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질을 높이자는 건축철학... 협동조합이 지은 집 전체 주택의 18%

 

“이곳은 섬이다. 사람들은 이곳에 살면서 영화, 합창 수업, 사우나모임 등 다양한 프로그램과 관계를 즐기고 있다. 협동조합 주택에 사는 것과 일반주택에서 사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우리는 서로 관계를 갖고 살아간다. 우리들은 옆집사람들을 다 아는 것이 옆집에 경찰이 사는 것보다 안전하다는 걸 안다.”   
꼼빠니온 스웨덴의 대표인 굼브리트 (Gum britt)씨는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주거협동조합(HSB)의 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주거협동조합의 현장을 취재하고 싶다는 기자단이 요청에 굼브리트 대표는 선뜻 자신의 집을 공개했다. 협동조합 방식으로 주거협동조합 조직 중 가장 큰 HSB에서 지은 공동주택이기 때문이다. 굼브리트 대표는 바로 전날 국제협동조합 기구인 ICA에 스웨덴 대표로 참석하기도 했다.

 

1900년대 주택난, 협동조합으로 해법

1900년대 주택난, 협동조합으로 해법우리에게 조금 생소한 주거협동조합은 1900년대 초반 급격히 진행된 산업화와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지금은 잘 사는 나라로 알려진 스웨덴은 근대 이전까지 침실과 거실, 심지어 축사 구분도 없는 열악한 집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스톡홀름으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스웨덴은 갑작스런 주택난을 겪게 됐다.
한국은  ‘주택 200만호 건설’ 등 공공적인 대책으로 주택난을 해결하는 반면 스웨덴은 동조합으로 해결하게 된다.
HSB는 1923년에 시작됐다. HSB는 입주자 혹은 예비입주자(조합원 가입자)를 회원으로 하는 소비자 조합체이다. 비영리 단체로 조합이자, 건축회사이기도 하다. 현재 스웨덴에는 55만명의 HSB 멤버가 있다. 전국에 3900여개의 입주자조합(주거권협회)으로 구성돼있다.

 

자연과 예술이 담긴 집짓기
“스웨덴 주거협동조합의 중요한 단어 세 가지가 있다. 저축, 건축, 그리고 사람들 삶과 관계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협동조합의 장점 중 하나는 협동을 하면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욕구들을 건강하게 풀고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다.”
주거협동조합의 역사와 상황을 설명하는 굼브리트 대표. HSB는 처음 주택을 건설하면서 ‘좋은 질의, 아름다운 집을 만들자’고 했다. 내년이면 HSB가 90년이 되는데 지금까지도 참여하는 건축가들은 아름다운 집을 짓자는 개념에 동의한다.
실제 둘러본 주거협동조합의 집들은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주변에 충분한 자연과 안팎으로 차고 넘칠 만큼의 예술작품들은 부럽기만 했다. 여기에는 HSB를 같이 시작한 스웬발란도라는 건축가의 역할이 컸다고 굼브리트 대표는 설명했다. 세계적 건축가였던 스웬발란도는 미국에서 협동조합 형태의 주거단지를 보고 와서 자신의 사무실을 HSB에 내어주면서 ‘같이 하자’고 제안을 했다. 취지에 공감하는 실제 공사현장의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빠른 시간에 스웨덴 전역에 집들을 지을 수 있었다고.

도시협동조합 집 20~30년 기다리기도

도시협동조합 집 20~30년 기다리기도1930~40년대에 건축관련 기업들이 자재공장들에게 HSB에 물건을 주지 말라고 요구하는 일까지 일어났지만, 지금은 서로 HSB에 물건을 공급하고 싶어 한다고.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사람들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없는 협동조합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10년 전에 주택 보험회사들이 계속 가격을 올리기에 HSB에서 독립적으로 보험을 차리게 되자 일반 보험회사들이 50% 가격을 다운시키기도 했다.”
주거협동조합을 통해 집을 얻는 일은 쉽지 않다. 매월 최저 5만원 정도의 조합비를 내고 조합에 가입해야 자격이 생기는데 스톡홀름같은 대도시는 경쟁이 치열해서 20~30년을 기다려야한다고. 외곽도시는 3~4년 정도만 기다려도 집을 차지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아기가 태어나 세례식을 할 때 할머니, 할아버지나 친척들이 조합에 가입하고 증서를 선물해주기도 한다고.  
HSB의 55만 멤버 중 10만5000명은 아직 협동조합 주택에 살지 못하고, 저축을 하는 중이다. HSB는 1920년대부터 지금까지 50만가구의 집을 지었는데 이중에서 38만 가구가 협동조합 형태이고, 나머지 12만 가구는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공주택을 위해 지은 집이다. 공공임대도 2000가구가 있다.

