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가슴앓이 해오던 것 중에서 참을 수 없는 말을 해야겠다. 우리말과 글이 실종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실종되어 가고 있는 게 아니라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우리글이 보이지 않는다.

어느 누구나 길거리에 나서 간판을 보더라도 그리고 그 어느 아파트 표시를 보아도 롯데캐슬, 브라운스톤, 자이, 훼미리마트, 롯데슈퍼마켓, 세븐일레븐, 던킨도너츠  파리바게뜨, 샤틀렌, 마담포라, 에스콰이어, SK, KT&G, NH, 투썸플레이스 , 모닝글로리 문구, 미스터 피자, 비비큐치킨, 하이카, 온통 영문 표기로 가득차 있다.  꼭 쓰지 않아도 될 곳에도 영문으로 도배되어진다.

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지금의 영문과 마찬가지로 모든 소통의 글은 한문이었다.  70~80%의 양반과 얼마 안 되는 중인을 빼놓고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대다수 백성들은 한자와는 무관하게 무지하기 그지없는 상놈들이기에 한자를 안다는 것은 곧 신분이 높은 사람들만의 것이었다.  우리는 비참하게도 400년 동안 나랏글이 있었음에도 국어(國語)를 주장해 오지 못했다. 말에서 글이 나왔고 글에서 말이 품격을 높여 왔거늘.

말은 입이 있으니 할 수 있어도 글을 모르면 사고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으며 그래서 글이 있어 민족이 있고 문화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글과 말이 있는데도 온통 우리글과 말이 아닌 것에 매료되어 우리말과 글이 천박하게 무시당하고 버림받고 실종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커피, 택시, 호텔 같은 명사는 본래 우리 것과 연고되어 있지 않더라도 영어 불어 독일어의 명사까지 끌어들여 상호를 지으니 시내를 돌아다니다보면 계속 연속해서 우리글로 된 상호를 찾기가 힘들다. 문제는 그것들이 필요 불가결하게 그렇게 해야만 소통이 되고 광고 효과가 된다고 하더라도 우리 의식 속에 우리에 대한 인식이 희미해진다는 것이다.

언어가 가지고 있는 외래문화의 힘이 자기 자신의 뿌리의 혼을 갉아먹고 급기야는 올바르게 평가되어야 할 것들을 못하게 만들어 놓을 뿐 아니라 판단이 흐려져서 영문으로 된 것들을 이상적이며 완벽하며 아름답다는 생각에 빠져 들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말로 우리 글로 얘기해도 될 것을 굳이 영어로 해야 하고 그래야만 그럴듯해. 보이고 상대방을 녹일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IT 산업 강국으로 엄청나게 그들의 언어로 둔갑되고 가전제품들을 팔아서 돈도 많이 벌었지만 이젠 컴퓨터, TV, 스마트폰 등으로 우리의 일상어가 된 것도 모자라 마구 쏟아져 나오는 영문 표기 상품들은 어쩔 텐가.


서울 종로구가 세종대왕 생가 터가 있는 통인동에 세종마을 어린이 도서관을 만든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아연 실색 하던 차에, 주민들과 한글 단체의 반대로 사회적 물의를 빚자 천만다행으로 계획을 취소했다고 하지만 발상 자체에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세종대왕 생가 복원은 못할망정 세종대왕께 죄짓는 일을 서슴지 않고 행하려 하다니. 도대체 대학을 나와도 영어 회화 한마디 못하고 영어 해설도 못 알아보는 숙맥이 된 채 영어 몇 자를 시부렁대는 자신들이 아닌가.

영어 회화를 할 줄 아는 동남아시아 국가들 중에는 영어로 인하여 그들 전통적인 자국민 언어를 잃어버리고 이 영어로 소통을 하는데 비해 그들은 오히려 가난과 무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 글을 잃어버리면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되고 나아가 세계화 추세에 떠밀려 주체성까지 망각하게 되면 강자의 속국이 되고 말 것이다.


현재 한류의 힘이 세계 곳곳에 힘을 뻗치고 있는 즈음이다. 한의 위대한 홍익 철학을 간파하시어 당시 주변의 악랄한 반대 세력을 무릅쓰고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님은 우리글을 한글이라 이름 지으시고 문자가 없는 가여운 만백성이 한글을 통해 문화대국을 이루고자 하셨다.

그 세종대왕님의 지고한 뜻을 받드는 한글날에 한류의 근원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후손들의 망덕함을 그분이 보고 계신다면 그분은 뭐라 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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