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삶, 아름다운 변화 |우보농장 이근이 대표

▲ 우보농장 이근이 대표.
“고생으로 보이세요? 좋으니까. 행복하니까 하는 거죠.” 지난달 27일 고양덕양햇살생협 ‘자급과 생태적 순환의 삶, 도시농부의 길’ 행사에서 만난 이근이 우보농장 대표(45세). 강의를 끝내자마자 넓은 텃밭을 둘러보고, 배추를 묶느라 부산했다. 인터뷰를 위해 기자도 부지런히 이 대표를 따라다녔다.

햇빛에 알맞게 그을린 피부에 연예인 ‘초콜릿 복근’이 부럽지 않은 단단한 체형의 이근이 대표. 농부의 얼굴을 한 이 대표의 원래 직업은 출판기획자다. 대중문화평론잡지 ‘리뷰’, 웅진등 이름있는 출판사, 알만한 책들을 만들어냈다. 환경, 생태관련 서적들을 만들었냐고 물으니 “그건 돈이 안된다”고. 경제 경영 번역서 등 돈되는 책을 주로 만들어왔단다.

전남 나주출신이지만 고향에서는 한번도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다. 농사를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아내가 주말농장에서 농사를 짓자고 하면서였다. 농사에 푹 빠진 부부는 귀농을 계획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올해 고3, 고1이 된 아이들도 걸렸다. 결국 귀농을 포기하고 선택한 것이 ‘도시농업’이었다.

“처음에 무상으로 밭을 얻어 4명이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렇게 거저 빌려주는 땅이 늘어나 사람들도 많아졌지요. 저희들은 스스로를 게릴라 농부라 부르죠.”

▲ 덕양햇살생협 회원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는 우보농장 이근이 대표.
선유동에 500평, 대자동 200평, 도내동에 500평 강화도, 민통선안 장단콩 마을까지 농사를 지으러 다녔다. 다들 직장인이면서 6~7곳의 텃밭을 주말마다 몰려다녔다. 자급자족도 하고 적은 소출이지만 카페를 통해 팔기도 했다. 그렇게 많은 농사를 지으면서 오히려 이 대표와 ‘일당’들은 빠르고 쉬운 길보다 더디고 우직한 ‘유기순환 자연농법’을 선택했다.

“폼 나자고 만든 이름이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하시던 방법이 바로 자연농법, 친환경인 거죠. 땅에서 나고, 자연으로 다시 돌아가게 만드는.”

무상으로 빌린 땅에서 농사를 짓다가, 주인이 나가라고 하면 언제든 털고 다른 곳으로 떠났다. 미련이 없으니 오히려 땅을 주겠다는 이들이 늘어났다. 고양동 주민자치센터 1만4876㎡(4500평) 우보농장을 아는 이가 저렴하게 빌려준 것이다. 규모가 큰 땅이 생기니 이 대표의 도시농장 그림이 커졌다. 그의 순환농법에 동의하는 도시농부들을 모집했다. 30가족이 모였다. 우보농장에는 개인 텃밭이외에 농사공동체가 있다. 마늘, 김장, 콩 등 저장성이 있거나, 가공이 가능한 작물을 선택해 10여 가구가 함께 농사를 짓는 것이다. 보통 10여 가족이 모여 1사람이 ‘밭짱’을 맡아 함께 농사를 기획하고, 씨 부려 수확까지 하게 된다. 함께 하다보면 조금 더 많이 일하는 사람이 있고, 참여가 부진한 이들도 생긴다. 그래도 수확의 기쁨은 함께 누린다. 여유있는 사람이 조금 더 하고, 부족한 이웃에게 너그러운 우리네 품앗이 정신이 저절로 살아나게 된다고.

▲ 우보농장 이근이 대표.
우보농장과 이근이 대표의 공동체 농사에서 꼭 필요한 원칙이 있다. 화학비료나 비닐을 사용하는 인위적 농법을 시도하다가는 ‘회비를 고스란히 돌려받고 쫓겨나야’ 한다.

“비닐을 사용하는 멀칭은 열매를 비정상적으로 키우죠. 도시농부는 단순히 작물만 키우자는 건 아닙니다. 농사는 모든 질서와 과학이 다 들어있죠.”

이근이 대표의 농사학이 이어진다. 그는 직접 절기와 12개월을 농사에 맞게 지은 ‘우보월령가’를 짓기도 했다. 우보농장에는 회원들이 힘을 모아 교육 체험장도 만들었다. 씨앗의 역사, 거름만들기를 통해 과학의 모든 것도 체험해볼 수 있다고.

“농사는 사람이 자연에서 창조를 경험해보는 일이죠. 신의 영역을 넘본다고 할까요. 농사의 매력이 그런 겁니다.”

전업 농꾼이 되어가는 이근이 대표를 아내는 걱정스러워한다. 이 대표는 아이들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아내의 고향인 횡성으로 귀농을 할 생각이란다. 그게 도리인 것 같다고.

꿈꾸지 않으면 사는게 아니라고 했던가. 그 꿈을 실천하며 사는 이근이 대표의 삶이 너무 행복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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