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온다고 못가고, 늦잠 자서 못가고. 이런저런 핑계로 일주일에 서너번밖에는 못 가고 있지만 하여간 최근 아침 산책을 시작했다. 살고 있는 아파트 근처에 산책로가 제법 맘에 든다. 오랜만에 가보니 표지판이나 운동기구도 잘 갖춰져 있고, 무엇보다 오르락 내리락 산길이 재미가 있다.

주말에는 평소보다 좀 늦은 시간 여유롭게 산책길에 오르는데 8시 정도가 넘어서면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 호젓해 좋다고 생각하며 출발하는데 정말 혼자가 되어 가다보면 앞뒤에 오고가는 사람의 발걸음에 흠칫 놀라게 된다. 그이가 허름한 운동복 차림의 남자인 경우에는 더 그렇다. 걸어오는 상대 역시 마찬가지인 듯 서로 어색한 표정으로 외면을 하며 스쳐지나가곤 한다. 대부분은 옆단지, 같은 동의 이웃 아저씨들일텐데 나도 모르게 과한 반응을 보인 것이 지나고 나면 민망하기만 하다. 하지만 요즘 같을 때 나만 이러기야 하겠는가. 

굳이 신문을 펼치고, TV를 켜지 않아도 연일 터져나오는 성폭력, 묻지마 범죄에 모두들 신경이 곤두 서 있다. 잠들기 전 집안 문단속 한번 더하고도, 부시럭 소리에 자고 있는 아이가 잘 있나 다시 챙겨보게 된다. 길가다 옷차림 조금 허름한 남성들은 자칫 샛눈으로 보게 되니 아내들은 남편들의 운동 복장까지 신경써야할 판이다. 이제는 수시 검문까지 한다지 않는가.

어제는 늦은 퇴근길 집앞 학교를 지나다보니 차들이 늘어서 아이들을 태웠다. 그중 차 한 대는 걸어서 5분도 안되는 거리에서 멈췄다. 기름값이 문제랴. 내 아이 안전이 먼저인 그 부모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됐다.

인터넷과 SNS(소셜네트워크)상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인 의도 아니냐’ 는 등의 각종 루머까지 떠돌다보니 사회적 불안감은 커지기만 한다. 정부와 경찰이 발표하는 대책이란 것에 도무지 신뢰가 가지 않으니 마을별로 자율방범대나 자치 치안대라도 결성해야하는 것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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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에 주름을 만들어가면서도 또다시 뉴스에 눈이 가는데 포털을 통해 접하는 일부 중앙일간지의 뉴스 제목들이 가관이다. 흉악한 범죄자를 옹호할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성범죄 피의자를 어려서부터 학대했다는 부모의 뉴스까지는 ‘그런가’하고 보았다. 그러나 누나까지 거론하더니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까지 나오는 때에는 버럭 화가 목구멍에서 치밀어오른다.

한 어린이집 교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태풍 볼라벤으로 휴원을 했는데도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부모를 원망하는 내용의 다분히 사적인 불평을 올렸단다. 그 글을 보게 된 부모들이 그 내용을 엄마들이 자주 찾는 카페에 게재하면서 그 교사의 신상이 인터넷 상에 공개됐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참 안타깝기만 했다.

SNS와 스마트폰이 확산되면서 신상털기의 피해자는 그 누구나가 될 수 있다. 자신의 공간에 사적으로 올린 글 때문에 인터넷상의 공개재판을 받는다면. 단지 누군가의 친구, 혹은 가족, 친척이라는 이유로 몰매와 비난을 받는다는 이는 공공이 나서서 막아야할 일이다. 

이런 일에 언론이, 그것도 유력 중앙언론사가 나서고, 포털이 이를 유포하는 일은 진정 옳지 않다. 게다가 1면에 범죄피의자라고 엉뚱한 사람의 얼굴을 게재했단다. 피의자와 동명이인들이 ‘나는 그 사람이 아니다’라며 억울해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언론은 사회의 공기(公器)로서 사적인 궁금증이 아닌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야할 의무가 있다. 매번 비슷한 사건이 터질 때면 불같이 일어났던 분노가 시간이 흐르면 푹 꺼지는 응원석 파도타기 같은 사회 분위기를 적절한 진단과 조언으로 객관화시키는 것도 역시 언론의 몫이다. 필요한 사회적 관심을 꾸준이 일깨워주고, 요즘 같을 때 숨통을 틔워주는 공기(空氣)가 되는 일도 말이다.

주말에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봤다. 역시 무거운 공기를 날려버리는 데는 차태현의 코미디 영화가 최고다. 무거운 이야기로 시작해 갑자기 영화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기자도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다음주 화란으로 떠나게 됐음을 알려드리기 위해서다. 물론 낙타는 아니고 비행기를 타고 간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 ‘마을이 만병통치약인가’ 기획기사의 해외 취재로 네덜란드의 자치공동체, 집합도시, 생태공동체 등을 돌아보고 지면을 통해 소개하게 된다. 시민들이 자치역량을 키워내고, 공동체를 통해 도시를 만들어가는 노하우를 잘 배워 고양시에 전할 생각이다. ‘나라의 돈’ 받아 가는 일정이니 짧은 일정이지만 성실하게 보낼 것을 약속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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