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때. 이제 다시 시작해야지?”

지난 8월 17일, 경기도 파주에 새로 조성한 ‘장준하 추모공원 제막식 겸 37주기 추도식’에서 다시 뵌 장준하 선생의 부인, 김희숙 여사는 예의 그 환한 미소로 나를 반겼다. 지난 2003년, 당시 나는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 사건 조사팀장으로 일했고 그 인연으로 매년 장 선생의 추모제에 참석해 왔다.

한편, 이날의 추모제는 다른 여느 때와 달리 많은 추모객과 언론사, 그리고 정치인으로 북적였다. 이유는 새로 조성한 추모 공원으로 옮기고자 장준하 선생의 묘를 개장했는데 이 과정에서 드러난 약 6cm 가량의 두개골 외부 가격흔을 둘러싼 ‘타살 의혹’ 파문 때문이었다.

이처럼 발견된 가격흔에 대해 장준하 추모사업회와 야당 정치권은 일제히 “그동안 논란이 되었던 장 선생의 타살 가능성이 명백하게 확인된 것”이라며 국가 차원의  재조사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반면 박근혜 후보측은 “이미 지난 정부하에서 모든 조사가 이뤄진 사안”이라며 “정치적 공세를 중단하라”고 맞대응했다.
하지만 이같은 정치적 공방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빠져 있다. 바로 누구에게나 목숨은 ‘귀하다는 것’이다. 장준하 선생의 가족들에게, 그들의 남편이자 아버지였던 장 선생이 어떤 경위로 왜 죽었는지 그 진실을 알려주는 것은 민주주의 인권 국가로서 너무나 당연하고 기본적인 원칙임을 여야 정치권은 냉정하게 상기해야 한다.

2007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대통령 경선에 출마한 박근혜 후보는 장준하 선생의 부인 김희숙 여사에게 사과하고 싶다며 스스로 찾아간 사실이 있다. 그리고 김희숙 여사에게 “지난 날의 고통에 대해 진심으로 위로 드린다”라고 말한 후 손을 마주 잡았다. 그때 이같은 박근혜 후보의 언행에 대해 일각에서는 ‘대선 출마를 위한 진정성 없는 이벤트 사과’라고 비난했고 의심하기도 했다.

박근혜 후보 역시 자신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일각의 시선에 대해 매우 속상해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기에 나는 바로 지금이 박근혜 후보가 그 당시 의심받아 억울하다던 그 ‘진정성’을 확인시켜 줄 수 있는 ‘최고의 타이밍’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미 모든 조사가 다 끝난 사안”이라는 실망스러운 주장보다 지금 새롭게 확인된 장준하 선생의 타살 의혹에 대해 “제대로 조사하여 의혹을 밝히자”는 입장으로 선회해 주기를 기대한다. 또한 “이를 위해 내가 앞장 서겠다”고 한다면 더 이상 그에게 과거 아버지 시대의 독재를 따지는 이들은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07년. 주변 사람들의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희숙 여사는 박근혜 후보가 요청한 면담을 뿌리치지 않고 사과의 손을 잡아줬다. 그때 김희숙 여사가 잡아준 따스한 체온을 박근혜 후보가 다시한번 기억해 주기 바란다. 이제 87세가 된, 그래서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며 “남편의 억울한 죽음이 밝혀지기를 기대”하는 김희숙 여사의 마음을 매몰차게 뿌리치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어머니가 건강하셔서 그 끝을 보셔야 한다”는 말에 “이젠 다 됐어”라며 쓸쓸히 웃는 김희숙 여사를 보며 나는 그저 그 손을 꼭 잡아 드리는 것 외엔 달리 드릴 말씀이 없었다.

부디 장준하 선생의 진실이 밝혀지는 그날까지 우리 국민들의 깊은 관심을 기대한다.

고상만/서울시교육청 감사담당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