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새마을, 주민들이 나선 도시재생 주거복지

▲ 매년 겨울마다 어르신들이 다친다는 가파른 도로. 두꺼비하우징이 주민들과 보수 계획을 세우고 있다.
▲ 두꺼비하우징에서 난방 공사와 리모델링을 한 집. 오른쪽.
숨이 턱에 차는 가파른 언덕에는 마을버스도 다니지 않는다. 주차공간이 없어 좁은 도로에 아슬아슬 세워놓은 차들 때문에 버스회사들이 배차를 꺼리기 때문이란다. 눈이라도 오면 어쩔까 싶다. “이 도로가 매년 어르신들이 몇분 꼭 다치시는 곳입니다. 경사가 급해 눈이 오면 완전 빙판이 되거든요.” 두꺼비하우징 윤전우(42세) 팀장이 가리키는 언덕은 구두를 신은 기자에게도 난코스였다. 도로의 파손상태도 심했다. 두꺼비하우징에서 도로개선 계획을 잡고 있다고. 동네 곳곳에 손길이 절실해 보였다. 예전이라면 건설업체나 공공에서 ‘뚝딱’ 해치울 일이지만 두꺼비하우징은 하나씩 산새마을의 주민들과 함께 천천히 풀어나가고 있다.

사업성 없어 재개발 결국 무산
은평구 두꺼비하우징 시범사업 마을인 산새마을은 신사동 237번지 일대를 말한다. 106가구에 700여명이 살고 있다. 주택 노후율 72.6%. 자기 집 소유 비율이 39.7%. 주민들은 재개발 사업을 희망했으나 사업성이 나오지 않아 무산됐다. 북쪽으로는 은평뉴타운이, 불광역과 연신내역 주변에는 상업지역이 있다. 지하철 6호선 응암역에서 걸어서 20분. 버스를 타는 곳까지는 10여 분 걸어야한다.  
작년 6월 산새마을을 두꺼비하우징 시범사업으로 선정한 두꺼비하우징 측은 마을조사사업과 마을학교를 먼저 시작했다. 설문조사에서 주민들은 낡은 집 수리, 쓰레기 처리, 주차공간, 주민편의시설 개선 등을 원했다. 9월 마을학교를 통해 주민들은 두꺼비하우징 직원들과 마을을 돌며 마을의 자산과 해결 현안을 함께 찾았다.

▲ 사람이 살고 있다는 낡은 집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위태로워보였다.
우선 쓰레기가 가득 쌓여있던 봉산주변의 공원은 은평구청이 매입해 지하주차장과 공원으로 만들기로 했다. 주인이 40여명이나 되는 복잡한 땅이지만 매입예산 30억원이 올해 반영됐다. 그런데 공공보다 주민들이 먼저 나섰다.

“여기 쓰레기를 동네 어르신들이 다 치웠습니다. 매일 나와서 돌보고, 말씀도 나누시죠.” 꽃도 심고, 정자도 마련해 산 밑 경로당이 됐다. 직접 애정을 쏟은 만큼 구에서 공원을 만들게 되면 주민들이 더 잘 관리해줄 터다.

쓰레기 25톤을 주민들이 직접 치워
유기농 깻잎 등 채소를 팔아 마을기금을 만들고 있는 소중한 텃밭도 원래는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있었다. 텃밭에 대해서는 윤전우 팀장도 마을주민 이상으로 할 말이 많다.

“쓰레기를 이틀이면 치우겠지 하고 마을 주민 8명과 함께 일을 하자고 약속을 했죠. 오전 10시에 아무도 안나와 오후 1시까지 혼자 일을 했습니다. 화가 슬슬 나려니까 주민들이 한분씩 나오시더군요.” 쓰레기만 치우는데만 3주가 걸렸다. 25톤 쓰레기가 산처럼 쌓였다. 윤 팀장은 은평구청 청소과에 부탁을 했고, 4톤 트럭으로 7번 쓰레기를 날랐다. “거기 원래 개장수네 집이었어요. 냄새나고 무서워서 아무도 안가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우리가 매일 돌아가며 일해요.” 최복순(47세) 통장도 한마디 거들었다. 수확한 채소는 마을 무료급식소에 보낸다. 일부는 인근 식당에 판다. 

