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법 개정, 공동장터 등 기금 입주자대표회로 일원화

우리나라 국민들 중 절반 이상이 거주하는 아파트. 이러한 아파트단지 내에서 활동하는 단체들 중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아파트부녀회다. 노인정 봉사, 알뜰장터 및 바자회 행사, 아파트 주변 환경정리 등 부녀회는 단순히 봉사활동만이 아니라 아파트단지주민들의 자치활동 및 호혜관계형성의 기능까지 맡고 있는 중요한 단체이다. 하지만 기금운영에서 나타나는 각종 비리와 이권다툼으로 인해 부녀회를 좋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들도 있다. 실제로 몇몇 부녀회의 경우 아파트를 매개로 벌어들이는 각종 수익들을 자신들이 마음대로 사용하면서 법적공방이 벌어지는 사례도 있었다.   
정부에서는 이러한 분쟁들을 해결하기 위해 작년 7월 6일자로 주택법시행령을 개정 및 공표했다. 개정된 주택법에 따르면 그동안 관리비 이자, 공동장터의 수입으로 운영되어오던 아파트부녀회 기금의 대부분을 법적 단체인 입주자대표회가 관리하게 된다. 이로 인해 아파트부녀회의 영향력이 과거에 비해 약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부녀회를 꾸리지 못하거나 어려움을 겪는 단지도 늘어나고 있다. 이번 기획기사는 주택법 개정 시행령 이후 부녀회의 현황을 살펴보고 부녀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목소리들을 담아보았다. 이번 기획기사 이후에는 입주자대표회의 입장에서 바라본 부녀회의 모습과 타 지역 아파트 자치부녀회의 모범사례를 다룰 예정이다.

대화동에 위치한 일산 건영아파트 부녀회는 부녀회활동이 잘 되기로 소문난 곳이다. 부녀회 사무실 한켠의 화이트보드에는 부녀회 1년 계획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아파트 단지 내에 화단 가꾸는 일부터 해서 노인정 어르신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이르기까지 여러 활동들을 하고 있어요. 25명 이상의 회원들이 항상 열심히 참여해서 도와주고 있습니다.”이곳 부녀회장을 맡고 있는 배성옥씨는 회장을 맡은 지 올해로 7년째에 접어든다. 중간에 한번 부녀회장직에서 손을 놓은 적이 있지만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어 다시 맡았다고 한다. 밖에서 비판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막상 기회가 주어졌을 때에는 아무도 나서지 않았던 것이다. 배 회장은 부녀회활동에 막상 참여해 보면 부녀회가 하는 일들이 얼마나 힘든지를 잘 알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운영비때문에 동대표와 마찰도
“주택법시행령이 개정되고 나서는 입주자대표회로부터 부녀회 운영비를 받아서 쓰고 있어요. 아무래도 운영비를 받아 쓰다보면 동대표와 돈 때문에 마찰을 일으킬 때도 많죠. 그럴 때마다 우리가 하던 일들을 그 사람들에게 맡겨버려요. 그렇게 한번 대신 해보고 나니깐 다들 부녀회입장을 이해하더군요.”
예전에 비해 쓸 수 있는 돈이 많이 줄었지만 이곳 부녀회는 부녀회원들이 열성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돈 문제에 크게 구애받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돈이 많아지면 헤프게 쓰기 때문에 말썽들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아파트 부녀회장들은 불만이 많다고 한다. 부녀회장들끼리 만나면 동대표들이 돈을 안줘서 힘들다는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며 돈도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마냥 봉사만 할 수 있겠냐는 말들도 나온다는 것. 그러나 배회장은 “돈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부녀회원들 사이에 연대감이 강하게 형성되면 적은 돈으로도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부녀회원의 연대감 돈보다 큰 힘
일산 3동 부녀회의 경우에는 기존 부녀회 기금을 입주자대표회와 부녀회가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다. 부녀회장인 송연심씨는 “이곳의 경우 부녀회의 역할이 매우 커서 입주자대표회 측이 부녀회의 활동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파트너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 회장은 부녀회의 본연의 역할은 봉사임을 강조한다. 사실 법 개정 이후 부녀회의 영향력이 약화되었다는 것은 기존의 부녀회들이 그만큼 돈에 의존해왔다는 사실을 잘 나타내준다.
“부녀회들이 봉사에 주를 두어야 하는데 다들 돈에 너무 민감한 것 같아서 문제라고 생각해요. 부녀회들이 본연의 역할을 잘 하게 되면 동대표들이 기존에 부녀회 일들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거든요. 그러면 부녀회도 아파트 내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거죠”

외부행사에 지나친 동원도 지적
주엽 1동에 거주하고 있는 황현숙씨는 과거 부녀회장을 맡은 적이 있으며 현재는 입주자대표회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인물. 이러한 경력 탓에 부녀회와 입주자대표회 양측의 입장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황현숙씨에 따르면 그간 부녀회에서 아파트를 매개로 다양한 수익들을 창출해왔지만 주택법이 개정된 이후 입주자대표회로 기금이 모아지게 되면서 더 이상 못해먹겠다는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중에는 돈을 타 쓰는게 싫어서 그만두는 부녀회도 존재한다고.
“예전에는 부녀회가 바자회 등을 통해 스스로 움직여서 기금을 모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몸으로 뛰지도 않으면서 기금이 없으니 못하겠다고 해요. 스스로 활동기금을 모으는 데는 주력하지 않고 시에서 받는 돈에 의존하는 부녀회들도 많아요. 그러다보니 자치적 활동보다는 외부행사에 동원되는 경우가 더 많은데 이러다보니 입주자대표회 쪽에서는 하는 일도 없는데 무슨 돈이 필요하냐는 입장으로 나오게 되는 거죠.”

부녀회장 판공비만 300만원 넘기도
물론 부녀회 측 입장에서 보면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있다. 기금이 부족하기 때문에 활동비도 안 나오는 경우가 있으며 부녀회장 판공비로만 300만원이 넘게 필요할 때도 있다는 것. 알뜰장터를 포함한 여러 봉사활동에 들어가는 비용도 꽤 되지만 아파트 일반주민들은 잘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황현숙씨는 주민들에게 봉사활동을 잘 알려내지 못하는 것은 부녀회측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이야기한다. 특히 아파트 내부 활동에는 소홀히 하면서 외부행사에 지나치게 동원되는 모습들은 지양해야 한다는 것.
“결국 부녀회가 스스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가만히 앉아서 조건 탓만 할 것이 아니라 직접 몸으로 뛰면서 활동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녀회가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간구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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