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천만다행으로 풍선이 달린 특수장치인 ‘카테터’를 넣어 혈관을 확장하는 방법이 성공하여 무사히 투석을 하고, 길고 긴 한 달을 기다렸다가 9시간에 걸친 수술을 받았고, 현재 그녀의 남편은 무균실에 입원중이다.
수술로 남편은 신장 두 개를 모두 떼어내야 했는데, 자신의 주먹크기의 150g정도 하는 신장이 6.5㎏까지 커져있었다고 한다. 병원 심장과와 신장과에서 모두 포기했던 중환자가 아내의 헌신으로 새 생명을 얻은 것이다.

“단 1%라도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는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며 빨리 마음을 바꿔먹었습니다”라는 조인숙씨. 장애를 가진 딸을 20년 이상 돌보면서 본인은 아프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이 살았다.  그녀가 남편을 위해 병실에 누워있을 때 얼마나 많은 걱정, 근심, 두려움이 다가왔을까.
그러나 지금 그녀는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속 깊은 사랑, 두려움 없는 그 사랑이 남편을 살려낼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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