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가을 심었던 쪽파가 중간만큼 자랐을 때 추위가 닥쳤다. 얼마가 지나야 다 자라는지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심어 이런 결과가 나왔던 것이다. 당연히 김장에도 뽑아 쓰지 못하고 밭에 그냥 놔두고 겨울을 맞았다.

지난 겨울날씨가 혹한이었기 때문에 죽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봄이 되자 밑둥치에서 다시 싹이 돋아 나오는 것이었다. 지난해 뽑아 먹고 남겨둔 대파에서도 싹이 돋았다. 그래서 파가 추위에 강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옆집 아주머니가 하는 말이 파는 옮겨 심어야 잘 큰다 했다. 그래서 다른 쪽에 퇴비를 뿌리고 삽으로 파서 잘 고른 다음 쪽파를 뽑아서 옮겨 심었다. 배게 난 쪽파를 뽑아 성글게 심으니 한 줄이었던 쪽파가 대여섯 줄이 되어 쪽파 밭이 되었다. 쪽파를 옮겨 심는 김에 부추와 대파도 옮겨 심었다.

부추 밭은 한걸음 반쯤 되고 대파는 두 줄이 되었다. 대파가 더 필요 했으므로 작년에 뿌리고 남아 있던 대파씨도 두 줄 더 뿌렸다. 옮기자마자 운 좋게 비도 촉촉이 내려서 옮겨 심은 파들이 착근이 잘됐다.

 그런데 가뭄이 시작되었다. 밭작물이 말라 갔기 때문에 조석으로 물을 주게 됐다. 당연히 파밭에도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었다. 이런 정성을 쏟았는데도 파밭은 상태가 점점 나빠져 갔다. 그나마 부추와 대파는 성장만 멈춘 채 현상유지는 하고 섰는데 쪽파는 끝부터 말라들어 가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이 지나가다가 내게 한마디 했다. 파를 옮겨 심을 때는 중등을 잘라서 옮겨 심어야 하는데 온전한 상태로 옮겨 심어서 시달린다는 거였다. 이 말을 듣고 모두 중등을 잘라 줬다. 이게 효험이 있었는지 대파와 부추는 상태가 조금 좋아졌다. 그러나 쪽파는 조석으로 물을 더 듬뿍 뿌려주며 살아나라고 기도까지 했는데도 결국 줄기가 다 말라 들어갔다.

 더 이상 가망이 없어 보여서 대파나 더 심어 가꾸자는 생각에서 씨 뿌려 가꾸고 있는 대파를 쪽파 밭에 옮겨 심게 됐다. 처음엔 마른 쪽파를 다 뽑아 버리고 대파를 이식하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동안 정성을 드린 쪽파를 차마 뽑아내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마른 쪽파를 그대로 놔둔 채 쪽파 줄 중간 중간에 골을 만들어 대파를 옮겨 심었다. 얼마 안가 옮겨 심은 대파가 잘 자라 쪽파 밭은 곧 대파 밭으로 바뀌었다.

 이러는 사이 가뭄이 끝나고 장마철이 시작됐다. 그런 얼마 뒤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다. 마른 쪽파 줄기에서 파란 싹들이 왕성하게 나온 것이다. 극한 환경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성장할 기회를 기다렸다는 걸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아마 줄기가 말라들어 갈 때 그 삶의 의지는 더욱 굳세졌던 모양이다. 급기야 왕성한 쪽파의 기세에 눌려 대파가 자라지 못하여 원래대로 쪽파 밭이 됐다.

쪽파를 보다 우리 사회가 돌아봐졌다. 쪽파가 참고 견딜 수 있었던 건 참고 견디면 반드시 하늘에서 비를 내려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 알맞은 환경조건을 만나지 못해 훌륭한 자질을 발휘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도 아마 쪽파와 같은 믿음으로 참고 견디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믿음에 응답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힘든 이들의 삶의 의지가 더욱 끈질겨지길 기도하고, 그들에게 성공의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가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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