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지가 자꾸 떨어져.” 태풍이 온다는 소식이 들렸던 27일 저녁 가족들이 창문에 신문을 붙이고 난리다. 물 뿌리고 돌아서면 자꾸 신문이 떨어진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분무기를 들고 계속 물을 뿌려야 한단다. 다음날 어차피 학교도 안가고 할일도 없으니 아이들에게 지켜서서 신문에 물을 뿌리라 하고 사무실로 나왔다. 

월요일 솔직히 태풍 소식보다 더 ‘허걱’이었던 것은 유치원, 학교들의 전면 휴교 뉴스였다. 초등학교의 휴교 문자가 오고 나니 연달아 학원, 어린이집의 휴원 소식이 이어졌다. 역대 두 번째인가 하는 위력을 갖고 있는 태풍이라는데 당연한 일이지만 일하는 엄마들에게는 참 당황스럽기만 하다. 동네 엄마들도 카톡과 문자로 소식을 주고 받으며 대책을 고민했다. 특히 엄마 교사들은 비상대기라 아이들을 데리고 출근해야겠단다. 

이런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아직 우리는 좀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태풍이 온다. 아이들의 안전을 고려해 보건복지부는 보육기관, 교육부는 교육기관의 휴원과 휴교를 결정, 발표한다. 비상 상황이니 교사들과 직장인들은 비상 근무를 명한다. 그리고 거기까지 끝이다. 아이는 안전하게 집에 있으라면서 그들을 돌봐야할 엄마들은 일을 하라면 어쩌란 말인가. 하루만에 베이비시터나 도우미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친정 혹은 시어머니가 불려오게 된다. 행정이나 정치를 하는 편에서는 ‘이미 충분히 많이 배려한다’고 여기지만 역시 경험하거나 그 ‘편’에 서 있지 않으면 실질적인 대책은 쉽지 않다.

지난 주말 ‘SBS 스페셜’에서 ‘가출팸’ 이야기를 보았다. 방송의 계기가 된 것이 몇 달전 발생한 행신동 가출청소년 살해 사건이었던 모양이다. 충격적인 사건 이후 단독주택지 주변에 여전히 남아있는 가출청소년들의 주거지를 둘려보려는 시도를 우리도 여러번 했던 터라 관심있게 지켜보았다. 카메라가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있는 그대로를 담으려는 노력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혼숙, 성매매라고 단어화하면 느껴지게 되는 비판적인 시각들을 최대한 배제하고 아이들의 상황을 비쳐주었다. ‘가출팸’은 가출과 패밀리의 합성어다. 가출 청소년들이 2~10명씩 모여 집단으로 거주하는 모임을 말한다. 청소년들은 처음에는 경제적인 이유로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동료를 찾지만 곧 서로를 의지하며 때로는 커플이 되기도 한다. 물론 잘못 들인 동료에게 집을 한방에 다 털리거나 범죄로 연결되기도 한다. 종류가 다른 컵라면이 거의 매일의 식사인 이들에게 성매매나 범죄의 유혹은 가까울 수밖에 없다. 

화면 속 16~17세 정도의 청소년 5명은 2커플과 1명의 솔로로 구성돼있었다. 잠은 커플끼리 자기도 하고, 동성끼리 자기도 한다고. 어른들의 시선에서는 당황스러울 만큼 자유롭고 비윤리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들은 “가족들과 살 때는 알지 못했던 편안함을 처음으로 느낀다”고 말했다. 폭력과 무관심. 겨우 20년이 안되는 세월 동안 그들이 가족과 사회로부터 받았던 대접들이 그랬다. 지금의 청소년 문제는 사회의 곪아터진 치부임을 모르는 이들은 별로 없다. 그러나 문제 상황에 대한 대처는 겨우 고름을 닦아내는 수준에서 끝나고 만다.

행신동 사건 이후 고양시도 관련 포럼과 네트워크 구성 등 대책 마련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청소년 간담회 등 몇몇 행사가 형식적으로 치러진 이후 아직까지는 별다른 결과물이 없어 보인다.

최근 학교내 폭력, 청소년들의 인권과 관련한 제보가 몇 건 있었다. 제보 내용으로만 보면 심각한 상황이라 바로 취재를 하겠다고 했지만 한 건은 피해 학생 측에서 문제를 삼고 싶지않다며 기사화를 거부했다. 다른 제보들도 이런저런 고려해야 할 상황들이 많아 고민 중이다. 그런데 청소년들과 학교의 대처를 살펴보며 ‘왜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걸까’ 답답하기만 하다. 그렇게 많은 대책을 이야기했는데 학교와 교육 당국의 대처는 여전하다. 외부로 사건이 알려질까 두려워 쉬쉬하기 일쑤다. 피해학생들과 학부모에게 서둘러 합의와 화해를 종용한다. 피해학생의 전학을 유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책, 정책을 마련하기 전에 정책입안자들이 그 대안이 필요한 이들의 삶에 들어가보는 일은 어려울까. 가출 청소년, 학교폭력 피해 혹은 가해 학생도 한번 만나보지 않고 대책과 정책을 거론하는 일은 아닌 것같다. 기사와 뉴스만 진실과 현장을 말하라는 법이 어디 있나. 정책이야말로 펄떡펄떡 살아있는 현장에서 나와야 ‘레알(진짜)’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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