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울긋불긋 단풍에 물들었다. 이름난 산마다 단풍 구경하러 사람들이 모여든다. 계절이 바뀌며 선사하는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수 있다는 건 생활 속의 작은 행복이다. 시간이나 돈에 여유가 없어도 단풍은 즐길 수 있다. 도시의 공원 나무숲, 거리에 늘어선 가로수도 단풍 옷으로 단장하기는 데이트 준비하는 아가씨와 다르지 않다. 과천 정부종합청사 주변 아파트 단지를 낀 길은 은행 단풍의 명소로 이름을 날린다. 숲 운동단체로부터 아름다운 가로수 길로 뽑혀 주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자연을 밀어내고 들어선 도시에서 나무는 이렇게 공공을 위해 봉사한다. 도시의 나무가 지닌 공익적 가치는 이렇게도 높다.

  10월이 하순으로 접어들 무렵 출근길에 일산 풍동 애니골 안쪽, 한적한 이면도로 주변 녹지대 비탈 여기저기에 참나무가 밑동을 베인 채 나뒹구는 광경이 눈에 띄었다. 여름이면 짙푸른 잎사귀들이 시원하게 그늘을 드리워 땡볕을 막아주고, 가을이면 황갈색 단풍으로 주변의 황량한 잿빛 아파트 콘크리트 숲의 삭막함을 덜어주던 나무들이다. 도토리 열매를 떨어뜨려 다람쥐 청설모에게 월동 양식을 대주던 나무들이다.

도시 생활의 답답함에 지겨워하던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봉지 들고 찾아와 주운 도토리로 쌉싸래한 묵을 쑤어 먹도록 베풀어준 나무들이다. 정부가 주택공사를 시켜 여러 농촌 마을을 밀어내고 아파트 단지를 덧붙이기 전까지는 도시를 감싸주던 숲의 일부였다. 대부분 밀려나가고 도로 사이 중간 자투리 녹지대로 초라하게 명맥을 이어가던 풍동 숲의 흔적마저 사람들은 놔두지 않았다. 녹지대에 멋대로 텃밭을 일구면서 그늘진다고 베어내거나 밑동을 도려내거나 심지어는 불까지 놓아 숯덩이로 만들기도 했다. 몰상식한 이기주의가 되풀이된 것일까?

  아니었다. 구청 공무원이 잘랐다. 비탈의 참나무가 도로 위로 벋어 쓰러질 수 있으니 제거해 달라는 민원에 따른 것이란다. 당초 3그루만 요청받았지만 현장에 와서 보니 전깃줄 위로 가지가 벋는 것도 있고 축대에 영향을 주는 것도 있어서 6그루를 더 잘랐다는 것이다. 공무원은 부서 상사들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멋대로 판단했음이 드러났다. 매일 그 길을 오가는 시민이 휑하게 빈 녹지대가 이상해서 구청에 물어 확인하기 전까지는 부서의 중간 책임 공무원조차 어디서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베어낸 참나무 9그루가 몇 년생인지도 공무원들은 확인하지 않았다. 나이테가 적어도 30~40개는 됨직한 튼실한 참나무들은 토막토막 잘린 채 길가에 며칠씩이나 널브러져 있었다.

  이 도시의 숲과 나무는 학대받고 있다. 적어도 이름만으로는 사랑의 종교인 기독교 단체 서울YMCA가 청소년캠프장 숲 가운데 골프장을 만든 지 7,8년이 되더니, 산을 도려내 골프연습장을 들이려다 시민들 반발로 발이 묶였다. 이 단체는 건너편 산의 숲도 마저 벌겋게 밀어내고 말았다. 체육시설을 들인다는 것이다. 독지가가 기증한 청소년 캠프장이 만신창이가 됐어도 고양시는 말이 없다.

계획도시 내부 도로와 상가 사이 녹지대와 가로수도 고난을 겪은 지 오래다. 밑동을 베거나 위로 벋는 줄기를 자르거나 팔처럼 벌린 가지를 쳐내 흡사 말뚝이나 꼬챙이처럼 변한 나무가 한둘이 아니다. 자기 업소 간판을 가린다는 이유를 댄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의 도시’라고 내세우기가 민망하다. 도시의 멋과 품격을 나무에서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아름다운 나무가 아름다운 도시를 이룬다. 나무도 시민이다. (*)


 - 박수택(SBS논설위원/한국환경기자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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