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동, 기피시설 협상통해 월 4000만원 기금 조성
‘자치도시’를 지향하고 있지만 아직 고양시는 준비단계라 할 수 있다. 마을만들기 사업은 몇 년전부터 지속해서 진행돼왔지만 각 동별, 주민자치위원회 스스로도 자신있게 내어놓을만한 아이디어는 많지 않다. 올해 진행됐던 마을만들기 공모사업 10개 중 9개 사업이 꽃길가꾸기였다. 1개의 벽화그리기 사업은 민간 비영리단체가 주체였다. 마을만들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고양시 주민자치과는 내년에 예산을 대폭 확대해 조금 더 규모있는 사업을 독려해볼 참이다. 그러나 아직은 첫발이라 할 수 있는 각 마을, 동별 자원을 찾아내는 일이 먼저라 할 수 있다. 이번호에서는 고양시에서도 매우 특수한 상황에 처한 대덕동 이야기를 통해 주민자치의 현 주소를 점검해보고자 한다.
“40년 동안 그린벨트로 묶인 마을, 전 지역이 군사보호구역에 항공고도제한지역이죠. 3중의 규제에 난지하수처리장 등 기피시설까지 대덕동은 고양시의 대표적 소외된 동이죠. 최근에는 공항철도와 2자유로로 마을이 두동강 나기까지 했죠. 덕분에 주민들은 단합이 잘됩니다. 지금이라도 시위하러 가자면 다들 모이죠. 지난주 대덕동 한마음 행사에는 800명이 참여했습니다.”
3중규제, 2자유로로 마을 두동강
법정동으로 현천 덕은동 8개통 4773명이 살고 있는 대덕동. 대덕산은 중심으로 옛 지명인 가무내 난점 원골 대테 4개의 마을이 형성돼있다. 대덕동은 고양시가 안고 있는 규제와 개발의 문제들이 ‘다 모여있다’ 할 만큼 현안이 많다. 그만큼 주민들의 불만도 크고, 결집력도 대단하다. △공항철도 역사유치 △기피시설인 난지하수처리장 △덕은도시개발 발표로 인한 규제와 사업추진 지연 등이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현안이다.
목욕탕, 약국이 없는 마을. 그나마 1개의 목욕탕이 있었지만 2004년 현천동 일대가 도시개발지역으로 묶이면서 문을 닫았다. 초등학교, 중학교도 없다. 아이들은 버스를 타고 수색으로 학교를 가고, 주민들은 목욕을 하러 서울로 나간다. 주민들의 불만이 적다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
원주민들이 아직도 20% 이상은 되지만 주민들은 지역의 현안을 놓고 10년 가까이 행정기관, 사업 주체들과 싸워오면서 단단한 결속력을 갖고 있다. 난지하수처리장에서 음식물쓰레기까지 처리하게 되자 주민들은 서울시와 지루한 싸움을 했다. 당시 서울시는 고양시가 음식물쓰레기를 10톤까지 허가해주었다는 것을 꼬투리삼아 주민들과 대치했다.
“무조건 반대만 해서는 안되겠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걸 확실하게 얻자는 제안을 주민자치위원회가 내놓았고 주민들이 받아들였습니다. 결국 서울시가 대덕동 주민들을 위해 음식물쓰레기 10톤당 5000원을 지역기금으로 제공하는 것을 합의를 봤습니다.”
이원태 전 주민자치위원장은 당시 주민들 사이에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어느정도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점을 성과라고 설명했다. 덕분에 대덕동은 2008년 7월부터 매월 4000만원을 기금으로 받아 8개 통으로 나눠준다. 하수처리시설이 인접해있는 난전마을 부근의 2개통에는 좀더 많은 기금을 주고 나머지는 동일하게 배분된다. 대덕동은 기존 주민자치위원회 이외에 각 통별로 운영위원회가 구성돼있다. 운영위원회는 통별로 10~20명으로 구성되며 상하반기 주민자치위원회로부터 감사를 받는다. 기금은 운영위원회가 관리한다. 장학기금과 마을 발전 등을 위해 사용하고, 인건비 등 개인을 위해서는 전혀 사용할 수 없다. 이런 내용의 주민자치위원회 세칙도 당시 만들어졌다.
통별 운영위, 주민자치위가 감사
‘곳간에서 인심이 나는 법’이라던가. 복지기금 덕분에 대덕동 주민자치위원회(위원장 김학운)와 통장협의회(회장 유병례)는 활동이 매우 활발한 편이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이하는 대덕한마음 축제는 유명가수까지 초대해 성대하게 열렸다. 축제가 열렸던 신도농협 대덕지점 앞 체육공원은 옛 복지회관 부지로 빈 공터였다. 이것을 주민자치위원회 지역 업체들의 도움을 받아 터를 닦고, 주민자치위원회 기금으로 운동기구를 마련해 체육공원으로 만든 것이다. 올해 주민자치위원회 구성에는 참여하려는 이들이 많아 경쟁이 치열했다고.
통별로 1억 넘는 기금이 있는 경우도 있다보니 관련해 이견이 있기도 하다. 일부 주민들은 “기금이 많다보니 주민들간의 이견도 있다”며 “주민자치 활동이 잘되다보니 동에서도 좀 견제가 있는 것같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강한 현안들이 대덕동의 자치에 힘을 실어준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주민들간의 활발한 소통과 ‘살기좋은 마을’까지를 고민하기에는 당장 눈앞에 해결해야할 과제가 너무 많다. 개발이 지연되는 현실도 문제지만 정작 개발이 진행되면 덕은동에 현재 살고 있는 주민들이 다시 돌아올 확률은 높지 않다.
지난달 26일부터 고양시는 주민자치위원들과 관심있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주민자치 아카데미 교육프로그램을 진행중이다. 예산 1억4000만원 943명 대상인원으로 지자체가 진행하는 자치아카데미 규모로는 최고다. 내용적인 면에서도 자치와 역사, 예산,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망라돼있다. 12월까지 진행되는 이번 교육이 어떤 성과를 가져올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각 동별로 참여한 이들이 각자가 가진 보물들을 깨닫는 첫걸음을 시작할 수만 있다면. 첫 출발은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다.
고양시 자치로드맵 용역에 참여하고 있는 덕성여대 사회교육연구소 최경애 교수는 “마을만들기는 어쩌면 우리가 다 허물어버린 옛 것들을 복원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각자의 마을들이 스스로 무엇을 갖고 있는지부터 찾아보는 것에서 출발해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