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정치를 한다는 것은 온 국민 앞에 발가벗은 모습으로 서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먹고 살만하고 권력욕이 없는 사람들은 정치권에 들어가는 것을 꺼린다. 어지간히 깨끗하게 산 사람이 아니라면 망신거리는 꼭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뭣 때문에 나서서 망신을 자초할 것인가.

게다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별로 없는 우리 역사에서 정치인의 이미지는 흔히 말하는 건달쯤으로 보이기까지 하다. 예전엔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할 일 없이 돌아다니다 선거철이 되면 습관적으로 출마를 하는 많은 이들을 좋게 볼 리 없다. 많은 이들이 이런 이유로 정치를 극도로 싫어하고 또 정치하는 이들을 혐오하기도 한다.

흔히 기권도 하나의 의사표시라며 투표하지 않는 걸 자랑스레 얘기하기도 한다. 우리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정치참여가 이렇게 폄하되면서 정치와 담을 쌓는 게 오히려 깨끗하고 정의로운 것으로 여겨지는 건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소중한 한 표의 권리는 그냥 저절로 온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된다면 차마 그런 생각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87년 대선에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한 후로 5번째 기회를 얻었다. 참 감사한 일이다. 왕조 시대를 지나며 무수한 시민들이 피 흘린 결과 우리는 지도자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 18년 군부 독재가 깔끔하게 끝나지 못하고 또 한 번의 쿠데타로 다시 군사정권이 들어섰다. 천금 같은 직접투표권을 얻었으나 성숙하지 못한 시민들은 다시 한 번 군인에게 정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참으로 서글픈 우리의 역사다. 그렇게 흔들리면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조금씩 성장해 오고 있다.

천박한 자본주의에 물들어 도덕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가진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최악의 선택도 있었으니 좋은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되는 기회비용 치고는 끔찍한 대가를 치르기도 했다. 지난 5년을 돌아보며 많은 것을 알게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의료 민영화를 비롯한 국가의 기반이 되는 시설들을 민영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 가장 좋은 예는 일본이다. 일본은 전력산업을 민간기업인 도쿄전력에 넘김으로써 원전 폭발 사고라는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범하게 되었다. 승승장구하던 일본은 이제 모든 나라가 기피하는 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다. 개인의 기업은 최대의 이익을 얻기 위해 수익으로 돌아오지 않는 국민 안전에 투자하지 않는다. 안전에 대한 불감증 또한 심각하다. 미국의 오바마가 그토록 배우고 싶어 하는 한국의 의료보험 제도, 그러나 우리는 그와 반대로 미국식 의료보험으로 가려고 애를 쓰고 있다.

국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정책을 일일이 다 챙겨 볼 수 없으니 올바른 정치인을 뽑아야 그저 정치에 상관없이 생업에 충실 할 수 있는 것이다. 국민들이 날마다 모여 촛불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고 한미 FTA를 반대했지만 국민의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지도자를 잘못 뽑았기 때문이다. 정치가 싫다고 하지만 그 정치에 의해 우리 삶이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는지를 안다면 정치에 관심 없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는 것이다. 그건 스스로 자기가 얼마나 무지한 사람인지를 밝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 정치가 민주적으로 이 땅에 뿌리 내리기까지는 우리 다음 세대를 위해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고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윗세대들이 눈물과 피 그리고 목숨을 걸고 지켜낸 이 한 표의 소중한 권리를 함부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 후보들의 공약도 살피고 또 그 사람이 함께 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보다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꼼꼼히 살펴서 꼭 우리를 위해 일해 줄 사람에게 투표해야만 한다. 그것이 앞으로 내게 닥칠 많은 일들에 대해 책임지는 태도다. 선거에서 이긴 사람의 지지자들은 환호하고 반대자들은 슬퍼한다. 그래서 화합이 쉽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된 데는 사람들이 다분히 감정적으로 투표를 하기 때문이다.

정책(공약)을 살피고 또 사람을 보고, 보다 나은 우리의 삶을 위해 일할 사람에게 투표한다면 선거 후의 상처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세계 속 대한민국의 시대, 그 시대의 위상과 국격에 맞는 멋진 대통령의 탄생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 본다. 그것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참여 할 때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투표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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