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미회 경기북부지회(농협대) 김영재 회장

 

▲ 옥상정원을 가꾸는 김영재 회장은 “소박한 멋이 깃든 이곳 ‘꽃마루’가 꽃을 좋아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어울림 되었으면 한다”라고 했다.

 

"꽃과 함께 더불어 사는것이 인생의 행복입니다."

‘푸르미회’는 경기 농림진흥재단에서 주관하고 시행하는 조경가든 대학의 수료생들로 구성됐으며 실내외 조경을 통한 도민의 녹색운동을 보급, 전개하는 데 목적을 두고 2008년 4월에 창단됐다.

5개 지회로 구성되어 있으며 동부지회(신구대), 서부지회(안산공과대), 중부지회(성균관대), 남부지회(한경대)이고, 북부지회(농협대)가 우리 고양의 소속이며 김영재(64세) 회장이 세심하게 꾸려가고 있다.

부친이 서울대 음악대학 교수여서 학교 내 사택에서 살았는데 주변이 온통 푸른 숲이어서 그 속에서 자연을 친구삼아 어린 시절을 보냈다. 꽃을 좋아하는 아들(김 회장)을 부친께서는 수원 농촌진흥청으로 6살 때 데려갔고, 그곳의 식물들을 보여주고 칸나를 한 뿌리 얻어줬다. 이때부터 꽃에 더 관심을 두기 시작했으며, 호미와 물뿌리개를 들고서 백일홍, 봉선화 등을 심고, 닭, 오리 등도 키웠다.

김 회장은 “군대에 입대할 때도 꽃씨를 가져갔다”라고. 훈련병 시절 막사 옆에 가져간 꽃씨를 심었고, 5일 후 발아하여 한 달 보름 동안 보면서 고된 훈련과정을 견뎌냈다. 처음엔 주변에서 낯설게 여겼는데 나중엔 식물이 자라는 것을 보고 다 같이 기뻐했던 적이 있었다며 그때를 회상했다.

꽃씨를 심었던 것과 관련하여 미화작업을 담당하였고, 가는 곳마다 기쁘게 꽃을 접하게 되었다. 미군부대에서 카투사로 근무하며, 또 꽃씨를 심었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이 잡초를 뽑지 않고 웃자란 것의 윗부분만 잘라주며 뿌리는 뽑지 않았다고 한다. 굳이 잔디를 심지 않아도 땅이 단단하게 다져져서 빗물에 흙이 쓸려가지 않는 것을 그 시절에 알게 됐다.

대자연 속에서 작은 야생화와 잡초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이치를 깨달으며, 이화여대 행정직에서 34년(2007년 정년퇴임) 동안 근무하던 시절에도 늘 꽃과 함께 생활했다.

김 회장은 1977년 1월 어느 날 함박눈이 내리던 날 교외선을 타고 능곡역에 내렸는데, 허허벌판에 초가집 복덕방이 눈에 들어왔고, 들어가서 땅을 사고 싶다고 말하였다. 야산 너머 있는 솔밭 부근의 허름한 농가주택을 소개해주어 그해 4월에 지금의 토당동에 정착하게 됐다.

이곳 올 때도 개나리 삽목용을 1천 개를 가져와서 울타리로 식재하고, 집 부근과 황망한 시골동네를 가꾸기 시작했다. 꽃뿐만 아니라 1989년 개발되기 전까지 토끼 300마리, 개 20마리, 비둘기, 닭 등을 키우며, 볏단을 구입하여 가을에 노적가리처럼 3천 단을 쌓아두었는데, 새들의 먹이가 되고, 동네 아이들의 신나는 놀이터가 됐다.

김 회장은 “7살 때 미국에 이민 간 K는 볏단과 놀았던 기억으로 그곳에서도 전원생활을 하고 있다”며 싸이월드를 통해서 고마움을 최근에 나타낸 적 있다고 했다. “꽃과 나무를 기른다기보다는 가족처럼 살아가는 것”이라고 하는 김 회장.

1977년에 단풍나무와 벚나무 씨앗을 심었는데, 34년이 흐른 지금은 아름드리나무가 되었고, 메타세쿼이아도 30년이 넘게 가족처럼 함께 살았다.

개발과 함께 현대건물로 신축된 보금자리는 지금도 아침저녁으로 새들(까치집 7개)이 100여 마리 날아온다. 마당과 콘크리트 옥상엔 도심 속 화단이 만들어져서 섬초롱꽃을 비롯한 야생화들이 한가득 피어나고, 마치 어느 나라의 ‘성’처럼 담쟁이덩굴도 담벼락에 자연의 모습을 드리웠다.

퇴직 후 더 구체적인 화훼 공부를 위해 고양시 환경농업대(2기 화훼과), 농협대 최농경(13기 화훼과), 조경가든대학을 했고, 농촌진흥청이 진행하는 다양한 교육(농기계교육, 전통술빚기, 전통음식, 원예과정)을 했다.

‘푸르미회’ 회원들과 친목과 정보교류 및 조경가든 심화과정을 위해 살고 있는 공간을 기꺼이 배려하여 ‘꽃마루’라 칭하며 내놓았다. 이곳은 센터 역할을 하며 틈틈이 교육과 실습장으로 이루어지는 중요한 곳으로 자리매김 됐다. 김 회장은 “소박한 멋이 깃든 이곳 ‘꽃마루’가 꽃을 좋아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어울림 되었으면 한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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