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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판에 새긴 글귀는 믿음을 전하고일산동구 지영동 '미성공예' 문영효 대표
  • 박영선 기자
  • 승인 2012.04.13 13:46
  • 호수 1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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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영효 대표는 "특색 있는 작품으로 더 큰 꿈을 향해 달려가겠다"고 힘찬 목소리를 냈다.

“31년째 목공예를 하고 있습니다”

장인정신으로 현대감각에 맞는 생활 공예작품 하나하나에 혼을 불어 넣으며 예술품을 탄생시키는 문영효 대표(57세). 작고 섬세한 공예를 ‘목공예학원’에서 배웠고, 졸업 후 1981년부터 본격적으로 다양한 목공예를 시작했다. 가장 열정을 쏟은 것은 “글씨나 그림을 나무판에 한자 한자 혼을 담아낸 서각이다”고 하는 문 대표.

시편 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등의 성경구절과 교훈적인 문구 및 사훈, 가훈 수천만개를 지금까지 새겨서 보급시켰다. 처음엔 판로가 없어서 애로 사항이 많았지만, 조금씩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개업과 집들이를 하면서 많이 주문했고 기독백화점에서도 많이 선호했다. 문 대표는 서각의 대중화를 이룬 선구자인 셈이다.

그가 예리한 조각칼에 때로는 손을 다쳐가면서까지 인내하며 정성을 담아 새긴 글귀는 예술의 가치를 넘었고,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다시 희망을 안겨줬다. 문 대표는 “기독백화점을 통해 뉴욕, LA 등 미국 교민들에게까지 전파돼 외로운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준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그의 솜씨는 1991년~1998년 전국 공예품 경진대회 대상(다수입상), 1995년엔 경기도 우수공예업체로 지정(경기도지사), 1999년은 2002년 월드컵 우수공예업체(중소기업청장)로 선정됐다. 이 무렵 제29회 경기도 공예품 경진대회 대상(경기도지사) 및 99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출품을 했다.

1996년엔 고양시 공예 1단지가 지영동에 조성되면서 문 대표도 초창기 멤버로 입주를 해 특색 있는 목공예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1998년 IMF와 여름 장맛비가 한꺼번에 덮쳤다. 지붕까지 물이 차올랐으며, 향나무 원목 스탠드, 시계 등 섬세한 작업 도구인 1억 2000만원짜리 레이저조각기와 작품들이 모두 잠겼다. 문 대표는 “1000만원 넘게 수리비가 들어갔지만 현재까지도 사용 못하고 있어서 속상함이 크다”고 했다.

‘나무에 아름다운 별처럼 작품으로 새긴다’는 뜻의 미성공예의 문 대표는 파주시의 의뢰로 땅굴에서 나온 돌로 ‘DMZ 평화의 돌’을 장인의 섬세한 손길로 조각했다. 통일과 평화의 염원을 담아 몇천개를 보급시켰으며, DMZ 관광상품관에서 관람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적이 있다. 또한 4억5000만년 된 뉴질랜드 ‘뉴송’으로 2009~2010년까지 마늘, 빵, 치즈 도마 등 20여가지도 만들어 수출했다.

그토록 번성하던 공방은 계속되는 경기불황으로 창고엔 재고품이 쌓여갈 정도로 어려웠지만 다시 신화를 쓰고 싶다는 문 대표. “일찍 철이든 아이들이 공교육으로 서울의 명문대에 다녀서 기특하고, 어려운 살림 꾸려가는 아내가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고양시 공예사업협동조합 이사 7년 역임 후 지금은 조합원으로 있는 문영효 대표는 “특색 있는 작품으로 더 큰 꿈을 향해 달려가겠다”고 힘찬 목소리를 냈다.

 

박영선 기자  ysun6504@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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