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경진학교 부모들과 교장 대치중. 빨리 오세요 연수실 입니다.”

지난 2일 오전에 배상은 경진학교 학부모회장에게 온 심상치 않은 문자 한통. 마침 지난번 교과부 앞에서 진행된 학부모시위 이후 후속보도를 준비하던 차였다. 진행 중이던 취재를 서둘러 마무리하고 경진학교로 향했다.

학교입구에 도착했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황급히 뛰쳐나온 한 경비원은 “언론을 출입시키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며 기자의 앞을 막았다. 황당했다. 21세기에 언론 통제라니. 그것도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경진학교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다행히 학교건물에서 학부모들이 여러 명 뛰어나와 기자를 데려갔다. 건장한 남자행정직원이 여러 명이 몸으로 바리케이트를 쳤지만 어떻게 뚫고 들어가 연수실에서 진행되던 학부모회 임시총회자리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이날 임시총회는 3개월 정직을 마치고 복귀하는 폭력교사 P씨의 수업할당문제와 CCTV설치를 논하는 자리었다. 하지만 9시부터 시작된 총회는 교장과의 진전없는 쳇바퀴 도는 대화 속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게다가 연수실 밖에서는 행정실장을 위시한 남자직원들이 취재 중인 기자를 끌어내겠다며 학부모(모두 어머니였다.)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총회장을 빠져나가려는 교장을 붙잡는 학부모들에게는 “교장 몸에 손대면 모두 죽여버리겠다”는 상상도 못할 폭언까지 나왔다. “행정직원이 깡패냐”며 절규하는 학부모들. 흡사 작업장에 침탈하는 구사대의 모습이었다.

난장판이 벌어지는 동안 다행히 신변보호를 위해 경찰이 도착하고 다시 학부모들과 교장과의 대화가 진행됐다. 대화 내용은 지난번 운영위원회 내용에서 진전된 것이 없었다. 학부모들의 CCTV설치요구에 교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 교과부 면담을 통해 ‘교실 내 CCTV 설치를 적극 검토하라’는 공문까지 내려왔지만 이는 권고사항일 뿐 강제력은 없다고 한다. 결국 학교장의 의지가 있어야 학부모들이 요구하는 CCTV설치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경진학교 교장은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법제처, 행안부 등에 유권해석을 받아봐야 한다”고 버텼다. 부임 이후 몇 개월째 이어온 앵무새같은 답변. 전형적인 책임회피에 불과했다. 

사실 개인적으로 CCTV설치가 폭력행위 근절의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CCTV설치는 교권침해’라는 일부 교사들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교권’에 앞서 자기방어 능력이 전무한 지적장애인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CCTV를 설치해야 한다는 학부모들의 주장이 좀 더 설득력 있다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지적장애나 발달장애를 가진 중증장애아들은 어떤 교사들로 부터든 다른 누구로 부터든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대응할 방법이 없다. 장애아를 낳은 것이 죄는 아닐 터인데 학부모들은 무슨 잘못으로 자식을 학교에 보내고도 걱정과 설움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일까? 그것도 최고의 시설을 갖췄다는 국립 경진학교에서.

가장 큰 문제는 경진학교 측의 태도다. 지금까지의 폭력사태에 대한 단호한 조치가 있었다면, 내부 구성원들의 뼈를 깎는 자정의 노력이 있었다면 현재의 극단적인 대립까지 나타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작년 비슷한 사건이 있었던 일산의 모 장애인학교는 학교 측의 적절한 조치와 내부구성원들의 자성을 통해 새롭게 거듭난 바 있다. 하지만 이날 경진학교에서 벌어진 행정직원들의 물리적, 언어폭력과 언론통제시도는 지금까지 학생·학부모들을 상대로 얼마나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해줬다. 교과부 공문조차 무시해 버릴 수 있는 저 오만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학부모들의 힘만으로 부족하다면 이제는 지역사회가 함께 나서서 이번 사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반나절이 넘는 대화 속에서도 아무런 진전이 없자 결국 학부모회장을 비롯한 몇몇 학부모들은 총회 장소에서 바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장애 아이를 낳은 내가 죄인”이라며 울부짖던 한 학부모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무쪼록 사태해결이 빠른 시간내에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남동진 기자: xelloss1156@mygo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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