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과 대통령의 인연

고양과 대통령은 어떤 인연이 있을까. 현대사에 족적을 남긴 대통령들은 직간접적으로 고양과 인연을 맺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역대 대통령들 중 고양에서 태어난 이는 없다. 그리고 대통령과 인연을 찾으려고 작정하면 많은 지역에서 나름대로 크고 작은 인연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양이 수도권에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대통령과 고양의 인연은 다른 수도권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각별하다.

10.26 당시 최후까지 함께 한 고양막걸리
박정희 전대통령은 애주가였다. 그의 생애 마지막 장소였던 궁정동 안가에서 발견된 술은 시바스 리갈뿐만 아니라 고양막걸리도 있었다. 실제로 국민들에게 박 전대통령의 술이라면 막걸리로 인식되어 있다. 흑백 TV에서 모내기를 끝낸 박 전대통령이 소탈하게 같이 일한 농부들에게 술잔을 돌리던 장면이 많은 국민들에게 각인되어졌기 때문이다.

막걸리 중에서도 박 전대통령이 사랑한 막걸리는 따로 있었다. 바로 고양막걸리다. 1966년 박 전대통령이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과 함께‘한양 C.C’에서 골프를 친 후 찾은 삼송리의‘실비옥’주막에서 처음으로 마신 막걸리가‘배다리 쌀 막걸리(고양 막걸리)'였다. 이 후 고양막걸리는 박 전대통령은 1979년 서거하던 당일까지 14년간 ‘대통령 전용 막걸리’가 되었다. 고양막걸리를 빚었던 현재의 배다리 박물관 박관용 관장은 박 전대통령이 고양막걸리를 즐기던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박 전대통령을 위해 삼송리의 실비옥에서 처음 고양막걸리를 준비했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것은 내놓지 않은 채 북어, 된장, 야채와 고양막걸리만으로 주안상을 내놓았다더군요. 냉이 사발에 막걸리를 부어 들이키던 박대통령은 그 맛을 못 잊었나 봅니다. 이후 청와대에서는 고양막걸리를 매주 2말~5말 정도의 막걸리를 거의 매주 주문했습니다”

박 전대통령은 ‘한양 C.C’과‘뉴코리아 C.C’을 심심찮게 찾았다. 골프를 친후 고양 인근에서 승마도 꽤 즐긴 모양이다. 말을 탄 채 고양의 막걸리집을 배회하는 모습은 ‘긴 칼 차고 싶어서’ 육사에 입교한 냉혹한 무인 박정희의 또 다른 면모를 드러낸다.

▲ 배다리 술 박물관에 가면 1966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방문했다는 ‘실비옥’을 재현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박물관에는 이 밖에도 술에 관한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일산신도시 발표, 당시 주민들에겐 날벼락     
노태우 전대통령은 일산신도시 탄생과 깊은 관련이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1987년부터 1989년까지 3년간 집과 땅값이 해마다 20~40%씩 상승하는 바람에 당시 노태우 정부로서도 특단의 부동산 정책을 내놓아야 할 입장이었다. 부동산 값 폭등에 대처해 주택 공급을 늘려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노태우 정부의 구체화된 정책이 이른바 ‘주택 200만호 건설계획’이었다. 그리고 1989년 4월 27일 2차로 주택 개발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 중 하나가 바로 ‘일산신도시’이다.

일산신도시 건설 계획 발표는 당시 일산에 있던 주민들에게 날벼락이었다. 주민들은 대책위를 꾸리고 결사반대를 외쳤다. 일산신도시 건설 계획 발표가 있은 4일 후 급기야 목숨을 끊은 농민들도 나타났다.‘이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은 죽음으로 몰았다. 역대 대통령이 내놓은 단일한 정책 중 고양에 이만한 크기의 파장을 몰고 온 것은 그 이전에도 그 이후로도 없었다. 당시 축산을 경영했던 나상호(60)일산고등학교 총동문회장은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다른 직종에 대한 전문성이 없기 때문에‘이제 뭘 해서 먹고 살 것인가’하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70년대 후반 군시절 9사단장을 맡으면서 고양과 인연을 맺은 바도 있다. 또한 노 전대통령은 행주산성에서 자유의 다리에 이르는 46.6km의 자유로를 적극 추진했다는 것을 치적으로 생각한다고 전해진다.

