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출발, 생태 자치도시로 상종가 순천시

물길찾기 사업 아이디어를 낸 이옥기 전 주민자치위원장.
생태도시 순천만으로 잘알려진 전라남도 순천시. 사계절 다른 모습으로 ‘깔때기’(갈대)가 기가 막히다는 순천만에는 연간 30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다고. 순천시는 마을만들기 사례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이야기되는 도시다. YMCA등 시민단체들과 효과적으로 역할분담을 해 각 읍면 등 지역단위의 상황에 맞게 커뮤니티 비즈니스,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공모사업 등을 진행해왔다. 다른 지역에 비하면 오히려 출발이 늦은 순천시가 지속적인 성과를 내면서 시민활동가들을 키워내며 이름을 날릴 수 있었던 것은 순천시의 적극적인 지원과 지역상황에 맞는 끊임없는 교육이었다. 

“이번에 ‘생태도시 순천시’ 자체를 특허로 신청하면서 300만그루 나무 심기와 모든 도로의 20m 완충녹지 조성 사업을 하고 있어요. 사업을 우선 시민들에게 알리고 공원에 모이게 했습니다. 주민들이 1시간동안 회의를 거쳐 1000만원 예산 배정부터 입찰, 진행 과정에 대한 것까지 스스로 정해왔습니다. 예전 같으면 시에서 그냥 1000만원 주고 나무 심으라고 했을텐데 그만큼 의식이 달라진 거죠.”

순천시청 조용민 자치행정과장의 설명이다. 대부분의 자치센터들이 1999년~2000년 사이에 설치됐지만 순천시는 2003년에 조례가 제정돼 24개 읍면동에 순차적으로 들어섰다. 출발이 늦었지만 서두르기보다는 다른 지역 사례를 차근차근 검토하며 ‘하드웨어’인 공간보다는 사람들에 주목하며 3개동을 우선 선정해 주민자치센터를 출발했다.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주민교육을 시작했는데, 당시 선행 사례였던 광주YMCA 좋은동네만들기 시민교육 강사를 초청해 사례설명을 듣는 방식이었다. 이때부터 마을만들기를 담당해왔던 공무원  양효정씨(현 자치행정과 정겨운 마을 담당 주사)는 당시 시민단체와 함께 사업을 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순천시 에코 가게.
교육에 역점, 마을별 자치아카데미
“당시에는 지역시민단체들이 주민자치센터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어요. 항상 큰 이슈나 사안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기도 했고, 행정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이 있었지요. 공무원 사회도 마찬가지로 NGO들에 대한 불편한 입장이 있는데 그건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순천시가 마을만들기 사업에서 가장 역점을 두었던 것은 바로 교육이다. 처음에는 강사 초청 방식으로 교육을 진행했으나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어서” 2005년부터 마을단위로 주민자치 아카데미를 시작하게 됐다. 순천시청 양효정씨와 당시 순천YMCA에서 일했던 김석 순천시의회 의원이 함께 타 지역 사례를 돌아보며  학습모임인 주민자치연구회도 구성하고, 광주YMCA에 지원을 받아서 주민자치대학이라는 이름으로 2년 동안 교육을 하게 됐다. 저녁에 하루 2시간씩 6회씩 10시간을 각 읍면동 위원회와 주민들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1, 2강은 주민자치, 마을만들기 사례 등은 공통으로 하고, 3, 4강은 도시계획 전문가 초청 교육 등 각 지역 요구에 맞게 진행됐다. 2005년 교육사업과 함께 공모사업도 시작됐다. 교육을 먼저 받은 동을 중심으로 2년후인 2007년에는 심화교육이 진행됐다.

“10년을 내다보는 교육을 했습니다. 장기적 관점에서 시간, 공간적 확장을 고민했죠. 2009년에는 공공디자인 학교로 전환된 지역도 있습니다.” 공무원 교육도 병행됐다. 주민자치, 마을만들기 담당자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시장, 부시장, 5급 공무원들도 주민자치위원들과 함께 진안, 전주까지 가서 사례를 돌아보았다.

순천시청 조용민 주민자치과장.
시장 부시장 5급 공무원까지 사례교육
순천 마을만들기는 시민사회단체나 지역에서 출발하는 다른 지역과 달리 순천시가 공무원TF팀을 꾸리고, 순천YMCA, 순천YWCA, 그린순천21, 순천 KYC 등 시민단체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점을 주목해볼만하다. 지금의 고양시의 상황과 많이 닮아있다. 주민자치위원회 등 동별 조직이 잘 움직이는 것 같지만 실질적인 자치역량이 부족한 고양시가 현재 가닥을 잡고 있는 방향이기도 하다.  

