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시작되어 미국 등으로 확산되고 있는 일명 쇼핑약탈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10대 20대 젊은이가 수십 명씩 떼 지어 전자제품 대리점이나 옷 가게를 턴 뒤 불을 지르는데, 그들은 주로 평소 사고 싶었던 물건을 파는 이웃 가게들을 노려 쓰레기통, 휴대전화, 노트북 등을 약탈해 간다.

이 문제를 전문가들은 반사회적 파괴행위-반달리즘-로 보고 있다. 소비를 통해 존재감을 확인하는 대량소비 사회의 욕구불만이 약탈로 드러난 것이라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현재의 쇼핑약탈을 심각한 가족 해체 현상과 도덕교육의 부실에서 그 원인을 찾는 사람들도 있으나 필자는 자본주의의 결함이 더 큰 원인이 아닌가 한다. 물산의 풍요로운 진열은 소비자의 욕구를 부채질 한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이뤄지는 현 시대 속에서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도 가질 수 없는 자의 고통은 가진 자들이 마음껏 가짐으로서 얻는 행복에 반비례하게 된다.

상대적 빈곤에서 오는 고통이기에 당사자가 실업자냐 아니면 반듯한 직장을 가졌느냐나, 부모가 가난하냐 아니면 부자냐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상대적 빈곤은 수치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욕구불만을 충족시키기 위해 기존 질서를 무시하는 행위도 나오게 된다. 현 쇼핑약탈처럼 엇나간 소비 본능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부 격차가 커질수록 이런 문제는 점점 더 드러나게 되어 있다.

스스로의 능력만큼 부를 모을 수 있고 이 부를 바탕으로 행복하게 산다는 자본주의의 기본정신이 어찌 보면 아주 공정한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데 원인이 있다. 자본주의가 정말 공정한 행복창출의 구조가 되려면 인간이 똑 같은 자본으로 인생을 시작하게 해야 하지만 현재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맨손으로 시작 하는데 어떤 사람은 수백 수천억 원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현 자본주의이다. 그러니 자본을 많이 가지고 시작하는 사람은 그만큼 유리하고 자본 없이 시작하는 사람은 그만큼 불리하다. 현재의 자본주의의 사회구조는 마치 100m 육상경기를 하는데 출발 지점을 달리해서 경쟁하라는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은 100m의 거리를 두고 출발해야 한다면 어떤 사람은 50m나 80m 전방에서 달리게 하는 격이다. 이런 경쟁에서 100m를 달려야 하는 사람이 50m나 20m만 달리면 골인하는 사람을 이기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육상경기에서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몇 만분의 1초의 부정출발도 허용하지 않는 것과 비교한다면 그 불공정이 얼마인지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잘못된 게임 규칙에 의해 얻어진 부는 부정한 부라는 생각에서 약탈까지 정당화 시키는 대중도 나올 수 있는 원인이 자본주의에 이미 내재 되어 있는 것이다.

현 사회구조를 고수하려면 복지정책을 통해 자본주의의 결함을 보완해야 하고, 그 방향은 물질적 분배보다 희망의 분배가 우선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행복은 스스로 성취 했을 때 충족감이 가장 크다. 그래서 복지 정책의 방향은 스스로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 스스로 노력하면 얻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쪽에 무게중심을 두어야 한다. 그리고 가장 고민해야 될 것은 출발선의 간극을 좁히는 문제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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