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병철 음악평론가 기획연재 문학과 음악의 만남<5> 하인리히 하이네 / 프리드리히 질혀 <로렐라이>

독일의 서남부에서 서북부를 관통하며 1,326km의 흐름을 쉬지 않는 라인강. 다양한 관점에서 독일이란 나라의 상징성을 갖고 있는 라인강은 곳곳에 아기자기한 풍광을 빚어 놓으면서 나그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 숱한 절경들 가운데서도 단연코 첫손에 꼽히는 곳이 로렐라이 언덕 부근이다. 라인강의 물살이 이 지역에 다다르면 갑자기 강폭이 좁아지면서 급하게 감돌아 흐르게 되는데, 바로 여기에 132m의 높이로 솟아 있는 바위 언덕이 로렐라이(Lorellei)다.

로렐라이를 안고 굽이치는 라인강변의 양안에는 도로와 철길이 나란히 달리면서 절승을 탐하느라 숨이 가쁘다. 그러나 암초와 급류, 깊은 수심으로 이루어진 로렐라이 주변 풍경이 그렇게 로맨틱하지 만은 않다. 특히 유람선으로 여행하는 뱃길에서는 사고가 잦아 각별히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아름다운 모순’ 이기도 하다. 바로 ‘로렐라이의 노래’에 나오는 ‘요정의 유혹’ 때문이다.

전설에서 문학으로 다시 태어난 로렐라이
그 시를 쓴 시인이 바로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 1797-1856)다. 일찍이 괴테를 비롯하여 프랑스의 빅토르 위고, 영국의 고든 바이런 등이 찾아와 로렐라이를 노래했지만, 그 어느 누구도 하이네 만큼 로렐라이에 흠뻑 도취했던 시인은 없다. 우리가 잘 아는 ‘로렐라이’란 노래도 하이네의 시에 따른다.  

하이네는 1827년에 <노래의 책>이라는 일련의 시들을 묶은 시집을 발표한 바 있다. 이 시집은 독일 낭만파 시인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 하이네의 절창(絶唱)을 집대성한 것으로 그 중 제3부 ‘귀향’의 두 번째에 나오는 시가 바로 ‘로렐라이의 노래’다. 이 시는 라인강에 전해내려 오는 전설을 기초로 하여 극히 아름다운 언어들을 동원해서 서정조로 노래한 작품이다.

하이네는 라인강이 강폭을 넓혀 흐르는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의 문학적 밑바닥에는 라인에 대한 그리움이 본능적으로 묻어나 있다. 다시 말하자면 그의 시심(詩心)에는 언제나 라인강에 대한 회귀본능이 도사리고 있어서 무의식적으로 라인 예찬을 시화(詩化)시킨 작품이 많다. 하이네의 원시(原詩)는 다음과 같다.

       옛날부터 전해오는 쓸쓸한 이 말이
       가슴 속에 그립게도 끝없이 떠오른다
       구름 걷힌 하늘 아래 고요한 라인강
       저녁빛이 찬란하다 로렐라이 언덕
       저편 언덕 바위 위에 어여쁜 그 색시
       황금빛이 빛나는 옷 보기에도 황홀해
       고운 노래 부르면서 부르는 그 노래
       마음을 끄는 이상한 힘 노래에 흐른다
       오고 가는 사공이 정신을 잃고서
       그 색시 바라보다 정신을 잃었네
       배와 함께 사공은 슬픈 혼이 되었네
       아 이상타 마음을 끄는 로렐라이 언덕

이 3연의 짧은 시에 지금 우리가 즐겨 노래부르는 것과 같은 곡을 붙인 사람은 독일의 작곡가 프리드리히 질허(Friedrich Silcher, 1789-1860)이다.
     
로렐라이 한곡으로 영원한 작곡가 질허
그는 기라성같은 거장들이 즐비한 독일의 작곡가들 틈에서 겨우 ‘로렐라이’ 한 곡으로 그 이름을 남기고 있지만, 이 노래 한 곡은 독일을 알리는데 있어서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에 뒤지지 않는다. 주로 독일의 민요시를 바탕으로 작곡을 했던 질허가 하이네의 시를 읽고 여기에 곡을 붙인 것은 하이네가 아직 살아 있을 때였다.

독일 제국주의에 반기를 들었던 유태계 독일인 하이네는 프랑스에 망명하여 결국 파리에서 임종을 맞았다. 그가 죽기 전에 병상에 누워 있을 때 ‘로렐라이’ 곡을  듣고 싶다고 하자 쾰른 출신의 가수 한 사람이 파리로 달려가 이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준 뒤에야 평안하게 눈을 감았다고 한다. 질허라는 음악가의 이름을 고스란히 안고서 거기에 하이네의 시어(詩語)를 투명하게 반사시키며 구불구불 협곡을 흘러가는 라인강의 흐름이야 말로 로렐라이 때문에 더욱 유명한 강이 되었음은 이제 보편화된 사실이다. 신이 빚어 놓은 자연에다가 인간의 예술혼이 정갈하게 교합(交合)하여 이토록 아름다운 가락을 덧붙여 흐르게 한 것이다. 

뱃사람을 홀려서 노래를 부르고, 그 노래를 듣다가 결국 물에 빠져 죽게 되는 설화는 라인강 말고도 이탈리아의 나폴리 해안에 시렌느(Sirene)의 신화로 살아 있다. 나폴리 해안을 항해하는 선원들이 마음을 홀리는 노래를 듣다가 그 노래에 넋을 잃고 익사하고마는 고대 그리스 신화가 그것이다. 그러나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온몸을 밧줄로 묶어서 그 노래의 유혹을 이겨냈기 때문에 그를 유혹하지 못한 시렌느가 오히려 물에 빠져 죽어버렸다는 역설적 신화가 나폴리 해안에 아직도 살아 있다. 경적을 울리는 소리를 영어로 싸이렌(Siren)이라고 하는 것도 이 신화에서 유래한 말이다.

하이네는 죽어서 결국 라인강에 묻히지 못하고 파리의 몽마르트르 묘지에 묻혀 있다. 작곡자인 질허도 로렐라이 하나로 그 이름을 남겼지만, 그의 육신은 지금 튀빙겐에 묻혀 있다. 그러나 라인강을 멀리 떠나 각각 다른 처소에 시인과 작곡가의 육신이 누워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영혼만큼은 이 영원한 라인의 골짜기를 떠돌 것임에 틀림없다. 그 누구보다도 라인을 사랑했고, 노래했던 사람이 하이네였고 질허가 아니었던가. 따라서 라인의 골짜기는 그들의 영원한 안식처일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몽마르트르의 하이네 묘지에 세워진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싯귀 한 구절이 새겨져 있어서 그를 찾는 순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방랑에 지친 나그네가 마지막 쉴 곳은 어디인가. 남국의 야자수 그늘 밑일까?
아니야, 라인강변의 보리수나무 아래일거야”

음악평론가 선병철 sunclassic@hanmail.net
문의 010-5254-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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