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매방·강선영 맥잇는 춤꾼중의 춤꾼 안장금씨

▲ 안장금씨는 지방무형문화재 제9호 대구 살풀이 춤을 이수하고, 중요 무형문화재 제97호 이매방 살풀이 춤을 전수받았다.
이매방·강선영 맥잇는 춤꾼중의 춤꾼 안장금씨
대화동에 ‘난향다락원 찻집’ 열고 인생2막 도전

“차와 춤을 좋아하는 분들이 모이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전통춤꾼 안장금(51세)씨가 찻집을 열고 춤과 차의 행복한 결합을 시도한다. 평소 즐기던 전통차를 제공하면서 춤 레슨도 함께 한다는 게 안씨의 생각. 당연히 찻집은 전통춤연구소도 겸하고 있다. 그래서간판도 ‘난향 다락원, 안장금 전통춤 전통차연구소’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던 지난달 27일 대화동 백병원 정문 근처에 있는 난향다락원 찻집에서 춤꾼 안씨를 만났다. 찻집은 편안하면서도 품위가 있었다. 춤꾼의 공간답게 공연 때 쓰던 노리개며 공연 사진 뿐 아니라 다기·괘종시계같은 세월의 향기가 묻어나는 소품들도 구경할 수 있다. 마치 작은 전시관에 온 듯했다.

안씨는 지방무형문화재 제9호 대구 살풀이 춤을 이수하고, 중요 무형문화재 제97호 이매방 살풀이 춤을 전수받았다. 내친김에 중요무형문화제 제92호 강선영 태평무와 평안남도 지정문화재 제1호 평양검무까지도 이어받는 등 춤꾼 중에 춤꾼으로 손꼽힌다. 일산 노인복지관에서 10여 년 동안 전통춤을 가르쳤고 대화동에서 ‘어울림 전통춤 연구소’도  6년 동안 운영했다.

안씨는 인공조미료에 길들여진 우리 입맛처럼, 춤도 배우기 쉽게 흥미위주로 흘러가는 세태가 못마땅하다. “이매방·강선영 선생님은 70~80을 넘은 분들인데, 그분들의 춤을 원형대로 이어야 할 문하생들이 자기식대로 해석하다보면 춤이 왜곡되기 마련이지요. 전통은 전통대로 지켜야 합니다.”

 부드러운 인상과는 달리 생각과 말에서 우직함이 느껴진다. 그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사람일까.

안씨의 고향은 1004개의 섬으로 이뤄져 ’천사의 섬’이라고 불리는 전남 신안군이다. 섬에서는 드물게 기와집에 살 정도로 집안은 부유했다. 부잣집 막내딸로 키도 크고 리더 역할을 잘해 친구들은 나중에 사회운동을 할 사람으로 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은행원이 인기직업이었던 당시 분위기 탓도 있었지만, 아버지같은 오빠의 불호령으로 목포여상에 들어갔다.

 여상을 다니면서도 관심은 늘 딴 데 있었다. 장구를 시작으로 꽹과리·북·징 등 사물을 배우면서 본격적으로 전통문화의 매력에 빠져들게 됐다. 한동안은 디스코·고고 등 서양춤에 빠진 적도 있었지만 곧 시들해졌다. 안씨가 본격적으로 춤을 춘 것은 결혼한 뒤부터다. 바로 위 언니가 위암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우울증에 빠졌다. 그때 남편은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한번 해봐라”고 권했다. 그래서 시작한 게 춤이다. 처음에는 마지못해 시작했으나 2~3년 하면서 점점 빠져들게 됐다. 어려서부터 가지고 있던 끼가 비로소 빛을 보게 된 셈. 쟁쟁한 선생님들께 춤을 전수받고 교사자격증까지 얻으면서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안씨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안씨의 어머니는 섬에서 서울 막내딸을 만나러 오는 길은 멀고 험했다. 황톳길을 걸어 배를 두 번 갈아타고 다시 기차를 타야하는 긴 여정이다. 어머니는 서울역에 도착하면 출발할 때 입었던 편한 옷을 한복으로 곱게 갈아입었다.

 “제가 품위없는 걸 싫어해요. 제 성격을 아시는 어머니는 꼭 그렇게 하시는 거에요. 우리나라는 옷매무새로 사람을 대하잖아요. 오죽하면 의·식·주라고 하겠어요. 저는 교만할 정도로 자존심이 강해요. 그게 저를 지탱해준 힘이에요.”

 안씨는 흙 예찬론도 빼놓지 않았다.  “흙이 건강해야 사람이 건강한 거에요. 오염되지 않은 좋은 땅에서 자란 재료는 구태여 조미료를 넣지 않아도 맛이있어요. 흙이 정말 중요해요.”

찻집 입구에 주인장의 마음이 느껴지는 문구가 시선을 끌었다. "아침엔 황제쌍화차로 어제의 피로를 푸시고 점심엔 황후묵국수로 품격있는 하루를 만드시고 저녁엔 대추생강차로 보람찬 하루를 갈무리 하소서."
전통춤꾼 안장금이 ‘전통차의 대장금’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