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마을에서 태어나 58년을 함께한 죽마고우들이 지역발전을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동산동 53-123번지 신덕희씨와 58-4 김광호씨는 큰골, 194-1 유병희씨는 새말에서 태어나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세 사람은 결혼 후 중년이 된 지금도 이 마을을 지키며 살고 있다. 당시 마을 친구들은 30여명 정도 됐다.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다들 직장을 따라, 혹은  결혼하면서 분가해 고향을 떠나 살고 있다. 지금은 동갑이자 초교동창들인 전성원씨와 이재근씨 등 5명만 남았다. 이들을 만나 지나온 추억의 나날들을 들어본다.  
“초교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식목일 학교 인근에서 식목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우리들은 식목행사에 가져갔던 삽, 괭이 등을 들고 앵봉산 기슭으로 칡을 캐 나누어 먹었다. 버찌(벚꽃열매)를 따 먹으려고 뱀골 산골짜기 깊은 곳까지 들어가 손과 입가에 까만 칠을 해가며 따 먹으러 다녔다.”(신덕희씨)

“가끔은 뱀골 골짜기 개울에서 가재와 물고기를 잡았다. 한동안 정신없이 돌맹이를 들추고 가재를 잡았다. 어느 때 돌 밑에 뱀이 두 세 마리가 따리(머리에 무거운 것을 운반할 때 아프지 말라고 얹고 다니던 것)를 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치며 단숨에 마을까지 달려 내려오기도 했다.”(김광호씨)
세 사람 모두 “학교에서 가난한 아이들에게 주던 강냉이(옥수수 죽 가난한 아이들에게 복지차원에서 무상급식) 죽이 생각난다. 집에서 가져간 도시락은 쉬는 시간에 다 먹고, 강냉이 죽을 타 먹으려고 줄을 서기도 했다”며 당시를 추억했다. 그 시절에는 가난하다고 흉보거나 손가락질 하지 않았다. 서로 부끄러워하거나 차별도 하지 않았다. 다만 배식을 감독하던 엄한 교사들에게 혼이 나거나 쫓겨나기도 했다. 운이 좋은 날은 빈 도시락에 강냉이를 한 가득 받아먹을 수 있었다고. 나중에 누룽지에 가까운 것이 맛이 더 좋았다.

유병희씨는 “우리 마을 인근에 고아원(보육원)이 있었다. 우리는 그 애들과 어울리며 함께 등, 하교를 했다. 고아원 애들은 간식으로 우유가루를 밥에 찐 것과 반찬으로 굴비 말린 것을 가져오기도 했다. 우리는 그 애들이 없는 필요한 것과 바꾸어 먹기도 했다”고 추억했다. 그 당시 우유 찐 것과 굴비 말린 것이 그렇게 맛이 있었다.

방학 때는 조기회라는 것이 있었다. 한 마을에 사는 같은 학교 학생들이 모여 상급학년이 인솔하여 아침체조와 마을 청소 등을 했다. 학생들끼리 자체적으로 이른 아침에 상급학생들의 모여라 소리가 들리면 조기회 장소로 모였다. 유봉희씨(64세)는 미군부대에 다녔는데 그곳에서 태권도 배워 쉬는 날이면 조기회에 올라와 태권도를 가리켜주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한때 창릉동 뚝방 옆 닥광(단무지)공장 방에서 몇 명이 자취를 하기도 했다. 이 때 삼송리 주유소 밑에 양계장과 경창마을 등에서 닭서리(남의 닭을 몰래 가져다 잡아먹는 일. 그 당시에는 들키면 혼내며 보내주셨다)를 하다 들켜 이리 저리로 도망다니던 생각이 난다고. 

신덕희씨는 결혼을 하고 1982년부터 약 10여년 동안 사업을 하며 직장에 출?퇴근을 했다. 그 후 마을에서 삼송지구 주민기피시설 대책위활동을 주민들과 함께 했다. 2009년 7월부터는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고 주민들과 시작한 일은 동산동 발전을 위해 봉사하려고 동산동 도시개발 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김광호씨는 1982년 6월부터 88년 12월까지 마을 이장을 봤다. 현재는 구 이장단 모임의 총무를 보고 있다. 그리고 이번 2011년 8월부터 신덕희 씨 후임으로 동산동 도시개발 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맞게 되었다. 신덕희 씨는 친구이자 고문으로서 뒷받침을 하기로 했다.

유병희씨는 1989년 1월부터 3년간 이장을 봤다. 고양시가 되면서 통장을 보면서 창릉동 통장협의회장을 지냈다. 1998년 고양시 3대 시의원에 당선되어 지역사회에 많은 봉사활동을 했다. 지금도 주민기피시설 대책위원장으로서 마을 통장들과 부녀회와 관변단체 회원들 등과 함께 봉사활동을 있다.

이와 같은 기나긴 추억들이 어느새 58년의 세월이 흘렀다. 중년이 된 지금도 우리는 자주 만난다. 아니 눈만 뜨면 보게 된다. 그런 마음에서 지금은 지역사회 일꾼으로서 서로가 돌아가면서 중책을 맏아 지역발전을 위한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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