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의 가치는 계곡이 있기 때문에 상승효과가 난다. 행주산성이 볼만한 장소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는 것은 남쪽 아래로 끝없이 가로지르는 한강이 있기 때문이다. 행주산성 자체만으론 그렇게 발길을 끌지 못했을 것이다. 반대로 북한산에 한강만한 물은 없으나 최고의 명산으로 꼽히는 것은 한강 못지 않은 계곡이 있기 때문이리라. 산과 물이 서로 보완해주어 하나의 셋트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북한산은 명산이고, 그 안에는 수 많은 계곡이 각자의 멋과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계곡이 있으면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면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 공간은 쉬기도 하고 놀기도 하며 나름대로 의미있는 멋을 생산해내기도 한다. 북한산은 그 입구부터 이러한 공간이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그러한 공간에는 근처 바위에 어김없이 글씨가 새겨져 있다. 그것은 풍류의 상징이기도 하고 역사의 기록이기도 하다.

고양의 북한산성으로 들어가는 초입의 수구(水口) 역시 그 중 하나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수영장이 있었던 곳을 지나면 경국정사가 나오는데 경국정사 바로 못미쳐 커다란 바위가 버티고 섰다. 북한산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물과 기를 한 방울 한 점도 새나가지 못하게 막고 있는 형상이다. 이른바 ‘수구’라고 한다. 바위를 자세히 보면 글자도 새겨져 있다. ‘신묘 유월 십이일 일을 시작해서 구월 초이십 칠일 마쳤다. 수구 비장 통덕랑 서상원’이라 하였다. 이곳에 문(門)을 건설했던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수구문(水口門)이 있었던 모양이다. 역사의 기록이다.

수구문을 지나면 바로 왼쪽 바위에 ‘卦弓巖’이란 글자가 보인다. 활을 걸어놓은 바위란 뜻이리라. 거기서 약간만 더 올라가면 이번에는 ‘七遊巖’이란 글자도 보인다. 일곱 사람이 놀던 바위 쯤으로 해석하면 되겠다. 계곡 한 가운데 있으니까 찾기도 쉽다.

이번에는 숨겨진 글씨를 찾아보자. 경국정사 바로 아래 눈썹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바위 이름을 모르니까 그냥 눈썹바위라고 부르기로 한다. 이 눈썹바위 밑으로 들어가 자세히 보면 좌우 두 곳에 글씨가 새겨져있는데 모두가 사람 이름이다. 이름은 모두가 한자로 씌어있다. 좌우 모두 가로 1미터 세로 40센티미터 쯤 되는 사각형 모양을 다듬은 뒤에 각각 8명의 이름을 새겨넣었다. 오른쪽 부분에는 ‘신치복 박사한 신홍복 박사순 박정원 신□녕 박진원’ 그리고 ‘을미 오월’이라 했고 다시 ‘정석주’라는 이름이 추가로 새겨져 이다. 좌측부분에는 ‘□□禪’이라는 글씨가 마치 제목처럼 있고 계속해서 ‘박상복 김□제 김진상 김상경 강우창 강익주 강이주 차석□’라고 써 있으며 끝에는 역시 ‘을미 오월’이라고 써있다.

도대체 누가 이 이름들을 새겼으며, 이들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서 여기저기 찾아보니 몇 명은 확인이 되었다. 박사한은 함양군수를 지내기도 했는데 박사순과 형제이고, 박정원은 문과에 급제한 인물인데 박사한의 아들이다. 이름의 돌림자로 보아 박진원은 박정원의 형제쯤 될 듯싶다. 신치복은 군수를 지냈던 신태동의 아들인데 진사 출신으로 신계 현령을 지냈다. 이름으로 보아 신홍복은 형제가 되리라. 이들은 모두 문인(文人) 출신으로 짐작된다. 이번에는 왼쪽에 있는 이름을 찾아보자. 방목을 보니 정석주는 무과 급제한 정흥주의 아우이고, 박상복 강우창은 무과 출신이다. 강익주는 제주도 출신인데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벼슬을 하였다.

이 16명의 명단을 생몰년으로 추적해보니 을미년은 1739년으로 밝혀졌다. 우측의 명단은 대체로 문과출신이고 좌측의 명단은 주로 무과출신인 듯하다. 이들의 모임 성격은 무엇인가. 그 모임의 이름은 무엇일까 궁금하기만 하다. 혹시 괘궁암이나 칠류암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찾다보니 한 여름의 더위도 씻은 듯이 가셔진다.

내친 김에 더 올라가니 ‘백운동문’ ‘최송설당’ ‘청하동문’이란 바위글씨가 있어 지나는 등산객의 궁금증을 더해준다. 그런데 이 좋은 골짜기에 이름이 없다. ‘수구문골’이라던가 ‘백운동골’이라던가 무슨 이름이 있으면 더 인상에 남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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