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모범사례로 꼽혔던 성동구 대우아파트. 공부방 운영에 문화공연, 정부지원도 따내

서울 성동구 금호동에 위치하고 있는 대우임대아파트단지. 총 3단지 508세대가 살고 있는 이 아파트의 주민자치위원회는 전국에서 모범사례로 손꼽힐 정도로 많은 활동을 해왔다. 이곳 주민자치위원회를 이끌어 나갔던 사람들은 11년 전 대우아파트에 집단 입주했던 이들로 96년 성동구 재개발사업 당시 철거반대투쟁을 해왔던 당사자들이기도 하다.
몇 년간의 싸움 끝에 결국 입주자격을 획득하고 99년 최종적으로 아파트에 입주한 가구는 총 29세대. 철거반대를 위해 움막생활까지 함께 해왔던 이들은 누구보다 자신들의 권리를 대변해 줄 집단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아파트협의회의 건설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전국적으로 주민자치위원회가 걸음마 단계였던 2000년대 초. 성동구 대우아파트에서는 임차인 대표자회를 필두로 방범대·부녀회·노인회까지 모두 모여 아파트주민자치회를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살기 좋은 아파트를 만들기 위한 이들의 활동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 전국적으로 소문이 나게 되면서 대구, 부산, 남원 등지에서 견학 및 교육을 받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입주자대표회 최초로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해 공신력 있는 대표회를 선출했으며 그동안 쌓인 노하우를 바탕으로 타 지역 주민자치위원회 구성에도 많은 도움을 줬다고 한다. 하지만 2011년 현재 대우아파트에서 이렇게 모범적으로 운영되어 오던 아파트주민자치회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부녀회장을 하면서 많은 일을 했죠. 식목일 행사, 어르신들 식사대접 및 관광, 지역 봉사활동 등 셀 수 없을 정도에요. 특히 주민자치위원회가 잘 운영되어서 부녀회, 반·통장, 동대표들이 같이 만드는 행사들이 많이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재밌었던 것 같아요”
김현숙씨는 99년 대우아파트에 입주한 후 그동안 통장과 부녀회장 활동을 열심히 해왔던 인물. 아파트자치위원회가 잘 운영되었던 탓에 부녀회행사를 딱히 구분짓기보다는 자치위원회와 함께 만들어 갔다. 그렇게 만든 행사들이 정월대보름 행사를 비롯해 불우이웃돕기, 단지 내 영화제 개최 등 손으로 꼽기 힘들 정도.

대보름 주민 다 모여 전통놀이
2002년부터 시작했던 정월대보름 행사에서는 아파트 주민 전체가 한마음이 되어 육개장도 끓이고 윷놀이, 제기차기, 엿치기 등 전통놀이를 하며 하루 종일 즐겁게 놀았다.
외부에서 품바공연도 유치했는데 아파트 주민들이 그렇게 좋아했다고 한다. 한번은 한양대에 있는 로봇동아리도 찾아와 아이들과 부모들이 함께하는 로봇 만들기 행사도 개최했다. 재밌고 다양한 행사들을 통해 아파트 주민들의 결속력도 높아졌다.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하는 활동은 ‘푸른하늘 공부방’이라는 이름의 공부방을 운영했던 거였어요. 워낙 서울시 전체에 대대적으로 알려지다보니 개소식 당시 이명박 전 서울시장도 참석했을 정도였죠. 그때 연예인 이홍렬씨도 와서 ‘사랑의 리퀘스트’라는 프로그램 녹화도 했었어요. 당시의 프로그램 기획도 전부 주민자치위원회에서 도맡아 했습니다.”
어떻게 이 많은 행사들을 치러낼 수 있었을까. 당시 대우아파트주민자치회 위원장을 맡고 있던 김종수씨는 구성원들이 재개발 반대투쟁 때부터 함께 해왔던 사람들이라 서로 손발이 척척 맞았다고 했다. 게다가 오랜 싸움 끝에 얻게 된 보금자리였기에 아파트에 대한 애착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었던 것. 이들이 아파트에 막 입주하면서 뭔가를 좀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 바로 주민자치협의회였다.

