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받았냐는 질문에“경로당에서 음식 주는데…”

남편 30년전에 보낸 채 
홀로 대화동 텃밭 일궈 
꽃 받았냐는 질문에
“경로당에서 음식 주는데…”

▲ 노모 할머니는 상추·토마토·감자를 심을 밭이랑을 고르고 있었다. 돌아가실 때까지 손에서 흙이 떠나지 않을 듯 싶었다. 할머니는 성이 노씨라는 것 외에는 이름도 가르쳐 주지 않고 얼굴도 사진에 찍히는 걸 원치 않았다.
검은색 축구화·빨간색 반코팅 목장갑·검은 비닐봉투·조그만 플라스틱 통과 쇠스랑. 씨앗을 뿌리는 농부에게는 어울리지 않은 복장이다. 거기에다 완전 무장한 듯 두건과 모자까지.

지난 12일 일산서구의 한 운동장 뒷편에서 한 할머니가 냇가 둔치에 밭을 일구고 있었다. 100여 미터 밖에서부터 인기척을 내고 왔는지 할머니는 “안녕하세요. 뭐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도 놀라거나 낯설지 않아 한다. “상추랑 감자 토마토를 조금 심었어”라며 두건속에 가려진 입이 답을 한다. 이어 “토마도(토마토)는 모종을 잘못 심었어. 방울토마토를 사왔어. 큰 토마도 모종을 사와야 하는데. 다시 가서 사와야 해”라며 낯설음을 완전히 푼다.

10여 평 남짓한 조그마한 냇가 둔치의 할머니만의 밭. 연신 손으로 호미로 번갈아 가며 풀을 뽑고 정리를 한다. 이어 제법 밭 정리를 한듯 밭고랑을 만들고 씨를 뿌린다. “무슨 씨앗이세요”라고 다시 한번 할머니에게 여쭙는다. “들깨!”라고 퉁명스러움에 가깝게 답한다. 어느새 씨앗을 모두 뿌린후 어디서 준비했는지 자연발효비료인 듯 검은 비닐봉투안의 거름도 준다. 그리고 흙을 다시 덮는다. 짧은 시간동안 등이 굽은 할머니는 빠른 손놀림으로 씨앗 뿌리기, 거름주기를 마무리한다.

“점심은 어떻게 하세요”라고 물으니 “대화동 집에 가서 먹어”라며 가까우니 자전거를 타고 움직인다고 한다. 밭과 공원의 경계로 만들어 놓은 나무 울타리 넘어 조그만  통로를 보니 빨간 자전거가 주인을 기다리듯 서있다. 할머니의 자전거다. 할머니는 조금 있으면 점심 식사를 하러 갈 시간이다. “어버이날 꽃 받으셨어요?”라고 하니 잠시 멈칫대며 “동네 경로당에서 좋은 음식 많이 주는데 뭐”라고 한다. 대답은 그걸로 끝이었다.

이날 10평 남짓한 할머니만의 밭에는 상추 두 이랑과 감자 두 이랑, 다시 심어야 할 토마토 두 이랑이 있었다. 할머니는 이날 정리한 이랑에 들깨를 심은 것이다. “자제분들한테도 상추랑 감자 좀 주세요” 짧게 물었다. “아니 이게 얼마나 된다고 나만 먹을 거 심는 거야”하며 말끝을 흐리신다.

 “매일 밭에 나오세요”라고 물었다. “동네 복지관에서 영어도 배우고 한문도 배워, 놀면 뭐해 사람은 꾸준히 배워야해. 예전엔 한문도 많이 알았는데 지금은 다 까먹었어. 그래서 배우는 건지 모르겠지만”이라고 답한다. 어린이날·어버이날·스승의 날 등이 많은 가정의 달 5월이고 해서 지금 젊은이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고 하니 “명심보감을 읽었으면 좋겠어. 부모님에게 효도를 해야지”라며 길지 않게 답을 했다. 할머니의 바삐 움직이는 손을 보니 죄송해서 “고생하세요. 신문에 나가니 복지관에서 뵈면 드릴께요”라고 말했다. 끝내 이름은 안 가르쳐 주었고 얼굴이 나오면 안된다고 한 노 모 할머니. 혹시나 하고 눈짓으로 배웅이라도 하시나 하고 몇 번 뒤를 돌아 봤지만 역시나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텃밭 가꾸는 낙은 복지관에서 배우는 영어나 한문 만큼이나 힘겹지만 재밌어 보였다.

경상도 상주가 고향인 노모 할머니. 22살에 결혼해 4남1녀의 5남매를 두었다. 30여 년 전 세살배기 막내를 엎고 서울에 올라와 홀로 5남매를 모두 키웠고, 현재 대화동에 거주하고 있다. 남편은 30여년 전 저세상으로 보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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