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청소년가족을 위한 자원봉사를 할 때 학교에서 같은 반 학생을 때려 문제가 된 중학생을 만났다. 사건이 발생하자 급우의 신고로 바로 담임선생님이 알게 되었고 호출을 받고 놀란 어머니가 면담을 요청해 만난 것이다. 의례적인 대화를 이어가면서 폭력 대상이 된 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피해학생이 안 됐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고개를 숙이고 한참 있더니 가해학생은 “불쌍해요. 그런데 나도 불쌍해요”라고 말했다.

나는 말했다. “너도 불쌍하고 말고, 너는 불행해 불쌍하단다. 공부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 불행하고,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절교를 선언해 불행하지. 삶의 무게가 무거워 술을 드시고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때문에 불행하고, 네 마음의 아픔을 알기 두려워하는 어머니 때문에 불행하지. 사회가 성취 중심이고 경쟁이 치열하여 부모님도 학교 선생님도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전전긍긍하다보니 너의 마음을 함께 들여다 봐줄 어른이 없어 너는 불행하고 불쌍하단다”라고.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힘든 것을 말할 것도 없지만 가해자 역시 사람과 관계에서 갈등을 겪고 마음의 지옥을 경험하는 청소년이다. 순박했던 마음이 어떤 이유에서든 상처를 입으면서 강퍅해지고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감각해지며 약한 상대에게 괴롭히고 마음이 점점 더 삐뚤어진다. 교실에서 무시당하고 동네에서 무시당하고 사회가 나를 인정해주는 곳이 없을 때 피해학생에게 고통을 주면서 가해자도 피해자도 망가져가는 것이다.

2000년대 초에 초등학교 아들이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되었고 가족 전체의 상처가 너무 커져서 결국 해외이민을 선택한 가족이 있다. 그런데 이민을 간 지역에도 한국 유학생이 많이 있었는데 너무 교묘하게 한국 유학생이 아들을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툭 치고 지나가는 등 사소해 보이는 행동을 학교 교사가 바로 발견했고 가해학생은 피해학생의 10m이내 금지 명령을 내렸다. 만일 위반 시 퇴학시킨다는 교칙이 적용되어 피해학생을 완전히 보호했고 가해학생의 단순 가학적 행동도 근절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나라는 학교폭력이 대중매체에 보도되면 그 때부터 가해학생을 대상으로 한 마녀사냥이 시작된다. 물론 피해학생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준 것에 대해서는 사회의 지탄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상황이 그렇게 악화되도록 방치한 것은 우리 모두라는 것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수학여행을 가는 고등학교 학생 무리를 물끄러미 본 적이 있다. 한 학생이 핫도그를 사서 들고 오는데 주변에 지나가는 학생이 너도 나도 한입씩 먹더니 결국 핫도그를 산 학생은 간신히 한입을 먹는 것을 보았다. 체격도 작고 약해보이는 학생이었다. 다른 아이가 들고 있는 핫도그는 그대로 지나치면서 한 학생의 몫을 집중적으로 뺏는 것이다. 이것이 학교 폭력이다.

학교 폭력의 예방은 다른 사람의 인권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어떤 형태든지 다른 사람의 권한을 침범하는 것은 폭력이라는 지침 하에 가해학생의 마음이 변화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사소해 보이는 권한 침입에 대해 교사와 부모 및 사회가 아이들을 방치하는 동안 가해학생의 폭력성을 커간다. 가해학생의 마음 속 잡초를 미리 제거하지 않으면 어느 날 갑자기 사회의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은 가해학생은 물론 우리 모두를 위해 불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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