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초교 감사장 받은 유순애씨 “새것까지 버리는 세태 안타까워”

 

▲ 우연히 학교에 운동하러 갔다가 청소한 것에 즐거움을 느껴 학교 청소가 습관이 됐다고 하는 유순애씨
간밤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백석초등학교 조질승 교장은 출근길에 깜짝 놀랐다. 어제까지 학교 안팎에 어지럽게 뒹굴던 과자 봉지, 막대기 등의 온갖 쓰레기들이 감쪽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교문, 운동장, 건물 뒤쪽 등 사방을 둘러봐도 어제의 학교가 아니었다.

“우리 학교는 주변 아파트 주민들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도로로 가는 샛길처럼 돼있습니다. 게다가 인근 중·고등학생들도 놀러오기 때문에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었죠.” 쓰레기는 조 교장과 학생들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어느 날 아침마다 학교 주변을 청소하는 할머니가 계신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어느 분이 매일 자진해서 치우고 있었던 걸까. 조 교장은 학생을 가르쳐서라도 해야 할 자신의 일을 몰래 새벽마다 한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수소문해 찾은 선행의 주인공은 인근 아파트에 거주하는 유순애(66) 할머니였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운동 삼아 하는 것일 뿐, 이렇게 알려질 일이 아닌데….” 할머니는 한사코 자신의 행동이 드러나길 꺼렸다. 거듭된 요청에 어렵사리 말씀을 꺼낸 유순애 할머니의 ‘매일 청소 봉사를 하는 사연’은 이러했다.

지난 4월 어느 날 아침, 학교 근처로 운동을 나왔다가 쓰레기가 뒹구는 운동장을 보고 ’내가 한번 치워보자’라고 결심을 하게 됐다. 그렇게 시작한 게 석 달 넘도록 하루도 빠짐없이 청소하게 됐다. 요즘처럼 장맛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도 비를 맞으며 청소를 한다. 아침 6시부터 1시간 30분 정도 청소하고 나면 머리도 몸도 땀에 흠뻑 젖는다.

“할머니는 누구시기에 이렇게까지 열심히 청소하나요?” 지나는 사람들은 어떤 보수를 바라고 하는 일로 오해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유씨 할머니는 오히려 본인이 즐거워하는 일이라고 손사래를 친다. “오며 가며 이웃분들과 인사하고 쓰레기를 치우고 나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 없어요. 건강도 더 좋아졌어요.”

할머니는 청소를 하면서 늘 안타까운 생각을 한다. 멀쩡한 실내화·실로폰·옷에다, 심지어 먹지도 않은 우유까지 버려져 있기 때문이다. 애타게 찾을 주인을 생각하고 나뭇가지에 걸어놓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도 주인 잃은 물건들은 그대로였다.

“물건을 쉽게 버리고 잃어버려도 찾지 않는 걸 보면 안타까워요.” 버리는 게 흉이 되지 않는 세태가 속상하다는 할머니. 버려진 우유를 보면 가정형편이 어려워 큰아들에게 우유 하나를 사주지 못했던 예전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세탁공장에서 10여 년 동안 일하는 등 한평생을 고단하게 살면서 억척같이 삼남매를 키웠다. 아들 딸들은 할머니의 정성을 알았는지 모두 훌륭히 성장했다고 한다. 어려웠던 시절의 절약 습관이 몸에 밴 할머니는 요즘도 버스 서너 정류장 정도의 거리는 걷는다.

 유씨 할머니는 며칠 전 난생처음으로 감사장을 받았다. 백석초등학교에서 준비한 것이다. 할머니는 집 안 텔레비전 위에 감사장과 함께 받은 상품권도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당연히 아들, 며느리,딸, 손주들에게 자랑거리가 됐다.

“살면서 이런 영광이 어디 있을까요? 조그만 일을 이렇게 칭찬해주시니 너무 감사해요. 여기 사는 동안은 계속 해야지요.” 할머니의 말을 들은 조 교장은 “감사장으로 인해 더 열심히 청소하실까 걱정된다”고 했다.
“아무 생각 없이 쓰레기를 버리던 학생들도 할머니의 선행을 듣고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틀림없이 좋아질 거라 믿습니다”라고 조 교장은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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