회의 식대까지 임원들 주머니 털어
좋아서 맡은 자리었기 때문에 아파트주민자치회에서 활동하던 30~40명되는 구성원들 모두 그 흔한 판공비조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회의진행비나 식사비용의 경우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비를 털어 운영했다. 비록 금전적인 혜택은 전혀 보장받지 못했지만 대신 대우아파트 주민자치회 사람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서로간의 굳은 신뢰를 형성할 수 있었다.
“임대아파트에서는 특히 LH공사를 대상으로 입주자들의 권리를 지켜내야 하기 때문에 입주자대표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요. 그래서 입주민들이 단합이 잘 되어야 합니다. 아파트주민자치회에서 많은 행사를 했던 데는 그런 이유도 포함되어 있었죠”
그 당시 반장을 맡으면서 자치위원회활동에 참여했던 안양순씨는 대우아파트가 모범적으로 부녀회와 주민자치위원회를 운영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위와 같이 답변했다. 실제로 대우아파트 사람들은 입주민들의 더 많은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 자치위원회 임원들의 임기를 명확히 규정해 모든 아파트 주민들이 한 번 이상은 자치위원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더 나아가 김종수씨는 ‘살기 좋은 임대아파트 마을만들기’라는 슬로건의 사업을 추진하면서 전국에 10여개의 센터를 운영하고 정부의 지원도 이끌어냈다.

소문 갈등이 불신의 벽 만들어
“그런데 2005년쯤이었나 몇몇 부녀자들이 주민자치위원회에 비리가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어요. 아파트에 위성안테나를 설치했는데 그 사람들이 저보고 뇌물을 먹었다는 소문을 내더군요. 그때 정신적으로 너무 고통이 심했고 결국 법적 공방까지 가고 말았어요”
결국 소문을 냈던 당사자들이 명예훼손으로 벌금형을 선고 받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벌금형을 받아 앙심을 품은 사람들이 아파트 내에서 계속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어요. ‘안테나 때문에 암환자가 증가 한다’ ‘어디서 받아먹는 것 없이 저렇게 열심히 활동할 리가 없다’ 등등.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계속 그런 소문이 생기다 보니 주민들 사이에도 불신의 벽이 생겨버렸죠”
아파트 분위기가 흉흉해지면서 이전까지 진행되던 행사들도 모두 엉망이 되었으며 자치위원회에서 활동하던 사람들도 계속되는 고소 고발에 모두 지쳐서 그만두고 말았다. 그렇게 주민자치위원회가 소멸되고 아파트 내의 자치활동들이 힘을 잃게 된지 어느덧 4년째. 그간 주택법이 개정되고 아파트대표회의 법적 지위도 강화되었지만 대우아파트의 문제는 쉽사리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법 제도 앞서 자치역량 먼저
“분양아파트와는 달리 임대아파트 입주자대표회는 주택법상 ‘둘 수 있다’로 명기되어 있어 법적으로 보장이 안돼 있어요. 이 때문에 의결권도 없을 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활동비도 나오지 않아요. 이 때문에 주민들이 선뜻 동대표를 맡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인정받기도 힘든 상황이에요”
김종수씨는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은 임대아파트에도 법적 지위를 보장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한다. 하지만 법적 지위를 획득한다고 해도 주민들 사이의 신뢰회복은 또 다른 문제. 주민들 간의 싸움을 법으로 해결하게 되면 서로 상처받게 남지 않기 때문에 결국 아파트 내에서 대화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지난 몇 년간 많은 아픔들을 겪었지만 대우아파트 사람들은 지금도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자치활동을 다시 모범적으로 만들고 싶어했다.
하지만 아파트구성원 사이에서 발생하는 불신과 다툼들을 어떻게 극복하고 같이 협력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어느 누구도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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