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곡동 '할매농장' 김형순 대표

▲ "유방암 4기를 물리친 친정어머니와 농사를 통해 힐링 삶을 누린다"는 김형순 대표(왼쪽)와 친정어머니(오른쪽)

요즘 대세는 웰빙을 넘어 힐링이다. 힐링(Healing)은 몸이나 마음의 치유를 뜻한다. 농사를 지으며 진정으로 웰빙 삶을 누린다는 김형순(57세) 대표. 김 대표는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김 대표는 9년 전 300여 평 채소 농사를 짓던 친정어머니를 화정에서 내곡동 일산생태학교 부근 농장까지 태워주던 기사 역할만 했다. 대도시 부산에서 자란 탓에 흙이나 농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친정어머니가 텃밭 일을 할 동안 우아하게 차에서 독서를 즐기곤 했던 철없는 딸이었다.

4년 전 친정어머니가 유방암 4기 말 진단을 받았다. 살 수 있는 날은 2개월 이라고 했다. 이미 폐와 간에 암세포가 전이되어 희망이 없었다.

김 대표의 친정어머니는 “병원에서 답답하니 죽더라도 밖에 나가서 죽겠다”며 “좋아하는 농사일을 마음껏 짓고 싶다”는 마지막 소원을 말하며 병원 문을 박차고 나왔다. 

김 대표는 아픈 친정어머니를 위해 배추, 콩, 고추 농사 등 2000여 평을 시작했다.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를 위해, 농사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농장 이름도 친정어머니를 위해 ‘할매농장’으로 정했다. 두 모녀는 오직 농사를 짓는 재미에 푹 빠져 살았다.

처음 농사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종자가 부실한 고추모종, 물 빠짐을 못한 무 농사, 속이 안찬 배추 등 시행착오가 계속됐다. 그렇지만 농업기술센터의 기술지원에 힘입어 유기농 친환경 농업에 도전하는 등 새로운 농사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6년 전부터는 튼실하게 잘 자란 배추를 절임 배추로 생산해 출하하고 있다. 지하암반수를 뚫어서 약수에 가까운 물에 절인 배추다. 소금은 전남 신안군 현지의 단골 어민에게 공급받아 사용한다. 윗부분을 잘라낸 대형 물탱크 5개에서 12~13시간 동안 절인 배추는 싱싱하고 아삭하다.

오랜 노하우가 쌓인 황금비율의 소금 농도로 뒤집지 않아도 잘 절여진다. 절여진 배추는 다음날 농장에서 바로 출하된다. 싱싱한 맛을 위해 택배는 절대로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올해도 1만 여 포기 절임배추가 가정집, 음식점, 회사, 교회 등 고양지역 전역으로 나갔다. 전통 음식에 관심이 많은 김 대표는 이화여대 전통음식연구소 소장으로 있는 윤숙자 교수로부터 전통음식을 전수받았다.

김 대표는 고객이 주문한 김치를 특색 있게 했는데, 단호박, 표고버섯 가루, 3년 숙성된 효소 등 몸에 좋은 자연재료를 듬뿍 넣은  찹쌀 풀에 갖은 양념으로 정성스레 버무린 건강 김치를 담가서 공급했다.

김 대표는 애지중지 여기는 전통 항아리에 담긴 14개의 효소 항아리로 건강 밥상을 차린다. 일반 콩의 2배 크기나 되는 왕태 농사를 짓기도 한다. 기계가 없어서 손으로 하나하나 심어서 재배한 콩이다. 이 콩은 맛이 구수해 청국장 만들 때 사용하고 있다. 콩뿐만 아니라 속노랑 고구마, 단호박, 무, 쌀 등을 재배하고 있다.

올해는 절임 배추 생산에 집중하면서 다른 작물의 수확을 미루어 뒀는데, 메주콩과 배추, 고구마를 도난당하고 말았다. 애써 키운 메주콩이 부족해 다시 구입해야 할 처지에 놓인 김 대표는 “한동안 속이 상해 일손을 잡을 수 없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지난 9월 13일 출범한 ‘고양전통발효식품연구회’ 회장을 맡았다. 고양을 알릴 수 있는 전통식품을 연구하며 얻은 결과를 고양시 100대 상품전, 선인장페스티벌 등 각종 축제를 통해 널리 알리는 역할을 했다. 이번 달 15일부터 23일까지는 대화동 ‘농협 고양 유통센터’에서 고양의 전통식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특별행사를 펼친다. 회원들이 직접 만든 장류 등 고양의 전통식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모든 것을 잊고 농사일에 전념한 덕분인지, 김 대표의 어머니는 유방암 4기의 사형선고를 이기고 지금 건강한 모습으로 살고 있다. 15년 전 디스크 수술을 받았던 김 대표의 허리도 이젠 거뜬해졌다. 8000평에 이르는 넓은 농지를 열심히 일구며 모녀는 경제적 여유와 건강, 그리고 행복한 삶을 찾았다. 친정어머니 몸 속의 암세포는 성장을 멈췄고, 농사의 즐거움은 통증마저 달아나게 했다.

“건강한 땅이 어머니를 살렸다”는 김형순 대표는 “선인장과 꽃 등 음식에 활용할 수 있는 식용작물로 건강한 자연의 음식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보급시켜가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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