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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러온 돌’ 마을공동체를 굴리는 ‘박힌 돌’ 되다공동육아에서 지역 생활협동조합으로 도약
시립도서관 유치, 마을신문, 주민자치까지
  • 김진이 기자
  • 승인 2012.10.31 13:20
  • 호수 1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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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티나무어린이집 어린이들
“사회적기업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아니다. 그건 동아리다. 시민들은 사회적기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는 갸륵한 일을 선택하는 것이다.”
사회투자지원재단의 장원봉 상임이사는 최근의 사회적기업 열풍이 자칫 사회적 경제의 기본을 잃어버리게 하지 않을까를 염려했다. 막대한 공공 예산이 투입되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법적 제도적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사회적기업은 일반 기업과 분명 달라야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이태리 볼로냐모델로 불리고 있는 원주협동조합이나 진안나눔푸드 등 전국의 자리잡은 사회적기업에서 배워야할 것은 자립이나 안정적 운영에 앞서 공공과 나눔의 기능을 얼마나 잘 감당하고 있는가이다. 평택교육생활협동조합 느티나무 마을은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출발했지만 지역사회와 ‘더불어살기’를 위해 만들어진 협동조합이다. 내 아이를 잘 키우는 일에서 지역을 살리는 일로의 도약을 어떻게 일궈내고 있는지 평택 교육생활협동조합 느티나무마을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았다.

“사회적기업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아니다. 그건 동아리다. 시민들은 사회적기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는 갸륵한 일을 선택하는 것이다.”사회투자지원재단의 장원봉 상임이사는 최근의 사회적기업 열풍이 자칫 사회적 경제의 기본을 잃어버리게 하지 않을까를 염려했다. 막대한 공공 예산이 투입되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법적 제도적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사회적기업은 일반 기업과 분명 달라야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이태리 볼로냐모델로 불리고 있는 원주협동조합이나 진안나눔푸드 등 전국의 자리잡은 사회적기업에서 배워야할 것은 자립이나 안정적 운영에 앞서 공공과 나눔의 기능을 얼마나 잘 감당하고 있는가이다. 평택교육생활협동조합 느티나무 마을은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출발했지만 지역사회와 ‘더불어살기’를 위해 만들어진 협동조합이다. 내 아이를 잘 키우는 일에서 지역을 살리는 일로의 도약을 어떻게 일궈내고 있는지 평택 교육생활협동조합 느티나무마을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았다.

 

“너 공기놀이 어떻게 그렇게 잘해? 와.” 평택 공동육아 느티나무 방과후 아이들은 매주 수요일 오성초등학교에 와서 다른 어린이들과 함께 전래놀이를 배운다. 아니 그냥 논다. 전통 줄넘기, 비석치기, 사방치기 등 요즘 아이들은 잘 하지 않는 놀이지만 함께 놀아주는 어린들과 교사들도 있어 어렵지 않다. 공동육아와 지역 어린이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시간이다. ‘귀족보육’이라는 일각의 눈총을 받기도 하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지역사회를 향해 큰 품을 내어놓은 곳이 있다.

   
▲ 느티나무어린이집 어린이들
마을길을 밟지 않고 다닐 수 있나

마을길을 밟지 않고 다닐 수 있나“어린이집 아이들이 마을길, 공간을 밟지 않고 다닐 수 있나. 이 지역에서 대대로 살아오신 분들에게 인사를 드리는 것도 당연하다.” 공동육아어린이집이 지역으로 나서게 된 이유를 유승용 평택 교육생활협동조합 전임 이사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처음에 나는 못하겠다는 조합원들이 있었지만 조합이 개인에게 하라 말라는 말까지 하지는 않는다”고. 안길진 현 이사장은 “조합원, 엄마 아빠들이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하면서 길러진 역량이 있다. 그런 것들을 지역민들과 함께 뿌리내리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택은 농촌과 도시의 중간쯤에 있다. 1999년 준비모임을 갖고, 2000년에 문을 열었다. 2001년부터는 부설 방과후가 시작됐다. 1~6학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방과후부터 오후 7시까지 아이들을 돌본다. 당시에는 평택군, 시골마을이었다. 수도권의 ‘남들과 다른 보육’을 고민하는 이들이 처음 13가구가 모였는데 출자금 150만원씩을 내고는 수도권에 갈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었다. 정처없이 헤매다가 산과 느티나무, 땅이 좀 있는 곳을 발견했다. 바로 평택시 오성면이었다. 가게도 없는 시골마을. 마을 초입에 나이많은 느티나무가 있어 이름도 느티나무로 지었다.

 

   
▲ 느티나무어린이집 입간판
미군기지 반대·도서관유치 운동 앞장

미군기지 반대·도서관유치 운동 앞장 처음 1억5000만원 정도 들여 지금의 어린이집을 지었다. 출자금으로 충당하기도 했지만 여유가 있는 조합원들이 무이자로 대출을 해주는 방식으로 자금을 조성했다. 10년 동안 매년 500~600만원을 상환해 이제 빚은 거의 없다. 몫 돈을 대출해주고 이자도 없이 10년에 걸쳐 푼돈을 받았다니 느티나무 조합원들이 이재에 밝은 사람들은 아닌 모양이다.

