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이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6.25와 6.15이다. 6.25가 전쟁을 통해 분단이 시작된 날이었다면 6.15는 남북이 공동선언을 통해 고착화된 분단의 벽을 허물고자 한 날이다. 이처럼 기념할만한 두 날이 공교롭게도 6월에 함께 들어 있지만 이 두 날이 그 의미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던 그 해빙의 기운도 잠시뿐,  그 뒤 다시 갈라진 남과 북은 오늘날 기념행사마저 서로 각각 치르고 있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

금년이라고 해서 변한 것은 없었다. 금년엔 그래도 당국회담 제의 등으로 마치 다시 봄이 올 것처럼 보였지만, 그마저도 본격적인 대화를 나누기도 전에 참석자 따위를 따지다가 다시 중단된 상태이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평화 통일을 고대하는 국민들의 기대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대화의 장에 나섰던 것 아니었나 하는 의구심까지 들 정도이다. 그렇게 금년 6월도 아무런 소득도 없이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도 남북의 두 정상이 손을 맞잡고 공동 선언을 발표하던 2000년 6월 15일의 그 감격과 기대를 잊지 못하고 있다. 당시 합의한 사항은 모두 4개 항목으로 간단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우리가 원하는 평화 통일의 기본적 골격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첫째 항에는 우리의 통일을 분단의 주범인 외세에 맡기지 말고 우리끼리 스스로 해결해 나가자는 자주적 의지가 담겨 있으며, 둘째 항에는 그에 대한 방향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셋째 항과 넷째 항으로 넘어오면 이번엔 이를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 하는 방법까지 정확하게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 뒤 남과 북은 정말 그 합의에 따라 활발하고 성실하게 서로 교류했으며 협력했다. 민족의 염원인 통일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듯 했다. 물론 작은 갈등이 이따금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민족 대단결이라는 큰 명제 아래 그것은 곧 묻히고 말았다.

그때 나타난 것이 ‘한반도’깃발이었다. 흰 바탕에 청색으로 한반도를 그려놓은 그 깃발이 처음 본 사람들에게는 낯설음을 주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단순하기 짝이 없는 그것은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가 지니고 있던 분단의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바꾸어버렸다. 운동장과 스탠드를 가득 메운 그 깃발에서는 분단의 냄새를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오직 통일을 열망하는 푸른 물결만이 출렁거릴 뿐이었다. 그 깃발은 그렇게 남북이 하나가 되어서 지구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그것이 펄럭이는 곳에는 하나가 된 남북의 선수와 관중들이 땀범벅이 된 채 서로 얼싸안았다. 모두 꿈을 꾸는 것 같은 행복한 얼굴들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그때뿐이었다. 통일을 갈망하던 사람들의 기대는 정권이 바뀌면서 다시 휴면상태로 들어갔다. 대화를 앞세우고는 있지만, 서로 상대를 비방하고 적대시하는 대치 국면으로 다시 후퇴해버린 것이다. 한쪽은 핵을 들고, 또 한쪽은 경제적 우위를 머리에 이고 서로 견지하는 모양새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970년대 이전의 냉전시대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왜 무엇이 우리의 사이를 이렇게 다시 후퇴시킨 것일까. 하지만 우리는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 온 누리에 펄럭이던 ‘한반도’기…….

그때 그 감격이 우리 안에 살아 있는 한 우리는 희망을 놓지 않을 것이다. 이는 나폴레옹의 말처럼 희망이야말로 누구도 막지 못할 우리의 마지막 무기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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