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에 장항습지라는 이름의 습지가 알려진 것은 2004년 즈음 일이다. 당시 지도에는 뭍이 아니라 강으로 표현되어 있었으며 당연히 지명이 없었다. 그 당시 철책을 열고 강 안으로 첫발을 내딛었을 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지뢰가 떠 내려왔을 지도 모르고 물골이 복잡해서 밀물이 들면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군의 엄포(!)에 잔뜩 긴장했었다. 그렇게 습지와 첫 대면을 한지 벌써 9년이 흘렀다. 그동안 국가 습지목록에 장항습지라는 이름을 올리고 생물종을 기록하고 습지의 특성을 연구하여 국내외 학회지에 보고하여 이제는 국제적으로도 제법 알려졌다. 시민들뿐 아니라 국내외에서 찾아오는 손님들도 꽤 늘었다. 

 한때 위기도 있었다. 일산대교와 킨텍스IC가 만들어지면서 생태계가 교란되기도 했고 수상택시, 운하 등의 계획이 만들어지기도 했으며 신곡수중보 하류 이설로 인한 침수위협도 아직 현존하고 있다. 다행히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현재까지는 습지가 무사하며 관리계획도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는 듯해 보인다. 그러나 장항습지 생태계를 온전하게 지킬 수 있느냐의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장항습지는 남북한의 분단으로 인해 둘러쳐진 철책이 만들어 낸 우연한 생물서식처이다. 인구 100만을 바라보는 거대도시에 2만마리 이상의 물새들이 찾아오고, 특히 재두루미나 저어새와 같은 멸종위기에 처한 큰 물새들이 사는 곳. 100여마리의 고라니가 자유롭게 뛰놀고,  밀물과 썰물이 살아 있어 게들이 바글거리는 습지숲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는 곳이 장항습지다. 이런 생물의 서식처가 도시 개발에 살아 남아있으리라고 어느 누구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미 습지 코앞까지 고속도로와 신도시가 다가왔고 강이 범람하여 만든 논은 창고와 공장으로 바뀌었다. 철책은 이러한 개발의 광폭한 바람에서 뭇 생명들을 평화롭고 안전하게 지켜 주었다. 그러나 생태적 평화도 올해 6월 이후면 끝날 것으로 보인다. 습지를 지켜주던 철책이 제거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고양시 쪽은 두겹의 철책 중 자유로변 철책만을 제거하고 강변쪽 철책은 유지하여 야생동물의 보호펜스로 리모델링되어 탐방객을 맞을 전망이다. 그러나 건너편 김포쪽은 철책을 모두 제거하고 서울시 고수부지처럼 주차장과 농구장 등이 들어설 계획이다. 하나의 생태계가 두 개의 지자체의 구역으로 나뉘어 보전과 무분별한 개발이라는 정반대의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이러한 사태는 어처구니가 없게도 환경부가 2005년 보호지역을 지정할 당시 강물의 절반에 해당하는 김포쪽 물과 수변을 제외시켰기 때문이다. 당시 김포시는 군사보호지역으로 인한 불이익을 들었지만 실제로는 모래준설로 인한 세수입의 감소와 신도시 개발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임을 내비쳤다.

이러한 상황에서 올 여름 철책이 제거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장항습지의 핵심 중에 핵심은 재두루미와 큰기러기 등 물새들이다. 올해 장항습지에서 겨울을 난 재두루미 수는 작년 겨울에 비해 70% 수준으로 줄었다. 겨우내 김포쪽은 논에 흙을 부어 밭으로 바꾸는 공사가 진행되었고 고양시 쪽 논은 2자유로로 조각이 나면서 먹이터가 부족해 진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 그나마 장항습지 내 논에 볍씨를 뿌려 보충해 주었지만 매일 아침에 일정하게 뿌려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후시간에만 출입이 허용되어 불규칙하게 볍씨가 제공되어 공급효과도 떨어졌다.

장항습지 무논에서 잠을 잔 재두루미들은 아침이면 인근 논으로 날아가서 먹이를 먹고 다시 돌아와 장항습지 갯벌과 논에 와서 보충 먹이를 먹는다. 만약 갯벌에 들어 와 있는 시기에 김포쪽에서 사람이 들어와 위협을 주면 더 이상 갯벌을 이용할 수가 없게 된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가고 있는데도 관계당국은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김포쪽 한강은 습지보호지역 바깥이므로 관리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고양시도 김포시 지역에  적극적인 대책마련을 하기가 어렵다고 물러선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기도와 국토해양부는 장항습지 변에 광역 자전거도로망을 놓는다고 하니 엎친데 덮친 격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행히 고양시에 장항습지 민관 TF팀이 꾸려졌다. 고양시가 장항습지에 대한 통합적인 보전과 이용계획을 수립하는데 민관이 머리를 맞대게 된 것이다. 장항습지의 보전을 맡은 부서와 하천관리, 도로계획, 도시계획, 그리고 공원녹지계획까지 함께 검토하며 시급한 사항과 중장기적인 계획들을 시민들과 함께 검토하고 있다. 앞으로 이 팀에서는 습지를 강과 하나의 생태계로 보고 통합해서 관리하는 방안을 마련해 나갈 계획이다. 또한 주변의 개발계획과 도시녹지축, 하천축들을 연결하여 고양시의 랜드마크로 발전시키는 방향을 고민하고자 한다.

생태계는 사람들의 편의에 의해 그어놓은 행정단위로 관리해서는 안된다. 생태계는 공간이 아니라 기능적인 연결성을 기반으로 ‘시스템’으로 관리해야 한다. 현재 철책제거 문제를 푸는 해답은 고양시와 김포시의 공동의 협력으로 생태계 기반으로 협력해서 관리해야 할 일지만 만약의 경우 장항습지구간의 한강 전체를 고양시에 편입시켜 통합해서 관리하는 방안을 요구해야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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