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년 해로한 신광철 이정선 부부


“두분이 결혼은 언제 하셨어요?”어르신은 한참 기억 저편을 더듬는다. “4252년” 단기로 대답하실 만큼 어르신의 시간은 먼 곳에 닿아있다. 올해 93세인 신광철 옹. “식기 전에 드시라”며 막내아들(신익선 51세)이 얹어준 고기에 소주 반주를 한잔 했다. 옆에 수줍게 앉아있는 이정선 할머니(90세)에게 말타고 장가들어 해로한지 올해로 71년째다. 동네 사람의 중매로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한달 만에 신접살림을 꾸렸다. ‘고양군 벽제면 사리현리 새터마을’의 새색시는 3남 3녀를 낳고 키우느라 머리엔 하얗게 서리가 내렸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어디가 그렇게 좋으셨어요?” “다 좋지. 근데 그런걸 왜 물어?” 사진기와 질문을 한사코 피하는 할머니는 내내 수줍다. 두 분의 신혼은 달콤했을까? 짖궂은 질문에 할아버지의 대답은 싱겁기만 하다.

“그런게 어딨어. 새벽부터 일어나 일하기 바쁘고, 집안 어르신들 무서워 아이를 안아보지도 못했다”며 애정표현은 꿈도 꿀 수 없었다고 하신다. 할아버지의 부친은 성석초등학교 초대 육성회장을 고 신성묵씨다. 숨소리조차 제대로 낼수 없었을 엄한 교육자 집안의 분위기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일제시대 때는 땔감이 없어 이끼를 걷어다 땔 정도였다니, 신혼의 달콤함은 멀고 배고픔은 가까웠으리라.

“할머니와 오랫동안 사이좋게 지내시는 비결은 뭐에요?” “큰 소리 내지 말고 서로가 잠자코 넘어가야지. 난  아무리 술에 취해도 양말에 진흙 묻혀 본 적 없어. 잠은 꼭 집에 들어와서 잤지”라며 할아버지 나름의 방법도 일러 주신다.

“영감이 술을 많이 먹고 와도 집사람이 큰 소리를 내면 안돼. 그게 중요해”

할아버지, 할머니가 부창부수다. 그러나 장날이면 먼 곳에 서는 장에 나가  따뜻한 호떡이 식을까, 가슴에 품고와  할머니에게 내밀 정도로 할아버지는 로맨티스트였다. 보청기를 제외하면 아픈 데 없이 건강하다.

장수에 도움을 준 음식이 뭔지 여쭤보니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가리는 음식 없이 다 잘 먹는다고. 근처에 사는 아들, 딸, 며느리들은 격의 없이 자주  식사를 한다.

설문동 할아버지의 집안 행사에는 직계가족만 50여 명이 모인다. 곧 증손주 탄생도 앞두고 있다. 딸 같은  며느리들의 시부모 자랑은 끝이 없다.

“두 분은 절대 남 흉보는 일이 없다. 싸우신 걸 본적도 없다. 두 분을 본받아서인지 남편도 무척 가정적이다.”“어머님은 대가족 모두를 품어 안는 큰 마음을 가지셨다. 음식 솜씨도 좋고 남들에게 많이 베푸신다. 지금은 편찮으셔서 못하시지만 아버님 옷도 직접 지어 주셨다. 이런 아내를 두고 아버님이 한눈 팔 일이 없었을 것이다. 며느리에게도 나쁜 소리 하신 적이 없다.  아들에게 잔소리하신다. 참 지혜롭고 현명하신 분이다. 배울 점이 많다.”

딸들 또한  올케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는다. “두 분의 장수 비결은 다 아들, 며느리의 보살핌 덕이다.”

‘나이듦’의 모습은 다양하다. 아들, 딸, 며느리의 존경과 애정을 듬뿍 받고 있는 두분의 모습에서 제대로 ‘나이듦’이 어떤 것인지 답을 본 듯도 하다. 한사코 둘째 아들의 내민 등을 거부하시고 지팡이에 의지해 느릿느릿 걸음을 내딛는 할머니의 모습에서는 ‘단호한 자존심’이 느껴진다. 71년을 함께 한 노부부는 할머니가 지으신 하얀 모시적삼을 똑같이 나눠 입고, 소박한 들꽃같은 사랑으로 오늘도 함께 하고 있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