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한 원신동 주민자치위원장

고양시에서 8번째로 크고 덕양구 면적의 7.6%(12.69㎢)를 차지하는 원신동. 원당동과 신원동이 합해진 이곳의 주민은 2500여 명이 안 되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70년대부터 그린벨트로 개발이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농촌마을로 고스란히 남아 있을 수 있었다. 원신동 곳곳에는 세계문화유산인 서삼릉,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고려 공양왕릉, 월산대군묘, 파림군묘, 장의중 효자문 등의 사적과 송강문학관, 경주마교육원을 비롯해  화훼단지, 농협대학교, 골프장 등이 있이 있다.

권진한 위원장은 “원신동의 사적지와 화훼단지 등을 연결해 관광벨트로 구성하려는 계획이 있었지만 현재 백지화되어 있는 현실”이라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고양8경 관련 프로젝트가 있기에 기대의 끈을 버리지는 않고 있다.

1992년 고양시 승격으로 원당동과 신원동이 합쳐져 원신동이 탄생할 때만해도 인구 5000여 명 이상이었다. 그러나 급격한 고양시의 발전과정에서 “진짜로 시골냄새 나는 아름다운 원신동”은 불편한 교통문제와 교육문제 때문에 서울을 비롯한 인근 도시로 주민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후 삼송택지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원신동 주민이 타 지역으로 이주하게 되어 결국 2000여 명의 주민만이 남았다가 올 7월 삼송지구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면서 다시 늘기 시작했다.

권진한 위원장은 “그린벨트, 군사보호지역 등의 발전을 가로막는 요소가 많지만 원신동 주민들은 희망을 갖고 산다”며 원신동의 일부지역이기는 해도 삼송신도시 개발을 지역에 발전을 가져올 희망의 등불로 여기고 있다.
원신동에서는 주민 화합을 위해 정월대보름에 원신동 통별 척사대회를 개최하고, 각 단체별로 워크숍을 실시하며 한 해를 마무리 할 때는 송년회를 개최해왔다. 전형적인 농촌이기에 주민화합을 위한 행사에는 많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흥겨운 한마당을 만들어왔다고 한다.

2000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오는 ‘이웃사랑 나누기’ 사업을 위해 원신동 주민자치위원들은 올해에도 대두 20㎏을 휴경지에 심었다. 특산품인 ‘원당두부’를 생산하는 원당농협과 계약재배하며, 콩 수확을 통해 얻은 수익금으로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 등을 돕는다. “농사는 일기가 도와야 하는데, 복 있는 사람은 심은 날 저녁이면 비 온다”며 권진한 위원장은 올해도 콩 농사가 풍년이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또한 그는 ‘고양시 젖줄은 공릉천’이라며 원신동의 많은 지역을 거쳐가는 공릉천 정화사업을 8월 말 실시할 예정이다. 하천주변의 수풀이 우거져 있어 운전자들의 시야를 가리고, 돼지풀 등의 외래종이 빠르게 번식하고 있어 잡풀 제거를 하려는 것이다.

원신동 주민자치위원들은 곧 개최될 ‘매봉 대축제’ 준비로 저마다 분주하다. 주민센터 뒷산이며, 월산대군 묘와 사당이 있고, 송강 정철의 문학관과 송강길이 남아 있는 매봉산을 알리기 위해 ‘매봉 대축제’로 이름 붙였다.

인근에 있는 5161부대 연병장에서 열리는 ‘매봉 대축제’에는 군부대의 전차 전시, 노래자랑, 길거리 축제, 찾아가는 콘서트, 먹거리장터 등의 내용으로 준비하고 있다. 또한 덕양구 보건소에서 어르신들의 혈압측정, 체지방 분석, 건강상담을 할 부스도 설치할 것이다.

“내 자신을 믿고 산다”는 권진한 위원장. “내 힘으로 오늘까지 살아왔다”며 차남으로 태어나서 부모에게 특별한 것을 바랄 수 없었던 자신의 처지를 담담히 받아들여야 했기에 이런 좌우명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고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고, 다만 포기하고 내 힘대로 살자”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1978년부터 벼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1987년 채소 작목반을 구성하며 지역 활동을 했다. 7년간 바르게살기위원장을 했고, 주민자치위원에 이어 주민자치위원장이 된 그는 ‘번지없는 주막’, ‘고향무정’, ‘유정천리’ 등을 부르는 게 취미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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