이처럼 교육을 기본에 놓고 민과 관이 파트너쉽을 만들어왔기에 다음 단계로의 발돋움이 가능했다. 위기도 있었다. 마을만들기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던 2005년 순천시장 비리문제로 YMCA가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시민단체와 관의 갈등이 생겼고, 사업백지화까지 검토됐다. 그러나 곤고한 신뢰관계를 통해 위기를 극복했고, 커뮤니티 비즈니스 등 새로운 마을만들기의 모델을 만들어오고 있다.

순천시 덕연동이 하고 있는 낡은 자전거 수리 사업.
시민단체와 집행부와의 불편한 관계를 풀어내는 고리도 역시 교육이었다. 함께 포럼을 만들고, 시민단체 실무자들까지 교육에 참여시켰다. 새마을운동협의회,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바르게살기협의회 등 기존 단체들까지 설득해나가고 있다. 

초기 주민들을 추동하는 일은 어떻게 했을까. 양효정씨는 “처음 어느 정도의 관주도와 강제는 필요해요. 대신 다양한 채널을 통해 사람들을 끌어내고 상황에 맞는 교육을 배치해 역량이 길러질 수 있도록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모든 해결고리를 교육과 지역별 학습공동체에서 찾고 있었다. 출발은 기존 단체, 관변 조직, 강제동원 방식에 의존하더라도, 가능한 다양한 시민들을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을 했다는 얘기다.

지금도 각 동별에서 요구하는 교육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도록 코치하는 역할을 시 주민자치과 정겨운 마을팀에서 한다. 필요하면 지역단체 뿐아니라 서울 등 다른 지역의 전문가, 단체들도 연결시킨다고.

순천시는 철저하게 ‘차별적’ 지원을 한다. 잘하는 곳은 ‘팍팍’ 밀어주고, 좀 더디 가는 곳은 교육이나 컨설팅을 도와준다. 인구가 많고, 커뮤니티 비즈니스 등 새로운 사례를 만들어 주민자치박람회 등 각종 행사를 휩쓸고 있는 덕연동은 예산지원도 크고, 교육 프로그램의 수준도 높다.

지역에서 국장이라고 불리는 양효정 담당.
출발을 누가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순천시 담당자들은 처음부터 무조건 사람을 바꿔낼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초창기에는 주민자치위원회 권한이 부족하다는 판단에서 조례를 개정하고, 주민자치위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그런데 통장협의회 등 다른 단체들과 갈등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마을만들기 조례는 2008년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결국 마을만들기가 커뮤니티 비즈니스라는 경제적 개념까지 연결되어야한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죠.”

10년후 우리동네 상상프로젝트 
순천시는 2005년, 2006년 순천시 14개 읍면동에서 개최된 주민자치대학 평가를 통해 지속적인 주민자치 활동이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중장기 발전계획인 ‘희망순천2020’에 대한 공유를 위해 보다 작은 마을단위에서부터 비전을 만들기 위한 ‘10년후 우리동네 상상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10년후 우리동네 상상프로젝트는 읍면동마다 마을 비전을 주도해가는 핵심 일꾼을 양성하는 ‘상상 리더’ 과정과 ‘마을 비전’과정으로 구분된다.

상상 리더 과정에서는 주민자치 활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일꾼들을 양성함과 동시에 순천시 주민자치 일꾼이 갖추어야 할 소양과 사명을 10가지 약속으로 만들어냈다. 마을 비전 과정에서는 읍면동별 순회를 하며 마을 자원분석, 마을 비전 수립 워크숍 등을 통해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동네 이야기를 나누고 10년 후 변화된 동네를 상상하며, 분명한 목표와 구체적인 사업내용을 주민들이 공유하게 됐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주민들의 합의와 검토과정을 거쳐 마을 비전이 만들어졌다. 고, 12월 “10년후 우리동네 상상 페스티벌”에서 마을별 비전경진대회와 전시회를 연 뒤 순천지역의 주민자치 활동을 알리고 평가하는 자리를 가졌다.

아직도 주민들이 직접 마을을 꾸려가는 일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순천시는 출발을 누가 했거나 결국 비전을 만들고 직접 마을을 만들어가는 주체는 그 지역 주민들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초기 소극적이었던 주민들은 열정을 갖고 끊임없이 설득하고, 보여주고, 교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변화됐다.

순천시에서도 가장 활발한 주민자치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덕연동은 새 주민자치위원 모집에 60~70여명이 신청을 한다. 위원 선정을 위해 위원회가 꾸려지고, 지원자가 많으니 언제나 새로운 사람들로 넘쳐난다. 새 아이디어가 모이고, 다양한 주민들이 교육을 통해 변화될 기회도 많아지는 셈이다. 늦은 출발을 통해 다른 지역의 사례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우직하게 8년여를 지켜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순천시 벤치마킹은 고양시청 자치행정과, 시민단체 회원들과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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