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종서 교수

▲ 소나타·산타페 시리즈를 디자인한 박종서 교수는 “덕양구 향동동에 문을 열 예정인 자동차 디자인 뮤지엄에 자동차 디자인과 관련 어렵게 모은 물품을 전시할 계획”이다.

자동차 디자인의 권위자
덕양구 향동동에
자동차 디자인 뮤지엄 오픈 예정

“디자인 없어도 산다”고 말하는 박종서 교수. 필부가 이런 말을 해도 당장 반박을 당할 ‘디자인 천지’에 살고 있는데, 우리나라 자동차 디자인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박종서 교수가 이렇게 말을 한다. 박 교수는 25년 간 현대자동차 디자인 책임자였고, 전경련 디자인 특별위원회 실무 위원장, 산업디자인 협회장 등을 거쳐 전 현대기아자동차 디자인연구소장과 부사장까지 지내며 대통령 표창,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올 초에 10여 년 몸담고 있던 국민대학교 테크노 디자인 전문대학원 원장을 지내고 조형대학 교수로 정년퇴임했다. 그 유명한 티뷰론과 소나타·산타페 시리즈 등 2008년 이전 생산된 현대 기아자동차가 그의 손에서 디자인 됐다.  그러나 그의 책 ‘자연에서 배우는 디자인 - 꼴, 좋다’를 읽어보니 자신의 이력을 이렇게 드러내길 절대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 “자신은 인생을 물구나무 선, 거꾸로 선 인생을 살아왔다며 가장 완벽한 디자인은 자연 속에 있었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명예욕을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긴팔 옷을 입어도 덥지 않은 선선한 초가을 날, 덕양구 대자동에 있는 박 교수의 작업실에 찾아갔다. 큰 창고 안에서 커다란 장난감 스포츠카를 만들고 있었다. 왠지 어디서 본 듯한 낯설지 않은 차지만 이름을 알 수 없었다. “이 차가 1938년 당시 6대 밖에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알파로메오이고, 이 차가 1958년식 페라리250 테스타로사”라는 말을 듣고서도 낯설다. 

박 교수는 이곳에서 실물과 똑같은 크기와 모양으로 옛날 클래식카를 1대1 크기로 제작하는데, 거의 10년째 매달리고 있다. “자동차 디자인 뮤지엄을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든 작품들을 2015년 덕양구 향동동에 문을 열 예정인 자동차 디자인 뮤지엄에 전시할 계획이다. 900여 평 부지에 전시할 손으로 직접 자동차를 그렸던 제도기를 포함해 어렵게 모은 200여 점의 전시물을 모아두고 뮤지엄을 착공까지 했지만 진입로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금 현대자동차에도 없는, 전설의 자동차 ‘포니’ 원형의 1대1 크기 엔지니어링 도면도 구했다. 포니를 설계한 이탈리아 출신인 산업디자인의 거장 쥬지아로에게 직접 부탁한 것이다. 

“디자인을 하다보면 자료가 많이 생기는데 이 자료를 그대로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마침 이탈리아 자동차 박물관에 갔다가 박물관 공사로 인해 ‘천막 박물관’에서 전시물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이때 “정리되지 않은 많은 자료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것을 목격했다”며, “자료들을 모아서 전시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2월 교수직을 정년퇴임한 후 이 작업장에서 클래식카 원형 복원에 집중하고 있다. “옛날 장인들은 머리와 감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이 모델들은 도면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도 역시 옛날 장인들처럼 물푸레나무를 증기로 쪄서 아름다운 자동차의 곡선을 만들고, 그 위에 알루미늄판을 댄 후 망치로 일일이 두들겨 모양을 만들고 있다.

박 교수는 “이 차를 제외하고 자동차 디자인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도면도 없이 페라리를 만든 장인들이 자연의 아름다움에서 페라리를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디자인이란 “자연의 본성을 따르는 단순함과 아름다움의 절제”라고 한다. 하지만 의식적인 ‘디자인’이 들어가면서 “형태는 기능을 따르지 못하고, 오히려 그 기능을 잃어버리고 만다”며 안타까워한다. 그래서 “디자인 없어도 산다”는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는 자동차 디자인 뮤지엄을 아이들이 산 경험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디자이너가 되려면 흙도 만져보고, 풀도 깎아보고, 하여간 많은 경험이 필요한데 요즈음 학생들은 꼭 필요하지 않은 영어와 그림 그리기만 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체험을 할 수 있는 그런 뮤지엄을 구상하고 있다. 또한 작은 시골학교 아이들에게 자연을 닮은 디자인을 교육하고 싶어하는 박종서 교수. “앞으로 최소한 100회 정도는 자발적으로 강의를 할 계획”이라고 한다. 남을 돕고 사랑하며 자유롭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손해보고 살면 인간관계에 성공하고 그러면 복이  따라온다”고 귀뜸해준다. 우리나라 자동차 디자인계의 거목인 박교수가 해준 그 말에서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들꽃의 숨은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갑자기, 자동차 디자인 뮤지엄이 개관하는 그 날이 손꼽아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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