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지산은 원흥동 나무드머리 마을에 위치한 야트막한 산이다. 이 산의 동쪽 기슭에 ‘경기도 문화재 자료 제64호’로 지정된 신라 말 고려 초기 청자터가 있다. 이 청자터는 1937년 조선총독부에 근무하던 일본인 도자사학자(陶瓷史學者)인 ‘야수건’(野守健)에 의해 발견됐다. 건지산 근처에는 원흥동 청자터 외에도 사기막골, 사기골 등의 지명도 있는데, 이런 지명으로 봐서 이 지역이 옛날부터 도자기를 굽는 가마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것을 반증하듯이 이 지역에서는 아직도 갑발류나, 벽돌, 청자파편 등이 출토되고 있다.

원흥동, 다시 말해 나무드머리라는 지명의 뜻은 도자기를 굽기 위해 나무를 많이 쓰다 보니 ‘나무가 드문 마을’이라는 의미가 붙어 나무드머리라는 지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처럼 원흥동 청자 가마터는 우리나라 청자 역사로 볼 때에도 아주 의미 있는 유적지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역사적 유적지가 거의 방치되다시피 놓여 있다. 더군다나 현재 그 주변으로는 한창 삼송지구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자칫 잘못 하다가는 청자 가마터의 존재가 개발로 인해 더 많이 훼손될까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예전 대구예술대 리승철 교수는 원흥동 청자터를 둘러보고 “원흥동 신라 말 고려 초기 청자요는 고려청자가 중국의 영향을 받기 이전 청자의 모습과 역사를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한 곳에 다섯, 여섯 개의 가마터가 있었다는 사실로 보아 이 지역이 수도의 변방이 아닌 문화적으로 발전한 곳인지를 평가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라고 했다. 리 교수는 이에 덧붙여 이런 말도 하였다. “광주나 강진에서는 가마터를 잘 복원해 관광지로 인기를 높이고 있는데, 고양시가 다섯 여섯 개중 하나라도 복원해 고양시의 명소로 조성하지는 못할 망정 관리마저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고 한탄을 했다.

이 교수의 지적이 아니라도 고양시의 문화재 관리는 엉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흥동 청자가마터는 행정 당국의 관리도 문제지만, 지역주민들의 지역 이기주의도 한 몫 거든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원흥동 청자가마터가 더 이상 행정 당국의 무관심과 개발의 논리에 밀려 방치 되고 푸대접을 받아서는 안 된다. 지금부터라도 그 지역을 유적 보존 지역으로 지정하여 원형을 보존하여야 한다. 그리고 원흥동 청자가마터에 대한 학술 조사와 함께 가마터 원형 복원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손쉽게 할 수 있는 청자가마터에 대한 안내판을 설치하는 배려를 보여야 한다.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청자의 발생사적 흐름에서 유추해 보아도 중국의 도공들이 처음 들어오던 개경에서 출발하여 봉천, 시흥, 용인 그리고 고양시의 원흥동에 청자요를 설치해 도자기를 생산하다, 더 좋은 흙을 찾아 남쪽 해안까지 이른 것으로 추측한다.

어떻게 보면 전남 강진보다 더 훌륭한 청자를 만들었을 원흥동 청자가마터. 그러나 오늘날 그 명암은 엇갈려 강진에서는 강진청자 축제를 열어 강진청자를 홍보를 하고 있는데, 우리 원흥동 청자가마터는 방치되고 애물단지로 취급되고 심지어는 생활쓰레기마저 버리는 오욕을 당하고 있으니 어찌 한스럽지 않은가.

청자의 비색을 위하여 불철주야 노력했을 도공의 숨결이 묻어있는 원흥동 청자가마터. 무려 1000여 년의 도도한 세월 속에 묻혀 홀대받고 무관심 속에 방치되다시피 버려져 있는 원흥동 청자가마터를 더 이상 저대로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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