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로 허리가 휘든 시절에는 “환경”이란 용어는 국어사전적 이해로 “생활체를 둘러싸고 있는 일체의 사물, 유기체에 직접 간접으로 영향을 주는 모든 것” 그 이상 도 그이하도 아닌 용어였다. “용어”란 “그 시대의 사상과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 정부 조직에 1994년 12월 21일 처음 환경부가 등장하였다.

2010년 2월 26일 신문에는 “1960-1970년대 우리나라 고도성장기에 수질오염 등 공해문 제를 연구 조사해 발표하여 국내에서 공해문제를 가장 먼저 일깨운 선각자이며 환경운동가로서 단연 태두인 권숙표(사진) 연세대 의대 명예교수가 25일 향년 90세로 타계했다.“라는  기사다. 1968년부터 18년 동안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 초대 소장을 지냈으며 은퇴 후에는 환경운동에 나서, 92년 환경운동연합의 전신인 공해추방운동연합 고문직을, 2002년엔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에서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과 함께 공동위원장을 지냈다.
그러나 이 시장의 반환경적 일방통행에 항의해 2004년엔 공동위원장 자리를 사임했다

18년 동안 재직했든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 초대 소장 은퇴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학자로써 연구 조사한 연구논문을 정부가 강제로  발표를 못하게 할 때 학자의 양심으로 자괴감에 무척 괴롭고 힘들었다”면서 전두환 정권시절의 환경학자로서 고도성장에 걸림돌이 될것을 염려한  정치적 독재가, 순수 학문하는 공해문제를 연구한 양심적인 학자에 대한 또 다른 독재의 억압하는 한 모습을 일러주었다.

그 당시 가수 정수라는 “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  “원하는 것은 무엇이건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어”라는 마치 에덴동산 같은 가사의 “아아! 대한민국”이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이시대의 아이러니였다.

2013년 5월 18일 “여성, 환경운동 대모 박영숙 선생 향년 81세로 별세” 기사가 났다.
1955년 나눔, 섬김, 생명살림을 실천 목표로 하는 YWCA활동을 시작으로 당시의 사회적 약자였든 여성과, 생명을 살리는 환경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 유엔환경개발회의 한국위원회 공동대표, 녹색연합 공동대표, 사단법인 한국환경 사회정책연구소 소장으로 일했다 

휘발유를 절약하려 그 많은 단체장의 바쁜 생활에서도 “나는 BMW(버스Bus,지하철Metro,도보Walk)를 몰고 다닌다며 평생 자가용을 소유하지 않았고, 2008년에 “선풍기가 제법 시원하더라”라며 그때까지 에어컨은 물론 선풍기가 없이 사셨던 일화도 있다.

환경운동의 대모, 
박. 영. 숙
당신은 가장 아름다운 투사였습니다.
이제 그 소임은 우리의 몫입니다.

신문에 난 애도 광고 문구가 가슴을 크고 강하게 울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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