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한명이 따돌림을 당해 4층인지 5층에서 떨어진 적이 있다.” “1학년 아이를 소화전에 가두는 일도 있었다.” “선생님이 교실에서 우리 반에서 문제가 있는 **이와 어울리지 말라고 했다. 선생님이 그 아이에게 심한 욕을 하는 것도 보았다.”

학교폭력과 왕따에 시달린 아이들이 연이어 목숨을 끊고 있다. 우리 동네는 어떨까. 몇 명 아이들과 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뿐인데. 학교는 더 이상 우리 아이들에게 안전한 공간이 아니었다. 뛰어내리고, 갇히고, 맞는 아이들. 아마존의 정글도 이보다는 안전할 것같다. 얼마전 우리 동네에서도 한 아이가 자살을 시도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 아이는 공부도 잘하고, 교우관계도 좋은 모범생이었다. 작년 일산의 한 중학교에서는 한 아이가 학교에서 뛰어내렸는데 이 소식이 부모들의 입을 타면서 ‘자살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대구중학생에 이어 광주에서까지 들려온 안타까운 소식에 언론과 여론이 시끌시끌하다. 그러나 전해지는 뉴스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대구의 가해학생들이 구속 수감됐고 연이어 학교폭력에 대한 강력대처 발표가 나왔다.

<경찰 “이제 학생이라고 안 봐준다”…‘학교폭력과 전쟁’ 나서, 구속수사 확대> <조현오 “형사법적 사고넘어 학교폭력 적극 대응”> <학교 폭력 근절하려면 학생 징계부터 강화를>

피해학생과 부모들의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가해학생들을 구속하고, 경찰이 나서 잡아들이면 정말 학교폭력은 근절될까. 우리 아이들은 행복해지는 것일까. 교권을 강화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슬그머니 인권조례 때문에 징계나 체벌이 어려워지면서 생긴 문제 아니냐는 주장까지.

‘말죽거리 잔혹사’ 그 시절로 돌아가면 학교폭력은 근절될까. 그 시절 폭력의 주체는 교사, 권력이었다. 교사들에게 ‘때릴 권한’을 주었던 그 시절엔 일진, 학교폭력이 없었을까. 아니라는 걸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좋겠다. 관련 기사를 검색해보며 ‘경찰의 전쟁선포’는 줄줄이 나오는데 정작 교육과학기술부, 교육청의 정책과 입장은 가뭄에 콩이 난다.

“학교 앞에 ‘폭력’이라는 말이 붙는 것 자체가 비정상적이다. 아이들을 제대로 길러달라고 보내는 곳이 학교인데 그곳에 폭력이 있다는 것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너무 답답해 최창의 교육의원에게 자문을 구하니 답을 말해준다.

학교가 교권을 말하기 전에 얼마나 교육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섰는지 되묻고 싶다. 이번 취재 과정에서 많은 아이들이 교사들에게 더 심각한 ‘폭력’을 당하고 있었다. ‘문제학생’으로 분류된 아이들은 교사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듣고, 뺨을 맞기도 했다. 무엇보다 왕따 등 문제 상황을 교사와 학교에 알려도 제대로 된 대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교사들은 학부모들을 탓하고, 학부모들은 교육현장을 원망한다. 왜 그럴까.

지금의 학교에서 아이들의 인성, 심리적인 안정은 중요하지 않다. 주어진 학습목표만 달성하면 그만이다. “학교폭력은 교육의 모순이고 교육이 본질에서 벗어나기 때문”인데 드러난 현상만을 붙들고 거듭된 대책을 마련해봐야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결국 학생들이 알아서 무술도장을 찾거나, 공교육을 떠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우리 아이들을 궁지로 몰아서는 안된다. 왜 우리의 선량한 아이들이 친구를 왕따시키고, 지독한 방법으로 괴롭히며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만드는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끝장토론이라도 해서 해결책을 찾아야한다. 그동안 경찰청장님께서는 좀 참아주셨으면 좋겠다. 학교폭력, 무조건 구속한다고 근절되지 않는다.

고양신문에서도 ‘쉬쉬’하며 감춰왔던 진실들을 드러내놓고,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도가니’보다 더한 무엇이 있을까 두렵지만 나의 아이, 우리의 미래를 위해 모두가 나서야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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