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지만 아이가 아파서 약속을 지킬 수 없겠다.” ‘지속가능한 신도시’ 알미에 기획에 참여한 건축가 얀 베르그씨는 그렇게 우리를 바람 맞혔다. 도시재생과 마을만들기를 주제로 한 네덜란드 기획취재의 마지막 일정이었다. 얀씨의 문자는 약속 당일 아침에 도착했다. 혹시 동양의 먼 나라에서 온 지역신문 기자들을 무시하는 건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섭외를 맡은 이에게 슬쩍 눈빛 화살을 날려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 나라에서는 누구나 아프면 전화 한통으로 출근을 하지 않는단다. 감기에 걸려 출근하면 다들 “왜 나왔냐”며 거꾸로 눈총을 준다는 것이다. 눈이나 비가 많이 와도 마찬가지란다. 폭설에 서너시간 걸려 출근하고, 독감에는 가장 ‘강력한’ 약을 처방받아 콜록거리며 회사 사무실에 앉아있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우리에게는 이해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1년에 공휴일 빼고 50여 일을 쉬는 네덜란드. 병가는 휴가 일수에 포함되지 않는단다.

“학교에 청소 아주머니가 아프다고 일주일 쉬었어요. 지저분한 학교를 보며 다들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더군요.” 가이드의 설명이다. 그러고보니 주말 도로에 쓰레기가 좀 많아 이상하다고 여기긴 했다. 네덜란드에서 공공기관들은 오후 5시까지 근무하고, 대부분의 가게들은 주말에 열지 않는다. 불편하지 않느냐면 “전날 미리 사두면 된다”고 답한단다.

광고문구의 ‘빠름 빠름’이 인기를 얻는 우리에게 ‘느릿느릿’ 살아가는 사회는 한편으로 부럽고 답답하기도 하다. 하여간 처음으로 돌아가 우리는 그렇게 얻은 시간으로 암스테르담의 반 고호 미술관과 국립박물관을 찾았다. 

네덜란드는 고흐와 렘브란트, 브뤼헐, 베르메르 등 유명한 화가들을 많이 배출했다. 아름다운 자연과, 바다를 땅으로 만들만큼 역동적인 사람들이 사는 나라에서 문화적인 자산까지 풍부하니 부러움에 눈이 커진다. 무엇보다 그 자산들을 소중하게 지키고 도시마다 미술관, 박물관을 만들어 관광 상품으로 훌륭히 활용해내고 있다. 암스테르담 곳곳에는 고흐의 이름과 그림이 걸려있다. ‘진주귀고리 소녀’로 유명한 베르메르의 고향 델프트 역시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아는 척할 만큼 미술이나 문화를 잘 알지는 못한다. 그저 짬이 조금 생기면 찾는 정도다. 재작년 쯤 일본 연수때도 그런 기회가 주어졌다. 일본 주요 신문사들의 온라인 전략을 공부하는 기회였다. 혼슈 아오모리현의 토오일보를 방문하고 조금 시간이 난 것이다. 다들 온천을 가겠다고 했는데 나는 일단의 동조자들과 함께 미술관을 선택했다. 온천팀에서 “주동자가 누구냐”며 눈총을 보냈지만 모른 척 외면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사실 뭘 알고 선택한 건 절대 아니었다. 함께 한 소수의 동조자들도 “뭐 잘 모르는 사람과 벌거벗고 온천이냐”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큰 기대없이 찾았던 아오모리현립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샤갈의 대형 작품이 우리를 맞이했다. 거대한 전시실을 가득 메운 샤갈의 작품에 “진품 맞냐”며 신기해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오모리는 사과와 가면축제, 온천이 유명한 관광지이기는 하지만 북해도와 가까운 일본의 북쪽 시골마을이다. 미술관도 도시 외곽에 위치해 정작 미술관 자체는 규모가 크지 않았다. 이런 곳에 샤갈의 진짜 그림이 걸려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샤갈이 발레극 알레코의 무대배경으로 그린 작품이라는 걸 나중에 검색해서야 알게 됐다. 국내에도 펜이 많은 요시모토 나라의 작품도 만날 수 있었다. 알고보니 아오모리 출신이었다. 짧았지만 현립 미술관은 두고두고 아오모리를 기억나게 한다. 가끔 파란 사과만 봐도 샤갈과 요시모토 나라가 생각나기도.

최근에는 문화도시, 컨텐츠의 상품화를 많이 이야기한다. 덕분에 도시마다 축제, 박물관, 다양한 이벤트가 넘쳐난다. 고양시라고 예외는 아니다. 매년 새로운 이벤트가 만들어지고 있다. 화훼산업과 접목된 꽃박람회 이외에는 아직 고양의 문화로 안팎에 각인되는 그 무엇은 찾기 어려워보인다. 호수공원과 고양시 전역을 배경으로 열리는 고양호수예술축제가 그나마 그 규모와 출연팀의 명성을 힘입어 인기를 얻고 있다. 고양시가 갖고 있는 자산을 활용한다는 측면에서도 호수예술축제는 기대가 된다.

마을만들기도 그렇지만 문화 역시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 찾는 일이 가장 먼저가 아닐까. 고양시의 인적 물적 문화적 자산이 무엇인지 찾는 일이 문화도시를 만드는 처음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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