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에서 가장 많은 아이 태어난 봄여성병원 이중빈원장

▲ 봄산부인과 이중빈 원장
“제 손으로 받은 아이가 1만2000명 쯤 될 겁니다. 하루에 5-6명을 받은 날도 있으니까요. 아직은 제 기억력이 참 좋아요. 몇 년, 몇 월만 이야기 해주면 아이 얼굴이 떠오릅니다. 얼마 전에는 제가 받았던 첫 아이가 군대 간다며 찾아온 적도 있습니다. 의젓하게 경례하는데, 눈물이 핑돌더라구요.”

봄여성병원은 1988년 고양신문이 창간되기 한 해 전 문을 열었다. 그 때 이름은 ‘이중빈 산부인과’. 고양에 3개뿐인 산부인과 중 하나였다. 지난 24년 동안, 이중빈 원장이 직접 받은 아이들을 포함해 봄산부인과에서 태어난 아이는 3만6000여 명. 4인 가족 기준으로 보면 14만 명이 넘는 고양시민들이 이곳에서 새 생명이 태어나는 기쁨을 안았다. 고양시에서 가장 많은 아이가 태어난 병원, 고양시 인구의 15%가 새 가족을 맞는 인연을 맺은 병원이다.

서른 둘, 병원을 개원하겠다고 마음먹고 지도를 펼쳤다. 남편이 일하는 신촌 세브란스를 중심에 두고 원을 그리다보니 고양이란 곳이 눈에 들어왔다. 왠지 괜찮을 것 같았다. 그 날로 고양으로 가겠다고 하니, 부모님은 물론 친구들도 말렸다. “그 시골에서 어떻게 병원을 하려고 하느냐,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 등등. 모두의 만류를 뿌리치고 용감하게 고양을 처음 찾았던 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신촌에서 고양을 오가는 버스가 없어서 택시를 탔어요. 고양 능곡으로 가자고 했더니, 운전하시는 분이 안쓰럽게 보시더라고요. 내릴 땐 택시 값도 깎아주셨어요. 힘내라면서요. 그 땐 고양시가 서울서 살다 힘들어지면 이사 오는 곳으로 여겨졌나 봐요. 순간, 나 혼자 너무 용감한 거 아니야 하면서 걱정이 앞서더군요.”

24년이 지난 지금 이중빈 산부인과는 70병실을 갖춘 준종합병원으로 성장했다. 비오면 전기가 끊겨 진료가 중단되는 열악한 시골 산부인과였지만 산모들이 끊임없이 찾아왔다. 90년, 일산에 대홍수가 나서 병원 일대가 물에 잠겼을 때 빼고는 아이를 받지 않는 날이 없었다. 일산신도시가 개발되고 화정 능곡 원당지역에도 아파트가 속속 들어서면서 병원은 더 바빠졌다. 94년, 신촌 세브란스에 있었던 남편 한원희 원장이 합류했고 병원은 쑥쑥 성장했다.

그 당시 같이 시작했던 병원들이 모두 같은 속도로 성장한 것은 아니었다. 문을 닫은 병원도 있고 오히려 규모가 축소된 병원도 있다. 봄여성병원 만큼, 고양시의 성장과 발맞추어 성장한 병원은 드물다. 어느 정도 도시 규모가 갖춰지면서 자본이 탄탄한 의료시설이 하나 둘씩 들어왔고, 종합병원도 여럿 문을 열었기 때문에 오래됐다는 것이 곧 경쟁력이 될 수는 없었다.

봄여성병원이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를 물었다. 이중빈 원장은 “글쎄요, 언니처럼 친근해서 아닐까요." 가볍게 답한다. 산부인과 의사들 사이에서는 ‘산모와 너무 멀리 하지도 말며, 너무 가까이 하지도 말라'는 원칙 같은 것이 있다고 한다. 아이 낳는 과정을 내내 지켜보는 것은 한 가족의 가족사를 함께 하는 것. 너무 알면 부담스럽고, 너무 모르면 무심해보이기 때문일까. 이중빈 원장은 산모들에게 언니 같은 사람이다. 따뜻한 언니가 아니라 쿨한 언니다. 무슨 말이든 잘 들어주고, 또 남에게 옮기지 않을 사람. 이중빈 원장의 손을 통해 아기를 낳은 산모들은 보통 평생 고객이 된다. 산후 몇 번 찾다보면 곧 둘째 아이를 낳게 되고, 나이 들면 여성과 질병으로 가끔씩은 찾게 된다.

“산부인과 진료를 오래 하다 보니, 가족 상담사 역할을 할 때도 많아요. 그 순간은 진심으로 상담사가 되어주기도 한답니다. 그러나 환자가 병실에서 나가는 순간 내가 들은 모든 일들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죠. 그래야 서로 편하잖아요.”

요즘은 산부인과가 인기 없는 분야 중 하나라고 한다. 저출산으로 수요는 줄어드는데다, 진료비용도 낮게 책정돼 수입은 적고, 한마디로 비전이 없단다. 특히 힘들고 위험성 높은 분만은 젊은 의사들이 선호하지 않아 50대 60대 의사들이 사명감으로 지키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중빈 원장에게 산부인과는 천직이다.

“너무 재밌어요. 체질에 맞는다고 할까요. 손이 떨려서 아기를 받을 수 없을 때까지 일하고 싶어요. 기운만 조금 떨어졌지 아직은 거뜬합니다. 의과대학 다닐 때, 수술하는 일이 좋아서 외과를 하고 싶었는데, 여자는 좀 불리하다고 만류해 산부인과를 선택했어요.”

산부인과 의사들은 ‘내가 받은 아기가 성장해서 다시 아기를 낳으러 오면 그만 할 때가 된 것’ 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중빈 원장은 정년을 생각하지 않는다. 병원일하며 지역사회를 위해 좋은 일도 하고 싶다. 누군가는 우스갯소리로 정치를 하라고 권한다. 봄여성병원에서 애기 낳은 가족만 표를 찍어도 기본은 충분할 것이라며. 그러나 정치는 체질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제가 좀 뚝배기 같은 사람이라 부드럽고 친절한 거, 또 반대로 치밀하거나 억척같은 거 잘 못해요. 그냥 지역주민을 위해 좋은 일 하고 싶어요. 저희에게 무한한 기회를 주시고 성장시켜주신 분들이잖아요. 이제 나이도 좀 들고 병원도 어느 정도 성장했으니, 부지런히 좀 찾아봐야겠어요.”

서울서 나고 자란 이중빈 원장은 고양을 고향처럼 사랑한다. 호수공원 산책하고 애니골에서 맛난 외식하고 아들이 다녔던 백석고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있다. 물론 행복의 가장 큰 조건은 남편 한원희 원장이다. 하루 2시간밖에 못 잤던 연세대 세브란스 인턴시절, 이중빈 원장의 두툼한 번역 숙제를 가져가며 “나는 잠이 없으니, 내가 해주겠다”고 말하던 그 착한 선배. 한원희 원장은 따뜻한 선배이자 동료, 든든한 남편으로 늘 나란히 있어준다.

지도 한 장 놓고 ‘듣도 보도 못한’ 고양으로 가야겠다고 결정한 서른 둘 용감한 여의사는 이제 예순을 앞 둔 나이가 됐지만 주름하나 없이 쾌활하다. 매일매일 새로운 생명을 맞는 일을 ‘신나고 재밌게’[ 여기는 삶의 지혜 덕이 아닐까 싶다.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