 

그룹회장부터 이민자, 다양한 계층 거주

그룹회장부터 이민자, 다양한 계층 거주스웨덴에서는 주거협동조합에 다양한 사람들이 산다. 볼보 회사 회장에서 한부모 가정여성까지. 굼브리트 대표가 사는 집은 약 30평(99㎡) 규모에 방이 세 개. 현재 약 10억크루나(17억원) 정도 가격이다. 매월 4000크루나(70만원)정도의 관리비를 낸다. 그가 사는 단지에는 11평(36㎡) 정도의 작은 집들도 있는데 보통 5~6억 정도 한다고. 13년전 2억크루나(3억원)였는데 3배가 오른 셈이다. 물론 외곽도시의 경우는 이보다 훨씬 저렴해 두배 큰 집을 1억~2억 내외로 살 수 있다. 이렇게 중산층, 심지어 대기업 회장까지 산다면 협동조합형 주택이 기존 영리 주택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처음 HSB가 1924년에 시작했을 때 노력한 것은 가난한 사람을 포함해 모든 사람들이 집을 사도록 하는 것이었다. 당시 작은 집, 원룸, 침실이 하나 있는 소규모의 집들을 많이 지었다. HSB는 단지 집을 짓는 것 이외에 ‘사람들이 얼마나 양질의 삶을 살아가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아름다운 집, 자존감 높인다 

아름다운 집, 자존감 높인다  1924년 당시 HSB는 처음으로 집안에 욕조가 있는 욕실을 넣었다. 당시 건축회사들은 노동자들, 작은 집에 사는 사람들에게 욕조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고.
스웬발란다씨는 ‘사람들이 일을 끝내고 돌아와 개운한 느낌을 가질 때의 행복감’을 주고 싶었다. 처음 욕조를 넣었고, 다음에는 좋은 주방, 실용적인 주방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HSB는 건축과 주택 분야의 선구자적 위치를 가질 수 있었다. “아름다운 주택에서 자란 아이들이 더 자존감이 높고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음을 연구자들이 밝혀냈다.”
그래서 야외의 경관이 중요했다. 스웬발란다씨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한다고 주장했다. 1920년~40년대로 돌아가면 당시 미술작품은 큰 형태였는데 그 작품들은 원룸이나, 침실이 하나인 집에 걸리기 어려웠다. 물론 노동자들에게 그 예술작품이 비싸기도 했다.
스웬발란다씨는 당시 화가들에게 모두 편지를 보내 ‘우리가 작은 집을 지었는데 작은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화가들은 그 취지에 공감했지만 비평가들은 화를 냈고 예술계는 난리가 났다. 그래서 1930년대부터 HSB는 작은 집에 걸릴만한 작은 예술작품 전시회를 열기 시작했다. 이 전시는 60년대까지 지속되다가 이제는 HSB의 손을 떠나 예술계에서 맡게 됐다. 처음에는 노동자들에게 예술품을 공급하려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젊은 예술가들을 격려하는 계기가 됐다.

 

협동조합은 당신을 돕는다

협동조합은 당신을 돕는다  굼브리트 대표가 남편과 사는 주택단지는 1947년도에 지었다. 그 섬에는 5~6개의 주택단지가 있는데 하나는 노인요양시설이다. 모두 협동조합에서 지었다. 남편 아르네 마텐슨(arne martenson)씨는 화학자로 은퇴 후 이곳 공공주택에서 단지 대표를 맡고 있다. 아르네씨처럼 이 섬에는 많은 은퇴한 사람들이 HSB가 지은 집에서 살면서 그들이 제안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계속 물어야한다.” 굼브리트 대표가 거듭 강조하는 원칙이다. HSB는 지역별로 갖고 있는 지역협동조합과 연계해 활동하는데 4000개의 협동조합 멤버를 31개의 지부들이 다 나눠 관리한다. HSB 스톡홀름과 여러 지부가 나눠있다. 모든 활동이나 프로그램은 철저하게 지역 기반으로 일어나고 있다. 조직 구성에서 조합원이 제일 상위에 있고, 대표인 자신의 위치가 가장 낮다며 웃는 굼브리트 대표. 스웨덴 협동조합에 위기가 예고되고 있지만 여전히 중심을 지켜나가는 활동가와 연구자들을 통해 가치를 지켜온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스웨덴 스톡홀름=김진이 기자 kjini@mygoyang.com
사진=충청리뷰 육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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