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이며 최대도시이자 최첨단 도시이다. 서울역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고 노선도를 보는 순간 도시 규모를 실감하게 된다.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지하철노선에서 행선지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인구가 1000만명을 넘는 서울시는 행정구역상 25개 구와 424개 동으로 구성된 어마어마한 지역이다. 이렇게 많은 기초행정구역단위가 하나의 시정부 산하에 소속된 곳은 전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서울사람들은 합리적이고 세련되고 윤택한 사람들로 여겨진다. 정부기구는 물론이고 대기업 본사, 주요 금융기관, 소위 일류대학, 대형언론사 등 국가정책을 결정하고 국민여론을 주도하는 집단들도 거의 모두 서울에 존재한다.

그런데 서울에 아직 군사독재 시절의 낡고 비민주적 유산이 한 가지 남아 있다. 그것이 남아 있는 이유는 서울시가 매년 수십억의 예산을 편성해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계도지啓導紙’가 그것이다. 국어사전에도, 백과사전에도 발견되지 않는 용어이다. 당연히 법적인 근거도 없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독자들을 계몽하고 지도”하는 신문이라는 뜻이다. 계도지는 군사독재시절 정부가 말단행정을 담당하는 통장과 반장들에게 구독하게 하고 대신 구독료를 정부예산에서 부담하는 관행이었다. 독재자들은 정부시책을 홍보하고, 신문사는 구독료 수입을 늘리고, 통반장은 신문구독료 절약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계도지는 언론의 자유와 공정한 시장경쟁이라는 민주주의 근본원칙에 반하는 관행이다. 정부에게 선택당한 계도지는 안정적 구독료수입을 확보하는 대신 정부의 비판과 감시라는 본래의 기능을 게을리하게 된다. 그래야 계속 계도지로 남기 때문이다. 민주화와 더불어 많은 신문사들과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관언유착의 상징인 계도지 폐지운동을 벌였고, 이후 대부분의 자치단체들이 계도지 예산지원을 중단했다.

그렇다고 지역신문의 열악한 상황을 도외시한 것은 아니다. 지방자치에 지역신문이 매우 긴요한 수단이라는데 공감하고, 국회는 2004년 지역신문지원특별법을 제정했다. 많은 언론사와 시민단체 그리고 학계가 지역신문지원특별법 입법에 적극 기여한 덕분이다. 지역신문지원법은 신문경영이 투명하고 편집권이 보장된 지역신문에게 재정지원과 교육연수 기회를 부여해 신문시장 경쟁에서 살아남아 자생적 독립언론이 되도록 유도하는 제도이다. 그에 따라 2005년부터 매년 엄격한 심사를 거쳐 50-60여개의 건실하고 우수한 지역일간지와 주간지들이 정부지원의 혜택을 받고 있다.

그런데 서울지역에서 발행되는 150여개의 주간지역신문 중에서는 단 하나의 신문, <구로타임스>만이 지역신문지원법 지원대상으로 선택되었다. 그만큼 건실한 지역신문이 서울에는 없다는 의미이다. 그 주된 이유는 서울시가 여전히 계도지라는 명목으로 지역신문을 음성적으로 지원하기 때문이다. 2012년도 서울시 종로구의 통반장 계도지 지원현황을 보면 4개 중앙일간지 구독에 1억 9800만원, 4개 주간지역신문 구독에 1억 3500만원을 배정하고 있다. 동작구의 경우, 6개 중앙일간지 구독에 2억 9160만원, 4개 주간지역신문 구독에 1억 3440만원을 배정했다.

계도지 예산지원은 단순한 관언유착 이상의 폐해를 가져온다. 건강한 지역신문이 성장하기 어렵게 만들고, 건강한 지역신문 덕분에 발생하는 사회적 혜택이 지역주민들에게 돌아가지 못한다. 자치단체를 비판감시하고 지역주민의 여론을 수렴하는 지역언론의 기능이 발휘될 수 없는 것이다.

지역신문의 입장에서 본다면, 서울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낙후한 지역이다. 서울시의 계도지라는 군사독재 유물이 제거될 때, 대한민국 지역신문은 새로운 도약을 하게 될 것이다.

장호순/순천향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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