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의 일이다. 밤 9시30분경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현관 당직실인데요, 한 남학생이 상담을 받겠다고 찾아왔는데 올려 보내도 될까요?” “학생이요? 물론이죠, 얼른 보내세요” 라 대답하고 끊는 순간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 시간에 학생이 경찰서로 찾아와 상담을 받겠다고? 대체 무슨 일이지?

잠시 후 청소년계 사무실로 들어선 남학생은 한눈에 봐도 몹시 불안한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을 인근 N고교 1학년 P군이라고 소개하며 요즘 너무 괴로운 나머지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고 집에 가서도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여서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자마자 25분을 걸어 경찰서로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P군을 괴롭히는 상대는 같은 반 동급생이었다. 그 아이의 여자친구 사진을 단체 카카오톡으로 받은 일이 있어 이것을 삭제하지 않고 무심코 휴대폰에 저장해 두었는데 이를 우연히 본 그 동급생이 이를 추궁하며 괴롭히더니 브랜드 점퍼를 사달라고 요구하기에 친구들로부터 돈을 빌려 N브랜드(9만원) 점퍼를 사 주었다. 이후로도 그 동급생은 액수를 바꾸어 가며 지속적으로 돈을 요구하고 있어 너무나도 괴롭다는 것이었다.

P군은 “부모님이 알면 걱정 하실테니 절대 알리지 말아 줄 것과 가해자는 같은 반 동급생으로 앞으로 1년을 함께 지내야 하니 처벌은 원치 않고 단지 앞으로 더 이상 괴롭히지 않게만 해 주면 좋겠다”고 울먹이며 신신당부하였다.

나는 P군의 손을 잡으며 “내가 반드시 처리해 줄께”라고 큰소리를 쳤지만 한편으로는 ‘대체 이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이 학생이 편안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머리가 몹시 복잡해졌다.

경찰은 수사기관이 아닌가? 미성년자인 경우 가·피해자를 불문하고 보호자에게 반드시 알린 후 사건을 처리하는 것이 원칙인데 형사처벌도 원치 않고 부모님께도 알리지 말고 단지 앞으로 학교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처리해 달라니.

이런 경우 형사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며 아이가 원하는 방법대로 맞춤형 처리를 해 주지 않으면 나중에 또 다른 2차적인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 해야만 했다. 나는 잠시 P군의 눈을 바라본 후 즉시 카카오톡을 열고 불러 주는대로 가해자에게 메시지를 보내라고 요구했고 학생은 카카오톡을 열면서도 의구심과 두려움 가득한 눈길로 못미덥다는 듯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힘주어 한마디씩 말했다.
‘네가 얼마 전 옷을 사 달라고 했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네 여자친구의 사진을 간직하고 있었던 잘못을 인정하고 사 준 거야’ ‘그런데 이제는 돈마저 요구하니 더 이상 널 친구로 생각할 수 없어’ ‘그래서 학교폭력 신고를 하기로 결정하고 경찰서로 찾아왔으니 그렇게 알아’ 라는 내용으로 간결하게 정확한 메시지를 보내게 했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을까? “제발 경찰서에 신고하지만 마, 그렇게만 해 주면 다신 괴롭히지 않을게, 정말 미안하다”라는 등 카카오톡 메신저가 실시간으로 계속 날아들었고 재발 방지를 약속받은 후  P군과 나는 마주보며 빙그레 웃었다.

“경찰에 오면 바로 해결 된다는 말이 맞았지? 그걸 언제나 잊지마라“라고 하자 P군은 ”고맙습니다“라고 뛸 듯이 기뻐하며 처음 사무실에 들어올 때와는  확연히 다른 편안한 얼굴로 문을 박차고 뛰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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