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충남도청 정책자문위원 자격으로 한 회의에 갔더니, 회의자료로 배포한 보고서가 무려 150페이지에 달했다. 보고서를 뒤적이는 중 ‘참여소통 활성화’를 위해 주민참여제도를 연구한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참여’와 ‘소통’이라는 두 단어를 붙여 사용한 것이 이채로왔다. ‘소통’이라는 말은 지금 한국사회에서 한창 유행 중이지만, ‘참여’라는 말은 이미 전성기가 지난 단어였기 때문이다.

‘참여’가 회자되기 시작한 시절은 1990년대 민주화와 지방자치가 활성화되면서부터였다. ‘참여연대’라는 시민단체가 서울에서 생기더니, 전국적으로도 ‘참여’라는 이름을 붙인 지역단체들이 크게 늘었다. 대부분 참여와 자치를 함께 묶어 ‘참여자치...단체’ 형식의 이름을 지었다.

한국의 시민단체와 정치권에서 사용한 ‘참여’의 의미는 ‘참여민주주의’를 뜻한다. 정치인들에게 맡기는 대의민주주의, 즉 의회민주주의 만으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될 수 없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 모델이다. 1960년대 이후 활발해진 학생운동, 노동운동, 시민운동 등을 경험삼아 의회민주주의 제도의 문제점과 시민의 정치적 무관심을 극복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참여민주주의’가 성공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학생운동, 노동운동, 시민운동 모두 침체된 상태이다. 세계화와 다국적 자본의 힘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출범했던 참여자치 시민단체들은 대부분 간신히 그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참여민주주의 운동을 주도했던 시민운동가들은 제도정치권으로 진출했다. ‘참여연대’ 출신 핵심인물들이 지금은 서울시장, 민주당 국회의원, 진보정의당 국회의원, 새누리당 국민대통합위원장 등으로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서 참여민주주의 운동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 이유는 참여민주주의 운동을 서울중심으로 펼친 탓이다. 그로 인해 전국 각 지역의 자생적인 풀뿌리 참여운동은 외면과 홀대를 받았다. 참여민주주의 운동이 전국화를 표방하다 보니 회원참여 보다는 언론홍보 위주로 전개되었고, 언론의 관심이 사그러들자 운동도 동력을 잃었다.

참여민주주의 운동이 실패한 두 번째 이유는 ‘참여’에 대한 무지와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참여’를 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갖춰야할 요건을 무시하고, ‘참여’만을 강조한 것이다. 인간행동으로서 ‘참여’는 여러 과정을 거친 후 형성되는 결과적 행동으로, 반드시 거쳐야 할 선행과정이 있다. ‘정보습득(information)-관심(attention)-공감(agreement)’ 단계를 먼저 거쳐야 ‘참여’가 이뤄진다. 즉 인간이 어떤 사안에 참여하려면, 예를 들면, 유권자들은 선거일이나 후보자 등에 대해서 정보를 습득해야 하고, 그들의 능력이나 공약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하고, 그 결과 자신들이 공감하고 지지하는 후보자를 찾게 되어야만, 투표를 한다.

‘참여’의 선행조건인 ‘정보습득-관심-공감’을 충족시켜주는 주요수단이 언론이다. ‘참여’의 선행조건인 ‘정보습득-관심-공감’을 무시하거나 외면한다면 ‘참여’는 구호로만 그칠 수 밖에 없다. 지역의 주민참여운동이 성공하려면 참여의 선행조건을 충족시켜주는 지역언론이 있어야 한다.

지역언론이 부실한 곳에선 주민참여운동이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지역언론을 활성화시켜야 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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