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고양국악원 원장 & 홍석 풀빛출판사 대표

 

고양에는 많은 예술인들이 살고 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한 예술인들도 있지만 이름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아도 열정과 실력은 쟁쟁한 예술인들도 적지 않다. 고양국악원 김정희 원장이 그렇다.

김정희 원장(56세)은 타고난 춤꾼이다. 해남 우수영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김정희 원장은 낮에는 농악대를 따라 온 종일 뛰어놀았고 달뜨면 강강술래를 췄다. 춤과 가락을 배울 필요도 없었다. 놀이가 가락이었고 춤이었다. 학창시절도 국악과 춤으로 보냈다. 스물다섯,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을 때 춤을 잠시 멈춘 적이 있었다. 이유도 없이 온 몸이 너무 아팠고 우울증까지 겹쳐 몸을 가눌 수도 없었다. 살 길을 찾고 싶었다. 벼랑 끝에서 다시 붙잡은 것이 춤이었다. 춤은 다시 놓을 수 없는 운명처럼 불붙었다.

이제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딸 보람이를 데리고 본격적인 춤을 시작했다. 무형문화재 송포호미걸이 김현규 선생으로부터 장구, 꽹과리, 소리를 배웠고 살풀이춤 준보유자 정명숙 선생으로부터 살풀이춤을 배웠다. 춤은 물론 소리 악기까지 고루 익힌 김 원장은 고양의 무대에도 자주 올랐고 미국과 스페인 등 해외 교포를 위한 공연도 정기적으로 가졌다.

“외국에 가면 우리 춤과 가락이 크게 환호 받는데, 정작 우리 안에서는 좋은 대우를 못 받는 것 같아요. 피아노 있는 집은 많아도 장구 있는 집은 없잖아요. 전통예술을 하는 저희 입장에서 보면 서운하고 안타까운 일이 많습니다.”

김정희 원장은 요즘 후진을 양성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딸 보람이도 대학과 대학원에서 무용을 전공하고 엄마를 따라 나섰다. 춤 혹은 전통예술로 돈 버는 일은 포기했다. 강의료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아름다운 우리 예술을 익히고 확산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면, 돈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김 원장이 마음껏 춤을 출수 있도록 가장 열심히 응원하는 사람은 바로 남편이다. 남편은 풀빛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출판인 홍석(57세) 대표이다. 홍석 대표가 ‘사회과학 서적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풀빛’에 몸담은 지 30여년, 풀빛출판사 창업자인 사촌형 나병식 회장이 연일 투옥되면서 대표자 명의를 빌려준 것이 인연이 되어 풀빛을 맡게 됐다. 풀빛은 2000년 어린이 책으로 눈을 돌리기 전까지는 운영이 매우 힘들었다. 윤정모의 ‘고삐’ 등 100만부 베스트셀러를 낳기도 했지만 러시아 사회주의체제가 무너지면서 사회과학 출판도 길고 긴 암흑기를 맞아야 했다. 대부분 이미 계약된 원고였기 때문에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책을 발간했고, 또 러시아가 무너졌다고 발 빠르게 출판 방향을 바꾸고 싶지도 않았다.

홍석 사장은 아내 김정희 원장의 춤에 푹 매료된 전통예술 애호가이기도 하다. 김정희 원장이 송포호미걸이 김현규 선생한테 소리를 배우고 첫 무대에 오를 때, 남편은 아내와 함께 공연단 130명의 공연복을 손수 빨았고 짐을 옮기고 지키는 짐꾼 역할을 맡았다. 공연비용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무대 뒤의 막노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내의 춤을 온 몸으로 지원했던 그였지만 출판사가 정말 어려울 때는 ‘돈 많이 드는 춤’을 그만 두었음하고 바라던 적도 있었다.

“40대 때, 출판사가 너무 어려울 때 한번 크게 다툰 적이 있었어요. 무용가의 길을 가려면 돈이 너무 많이 들고, 난 출판사만으로도 힘에 벅차니 무용이든 가족이든 한 가지를 선택을 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아내는 그 때 정말 냉정하게 한마디 하더군요, 무용을 하겠다고.”

홍석 사장은 그 뒤로 아내의 길에 대해 이의를 단 적이 없다. 요즘은 ‘풀빛’이 다시 활기를 찾았다. ‘행복한 청소부’ 등 풀빛의 어린이 책이 꾸준히 팔리고 있는 덕분이다. 남편은 아내의 60세 공연을 정말 성대하게 열어주겠다고 단단히 마음먹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다. 함께 여행도 가고 데이트도 즐기고 쉬엄쉬엄 하라는 것. 그리고 당분간 그만그만한 무대에 오르지 말고 차곡차곡 쌓았다가 아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대에 한번 올라 보라는 것이다.

“김 원장은 엄청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춤 하나 배울 때면 잠도 않자고 혼자 춤을 춥니다. 다른 일은 다 양보하는 너그러운 사람이지만, 춤에 대한 욕심은 대단합니다. 그 노력과 실력에 비해 명성이 뜨지 못한 것이 안타깝고 미안합니다.”

더 크게 밀어야 더 클 수 있다는 무용계의 현실을 익히 알고 있는 남편은 늘 마음이 무거웠다. 김정희 원장은 남편의 출판사가 그렇게 어려웠던 적이 있었는지도 몰랐다며, 그러나 알았다고 해도 춤을 놓지는 못했을 거라고 말한다. “사람도 잘 못 사귀고 내성적이며 별 재주도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춤밖에 없다”고 말하는 아내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남편. 인생의 절정을 성실하게 넘기고 예순을 맞을 준비에 들어간 책 만드는 남편과 춤추는 아내. 푸근하고 아름다운 부부의 절정은 이제 막 시작된 듯하다. 발행인 이영아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