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농깃대를 앞세우고 징, 꽹과리와 북을 치며 동네어귀를 지나가는 행렬을 보고 괜히 신나 쫓아 다니곤 했습니다. 커가면서 그것이 ‘두레패’라고 하는 농촌공동체를 상징하는 대표적 기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힘든 일을 함께하며 능률도 높이고, 피곤한 근육을 농악에 맞추어 춤추며 풀면서 다음날의 고된 일과를 대비했을 것입니다. 이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막걸리였습니다. 그래서 농주라고 했습니다. 배고픈 시절이라 술도 마시면서 배도 부른 이보다 더 좋은 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런 정겨운 풍경을 고양시 일산 문화공원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술 심부름을 하며 주전자 꼭지로 홀짝거리던 그 구수한 막걸리 맛을 다시 느끼실 수 있습니다. 막걸리는 지역에 따라 맛이 각양각색입니다. 팔도의 막걸리를 한자리에 모아놨습니다. 공짜로 고향의 맛을 음미하면서 향수를 달랠 수 있겠습니다. 각지에서 막걸리 축제가 열리고 있지만 대개 그 지역 대표 브랜드 막걸리를 가지고 이벤트를 결합한 축제에 그치고 있습니다. 고양시 막걸리축제는 대규모 소비시장에서 팔도의 대표막걸리 100여종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 품평을 하며 다양한 맛을 즐긴다는데 특징이 있습니다.
산업화와 더불어 우리의 대표적인 술인 막걸리가 뒷전으로 물리고, 희석식 소주와 외래술인 맥주와 양주가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빠르지 않으면 낙오되는 시대에, 숙성돼야 비로소 맛의 깊이가 나는 느린 막걸리보다 소주 같은 급한 술이 어울렸겠지요. 그런데 지식정보화 시대라는 현재에 ‘슬로우 푸드’ 운동처럼 자연스럽게 막걸리의 진가가 드러나며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특색을 살린 막걸리 전문점이 등장하고, 수출도 하고, 호텔에서 고급술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고양시 막걸리축제는 10회를 거듭하면서 이러한 막걸리 붐을 일으키는데 크게 일조했습니다. 처음 젊은이에게 막걸리의 맛을 한번 보여주자는 소박한 희망을 갖고 출발한 축제가 이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술축제로 성장했습니다. 우리 국민이 막걸리를 아끼고 음용해 주신다면 쌀소비도 촉진해 농민의 소득도 높이고, 비싼 양주 수입하느라 쓰는 외화 낭비도 줄이고, 건강에도 좋은 일석삼조의 효과는 말하여 무엇하겠습니까.
막걸리는 농사철에 힘을 돋우는 노동주였으며, 축제 때 함께 즐기는 나눔의 술이고, 일반인들이 값싸고 손쉽게 마실 수 있는 서민주였습니다. 막걸리에는 이렇듯 함께 ‘어울림’과 수확에 대한 ‘감사’의 의미가 담긴 술입니다.
‘대한민국 막걸리축제’의 열번째 행사가 오는 10월 6일과 7일 양일간 호수공원 입구 일산문화광장에서 열립니다. 이 축제의 자리에서 선조 때부터 그랬듯이 감사와 어울림, 조화와 융합의 정신을 담은 음주가무를 즐김으로써 막걸리에 담긴 정신의 부활을 꿈꾸어 보았으면 종겠습니다. 생산자와 소비자, 고운 분들이나 미운 분들이나 모두 한자리에 모여 신명나는 공동체의 대동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기자명 윤주한/대한민국막걸리축제위원장
- 입력 2012.10.05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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