그게 시작이었다. 주민들은 공터를 일구고 텃밭을 만들었다. 낡은 집, 난방이 제대로 안되는 집들을 시범으로 두꺼비하우징에서 고쳐주었다. 반신반의 지켜보던 주민들이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처음 우리가 난방 공사를 한 집에서 그해 겨울 주민들을 다 초대했습니다. 원래는 문닫아 걸고 살던 사람이었다는데. 그렇게 모여 마을 이야기를 하다보니 변화가 생기더군요.”

▲ 주민들이 모여 뜨게질을 하고 있다. 이 공간 역시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있었다. 주민들이 모두 모여 청소하고 지금의 야외 마을회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은평구에서 마을회관을 지어주기 전에 마을주민들이 기금을 모아 월 25만원 보증금의 마을사랑방을 만들었다. 주민들이 돌아가며 청소하고 관리한다. 공간이 있으니 프로그램과 회의도 자유롭게 됐다. 풍물, 문화프로그램이 굴러간다. 매일 밤 9시 자율방범대가 마을을 순찰한다. 쓰레기가 넘쳐나고, 어두컴컴해 무섭기만 하던 마을이 주민들의 환한 웃음으로 밝아졌다.

“은평구에서 4층짜리 마을회관을 지어주겠다며 멋진 조감도를 가져왔더군요. 관리비가 월 200만원이 든다는데 주민들에게 감당할 수 있냐고 물었죠. 결국 층수를 줄이고, 꼭 필요한 공간만 넣기로 주민들과 그림을 다시 그렸습니다. 여기 마을사랑방은 초라하지만 주민들이 자치를 공부하는 체험장이라 할 수 있죠.”

▲ 어르신들이 직접 쓰레기를 치우고 정자도 만들었다. 구에서 예산을 들여 공원으로 만들 예정이다.
천천히 마을주민들의 역량이 자라면서 두꺼비하우징에서는 ‘산새마을 협동조합’을 준비하고 있다. 낡은 집을 고치고, 관리하는 일을 마을관리조합에서 직접 맡아하는 것이다. 마을 바로 위 봉산의 관리권을 주민들이 받아 시민과수원을 만들 생각이다. 세입자나 어려운 이들이 많이 사는 산새마을에 수익과 일자리를 만드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재개발 진척이 아무것도 안돼 주민들의 실망이 컸어요. 그런데 두꺼비하우징에서 집도 잘 고쳐주고. 주민들이 나서 지킴이도 하고, 풍물도 치면서 요즘 사는게 아주 재미있어요.” 최복순 통장의 환한 웃음이 산새마을의 미래를 말해주는 듯 했다.

▲ 산새마을은 다른 지역에서 벤치마킹을 자주 온다. 관악 주민자치위원들이 찾았다.
“강제로 떠밀려 가는 일 없을 것”
“이제는 아파트 위주의 획일적이고 무리한 주택개발 정책에서 탈피할 때가 됐다. 단독과 다가구 주택이 밀집된 주거지역이 방범, 주차장 등 도시기반시설을 보조하면서 주택 개보수와 관리를 대행해주는 사회적기업 두꺼비하우징 설립도 검토하겠다. 은평구에서 주민들이 강제로 떠밀려 쫓겨가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2010년 김우영 은평구청장은 취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 구청장은 선거전 공약에서도 두꺼비하우징을 약속했다. 은평구는 서울시에서 단독주택, 다세대 주택 등이 아파트에 비해 높은 비중을 차지하며 노후주택 비율이 32.8%로 타 지역보다 높았다. 재개발 뉴타운의 사업성이 떨어지면서 새로운 방식의 도시재생, 주거사업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두꺼비하우징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마을 주민들이 주체라는 것. 산새마을이 먼저 마을학교를 열고, 주민들이 스스로 문제를 찾게 한 것도 그런 이유다. 한꺼번에 낡은 집을 다 고치는 것이 아니라 시범으로 몇 집을 고친 다음 주민들과 함께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조금씩 바꾸는 것이다. 집을 고치는게 목적이 아니라 가속도로 달려왔던 개발 때문에 잃어버린 ‘지역공동체를 살려내고, 사람들에게 마을을 돌려주는 것’이 두꺼비하우징 사업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 마을 회의도 야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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