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에 영화 ‘부러진 화살’을 보았다. 다들 이야기를 많이 해서 한번 보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명절 전날 영화를 본 선배가 문자를 보내왔다. ‘영화 끝나고 자막 올라가는데 무원마을 주민들이 나오더라’고. 행신동에 사는 선배는 지역신문에서 일하는 후배의 관심사를 잘 알아 재미있는 동네일이 생기면 연락을 주곤 한다.

설 전날 시댁에서 전 다섯가지, 나물 세가지를 번개처럼 만들어놓고 영화관을 향했다.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 영화 속 대사는 화끈하고 재미있었다. 시사문제, 그것도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일명 ‘석궁테러’사건을 다루었기에 영화 ‘도가니’처럼 우울하고 부담이 클 것이라는 생각은 선입견이었다.
무엇보다 곳곳에서 촬영지였던 고양시를 ‘알아맞추는’ 재미가 있었다. 주인공의 미국 회상 장면은 틀림없는  정발산동 단독주택지였다. 김지호씨가 맡은 여기자의 오피스텔은 장항동 오피스텔 단지. 영화에 조금 덜 몰입했더라면 석궁을 발사한 현장으로 나온 무원마을의 주민들 얼굴도 알아볼 수 있지 않았을까.
100만을 돌파하고, 200만을 바라본다는 영화의 주 촬영지가 고양시였다니 괜히 자랑스럽다. 마침 제작사인 아우라픽처스 영화사가 덕양구 화정동에 있어 작가를 만나는 최수미 기자의 취재에 동행하기도 했다. 회사가 자리한 덕양구청 앞 브로멕스 건물도 고양시의 방송영상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것이니 한번 더 어깨가 올라간다.
정지영 감독. 이름값이 있는 유명감독이지만 겨우 순제작비 5억원(홍보비 포함 15억원)으로 영화를 찍겠다고 나설 때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한현근 작가는 당시 피해자였던 부장판사가 살던 아파트를 섭외하며 마음 졸이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소정의 사례’없이 도움을 부탁해야했고 , 무엇보다 사회적 이슈가 담긴 영화이기에 ‘쉽게 설득이 될까’하는 걱정이 앞섰을 것이다. 고양시 곳곳을 누비며 촬영지와 출연진을 섭외했던 이야기는 생방송 영화채널을 보는 듯 했다. ‘무에서 유를 만든다’고 하지만 무언가를 만들기 위한 열정과 헌신이야말로 가장 큰 투자요 자원인 모양이다. 매출액을 계산하면 순 제작비의 30배 이상은 거뜬히 벌어들일 모양이다.
지역신문에서 항상 어려운 살림살이와 열악한 취재여건을 탓하곤 했는데 한현근 작가와 같은 열정을 만나면 부끄럽기만 하다. 감독 데뷔를 준비 중이라는 한 작가는 다음 작품에 지역신문 이야기가 나오면 고양신문에서 촬영해도 좋겠냐고 묻는다. 
같은 날 오전에는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취재를 다녀왔다. 오랜만에 찾은 법정에는 젊은 판사, 검사에 현장 수업이라도 나온 듯 어린이들이 방청석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법원을 자주 찾는 이들이라면 실제 재판은 영화와 많이 다르다는 걸 알 것이다. 수사검사가 아닌 공판검사(재판에만 나오는)들은 대부분 심문이나 질의를 서면으로 대치한다. 영화에서처럼 검사와 변호사가 ‘설전’을 벌이는 장면은 실제 현장에서는 재현되지 않는다. 서류 몇장 주고 받고 싱겁게 끝나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다. 한명숙 대표, 곽노현 교육감 사건처럼 사회적 이슈가 되거나 관심사가 큰 경우에나 실제 검사들의 ‘활약상’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날선 검사의 공격이나 날카로운 눈빛의 판사가 없더라도 법정에 서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렵고 힘든 일이다. 부러진 화살의 실제 주인공 김명호 교수처럼 변호사를 제치고 자신의 소신을 당당히, 조리있게 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김 교수를 연기한 배우 안성기씨도 인터뷰에서 “실제 김 교수의 상황이 된다면 상황에 안주할 것같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지금처럼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상황이라면. ‘나에 대한 판결, 판단이 공정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피해자나 가해자 모두 불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김 교수는 말한다. “법은 아름답다. 하지만 법률가의 지배는 아름답지 않다.” 언제나 문제는 사람이다. 사법부가 정의의 최후의 보루였으면 하는 바람은 얼마나 헛된가. 기자가 법정에서 만난 판사는 영화 속의 ‘비열한’ 얼굴과는 사뭇 달랐다. 젊고, 참신해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미지만으로 신뢰를 보내도 좋을까. 전반적인 불신이 깊어지면 아무리 진정성을 외쳐봐야 믿어주지 않는다. 영화를 보며 속은 시원하지만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자니 뒤통수가 무겁다. 영화가 현실이 아닌 허구였으면, 지금의 현실이 그저 영화 속 이야기였으면 하는 엉터리같은 바람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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