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다. 휴가는 언제나 짧다. 2일부터 7일까지의 일주일 휴가를 끝내고 출근하니 미뤄놓은 일이 책상 가득이다. 휴가라고 제대로 여행 한번 못가서 아쉬움이 더 큰 모양이다.

더구나 휴가 중간에 고양신문 어린이기자단 첫 강의가 끼어있어 강릉에 내려가서 이틀만에 올라와야했다. 더위는 대관령 고개를 넘으니 사라졌다. 겨우 하루만 바다에 가보고는 비가 오락가락.

아쉬운 휴가 끝에 동네 사람들이 “계곡 가서 발 담그자”며 호출을 보내왔다.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30여분 남짓 걸리는 송추계곡에 도착. 이런. 비가 오래 안와서 계곡 물은 바닥에 붙어있고, 그나마도 온천수처럼 뜨거웠다. 사람들은 왜 그리 많은지. 발목도 다 잠기지 않는 계곡 물에도, 바깥 평상에도 사람들이 가득했다. “계곡 물이 왜 이렇게 뜨거워.” 불평을 터트리는 아이들을 차에 싣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정말 보통을 확실하게 넘어주는 더위에 사람들을 요즘 말로 ‘멘붕(멘탈붕괴, 정신이 혼미해진다는 신조어)’ 을 입에 달고 산다. 평소 ‘더위를 타지 않아’라고 말해왔으나 이번 폭염은 자존심을 버리게 만들었다. 사무실에서는 직원 수보다 부족한 선풍기를 차지하기 위한 눈치전이 치열했다. 누군가 는 꺼진 에어컨을 소리 없이 다가가 다시 켠다. 그래도 가끔씩 막대기 아이스크림이라도 들고 찾아오는 이들 덕분에 잠시 열기도 식히고, 미간에 잔뜩 잡혔던 주름도 펴본다.

차갑고 상쾌한 느낌을 기대하며 발을 넣었던 송추 계곡의 뜨거운 물. 실망과 짜증이 밀려왔다. 당연히 상쾌하고, 갈증을 풀어줄 것으로 기대했던 물.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고, 무언가 끈적거리는 느낌이 우리 가정까지 스물스물 파고 들고 있다. 이거 공포영화 버전인데.

고양시가 9일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환경부와 수자원공사 측에서는 ‘맛냄새 물질’이라 부른다는 지오스민이 고양시 절반 가까운 곳에 물을 공급하는 일산정수장에서 발견됐다는 것.

고양시에는 고양, 일산, 의정부 등 3개의 정수장에서 수돗물을 공급받고 있다. 고양정수장이 35만톤으로 가장 많은 양을 공급하고, 일산 25만톤, 의정부가 15만톤이란다. 이중 문제가 되는 곳은 일산정수장. 고도처리시설을 갖추지 못해 팔당 원수에 포함된 남조류 계통의 냄새원인 물질을 걸러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시는 ‘불쾌한 냄새가 나는 물질이 일부 포함돼있으니 식수를 끓여먹고, 샤워시 환기를 시켜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일산정수장에서 나오고 있는 지오스민은 13일 현재 4ppt로 기준치 20ppt이하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지오스민은 광합성을 하는 시아노박테리아 등과 같은 미생물이 자라면서 내놓는 물질로, 흙냄새를 만드는 원인물질이다. 위해성은 없고 휘발성이 강해 100도의 물에서 3분정도 끓이면 사라진다. 갑자기 비가 올때 코끝을 자극하는 흙냄새가 바로 지오스민이라고. 

그러나 인체에 해가 없다고 사람들의 불안까지 거둘 수는 없겠다. 폭염에 에어컨과 함께 정수기가 동이 날 지경이란다. 주문이 밀려들어 보통 일주일 이상을 기다려야 설치가 가능하다는 것. 정수기와 생수시장이라도 살아나는 것을 다행이라 해야할지. 고양시가 일산정수장에서 수돗물을 공급받는 지역과 대처요령을 서둘러 공지한 것이 그나마 시민들에게 제대로 정보를 주려는 노력이라 여겨진다.

연일 TV화면을 통해 탁한 녹색의 강물만 보여주니 갈증이 더 심해지는 것같다. 올 여름 500만 관객을 바라보며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영화 연가시. 영화에서 공포는 어느새 우리 가족, 아이들을 위협하고 있는 그것이다. 사랑스런 가족들의 생명과 영혼까지 흔드는 기생 생물. 커다란 생수통을 통째로 들이부으면서도 갈증이 가득한 아내의 눈빛.

지오스민이 위험하지 않다는 발표를 믿는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일산정수장에서 시민들의 민원전화까지 받으며 땀흘리는 수자원공사와 고양시 상수도사업소 직원들. 정부가 ‘총력대응’을 하고, 누구는 기우제를 지내며 비를 바라겠다니 지금의 상황은 서둘러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이미 반란을 시작한 자연, 환경의 변화가 다음 번에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두렵기만 하다. 생각이 여기까지 들고나니 답답하다. 고작 할 수 있는 일이 에어컨을 끄는 일밖에 없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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