인동초 실제 피었던 정발산
김대중 전대통령은 고양에 실제로 살았던 주민이었다. 1994년 아태재단을 설립하고 1995년 정계복귀를 선언한 이후 새로운 정치인생을 시작하면서 거주한 곳이 바로 고양이었다. 1997년 숱한 고난 끝에 제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정치인으로서 절정의 기쁨을 누린 곳도 바로 고양의 정발산 자락 한편에 마련한 단독주택이었다.

고양시 정발산동에서 머문 햇수는 1995년부터 1997까지 3년여에 불과하지만, 이 3년여는 정치인 김대중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1997년 10월 자유민주연합과의 야권 후보단일화를 이끌어낸 뒤 같은 해 대통령에 당선되어 최초의 평화적 여야 정권교체를 이루었으며, 대통령이 된 뒤 구사한 햇빛정책에 대한 밑그림을 구상한 곳도 바로 고양이었다. 김 전 대통령의 남북문제 특별담당을 지낸 최성 고양시장은 “고양은 김 전대통령이 정계은퇴 후 아태재단을 설립해 남북문제에 주력하면서 햇빛정책을 구상한 곳이자 대통령의 꿈을 이룬 곳”이라고 전했다.

현재 김 전대통령이 살았던 정발산동의 단독주택은 주인이 바뀌었다고 전해지지만 인적은 드물었다. 지상 2층, 지하 1층의 이 단독주택은 특이하게 양옥 형식에 기와만을 씌웠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여느 주택과 다름없는 평범한 집이었다. 이웃에 사는 한 주민은 “외국에 체류하는 주인의 여동생이 간간이 집에 찾기도 하지만 평소에는 집을 비울 때가 많다”고 했다. 세월이 많이 흘러서인지 김 전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3년 남짓 살던 시절을 함께 한 정발산동 주민들을 찾기는 어려웠다. 지금 흔적은 남아있지 않지만 한국 민주화의 큰 별이 고양에 몸담았다는 사실은 틀림없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살던 정발산동 단독주택 집. 이 곳은 김 전대통령이 햇빛정책을 구상하고 대통령의 꿈을 이룬 곳이다.

노사모 열풍의 진원지
 노무현 전대통령이 젊은 시절 고양에 잠깐 살았다는 말이 나돌았지만 취재 결과 고양에 살았다는 증언을 확보할 수는 없었다. 대신 그의 측근들은 고양에 많이 살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안희정 충남도지사, 노 전대통령 비서실 대변인을 지냈던 윤태영씨로 각각 대화동과 행신동에 살았다.

 노 전대통령이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민주당의 간판으로 서울 종로구에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지만 낙선한 후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한 시절 참모 역할을 했던 김동수씨는 “능곡을 중심으로 당시 참모들이 7명 정도 고양에 많이 살았다”며 “한 참모의 돌잔치를 참석차  능곡을 방문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지역에서 노사모 열풍의 최초 진원지 역시 고양이었다. 김현미 민주당 일산서구 지역위원장은 “2001년 경부터 지역 노사모로서는 최초로 고양파주 노사모가 결성되어 노사모 열기에 불을 전국적으로 퍼졌다”고 말했다.

내년 말 치러지는 대선 후보 중에서도 고양시와 인연을 가진 인물도 꽤 있다. 야권의 대권 후보 중에서는 제 16대, 제17대 국회의원을 고양 덕양갑 지역구에서 지낸 유시민 의원은 대표적이다. 고양시 일산갑(동구)에서 제 17대 국회의원을 지낸 바 있는 한명숙 전 총리나 마을학교장을 역임하는 등 현재까지 고양에서 활동 중인 심상정 전 진보신당 대표도 대권을 넘볼 수 있는 인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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