그 사이에 평택군은 시가 됐고, 미군기지 이전, 건축폐기물 처리장 등 지역 현안들이 있었다. 부모들이 ‘미군기지 이전 반대 집회’에 참여하는 등 한발씩 지역에 발을 딛게 됐다. 그러나 어린이집의 ‘지역참여’에는 한계가 있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졸업하면 부모도 함께 졸업을 하게 된다는 것.

“조합원들이 공감대를 가질 만하면 졸업했다. 마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이가 졸업해도 부모가 조합원으로 활동하는 형태로 바꾸어야겠다고. 그런 의미에서 오성면으로 이사를 오는 집들이 늘어났다.” 안길진 이사장의 설명이다. 초기에는 5가구만이 어린이집 근처에 살았다. 지금은 18가구가 이사와 오성면에 살고 있다. 전문직 부모들이 평택 외곽인 오성면으로 이사오기까지는 결단이 필요했을 것같다.

 

   
▲ 느티나무어린이집 어린이들
18가구, 오성면 주민이 되다

18가구, 오성면 주민이 되다느티나무 공동육아에는 어린이 24명에 18가구, 초등학교 1학년에서 6학년까지의 방과후 18명, 12가구가 참여하고 있다. 어린이집과 방과후 교사가 7명. 오성면 인구는 6000명. 젊은이들이 빠져나간 농촌에서 공동육아 어린이집에는 일할 수 있는 젊은이들이 있다는 장점을 갖게 됐다.

2009년 10주년을 기념하며 어린이집 사람들은 교육과 생활공동체 접목을 고민하게 됐다. “처음에는 우리가 행사하면서 면사무소 빌려달라고 해도 안 빌려줬다. 지금은 사무실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고, 대보름 행사나 한마당 잔치하면 천막이나 마이크까지 필요한 것은 모두 가져다준다.”

왜 그렇게 됐을까. 느티나무 사람들이 지역으로 깊숙이 들어가게 된 계기는 최근 시립 도서관 유치 싸움을 어린이집이 주도하면서다. 오성면이 미군기지 피해지역으로 분류돼 받게 된 보상금으로 당초 평택시는 200평(661m²) 도서관을 짓기로 했다. 그러나 갑자기 80평(264m²) 규모로 줄이겠다고 평택시가 말을 바꾼 것이다. 어린이집 부모들은 오성면 사람들과 함께 도서관설립위원회를 꾸렸다. 제대로 된 도서관 유치를 위해 힘을 모았고, 결국 원안대로 짓겠다는 약속을 받아낼 수 있었다. 도서관 유치 운동은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지역에서 인정받게 된 계기가 됐다.

 

   
▲ 유승용 전 이사장
2010년 지역공동체로의 도약
이런 과정을 거치며 마을도 어린이집을 받아들였고, 공동육아에서도 지역공동체를 위한 도약을 준비하게 됐다. 2010년 공동육아에서 협동조합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1년여 넘는 준비 끝에 평택교육생활협동조합 느티나무마을 창립총회가 열렸다. 어린이집 단오축제는 지역 행사가 됐다.

협동조합의 자산은 현재 어린이집 터전 360평(1190m² 건평 60평)과 약간의 현금이 전부다. 어린이집은 협동조합 설립 이전인 2010년까지는 출자금 450만원에 월 보육료가 45만원 내외였다. 방과후는 30여만원 정도. 조합이 결성되면서 출자금 없이 기부금 150만원을 내면 된다. 13년전에 비하면 땅값이 많이 올랐으니 초기 출자 조합원들이 자산 재평가를 요구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느티나무 어린이집은 조합원들이 조금씩 기금을 모아 어려운 가정의 보육료를 50%지원하는 차등보육료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10명 중 1명의 어린이가 혜택을 보고 있다.

느티나무 어린이집도 다른 공동육아처럼 대안학교로의 고민도 있었다. 2002년 초록학교라고 대안학교 준비모임을 꾸리기도 했다. 그러나 지역과 함께 ‘공교육을 바꿔’내기로 했다. 물론 대안학교 입학을 위해 지역을 떠나는 이들도 있다. 남아있는 이들은 지역 초등학교 운영위원회에 참여하고, 방과후 수업을 함께 하는 등 지역과 함께 하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안길진 이사장은 “지역 어린이들을 입학시키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는데 한글 안배운다니 마음을 접더라. 아직은 시기상조라 생각한다”며 “조금하게 생각하지 않고 천천히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 오성초교 방과후전래놀이

   
▲ 느티나무어린이집 어린이들

   
▲ 느티나무어린이집 어린이들

   
▲ 느티나무어린이집 어린이들

 


 

김진이 기자  kjini@mygo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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