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600년, 지역의 문화유산 환수를 위해 ④다시 찾아야 할 고양시 문화유산 - 혼일강리도

▲ 이무 선생 등이 1402년에 제작한 혼일강리도는 유럽과 아프리카를 지도에 포함시키는 등 당시의 탁월한 세계지리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다.

혼일강리도는 태종 2년(1402년)에 이무, 김사형 등이 제작한 세계지도이다. 특히 지도 제작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이무는 고양과 인연이 많다. 덕양구 주교동에 이무의 재실과 묘가 있다. 덕양구 주교동 산(일명 ‘영글이산’) 75번지에 있는 이무의 묘는 1986년 6월 16일 고양시 향토유적 제9호로 지정됐다. 뿐만 아니라 이무의 후손인 단양이씨 문중도 고양에 100여 세대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단양이씨 31대손인 이영찬 고양향교 전교는 “이무 선생의 묘 주변의 주교동 영글이산 일대는 조선초 공훈으로 조정으로부터 받은 땅”이라고 말했다.

이무가 제작한 혼일강리도(원래 명칭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유럽은 물론 아프리카까지 나타난, 1402년 제작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세계지도다. 혼일강리도는 100여 개의 유럽 지명과 35개의 아프리카 지명이 나타나 있다. 이러한 혼일강리도는 현재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지만, 이 혼일강리도는 고 이찬 서울대 교수가 일본 교토에 있는 류코쿠(龍谷)대학이 보관하고 있는 혼일강리도를 필사한 것이다. 올해 ‘고양600년’을 맞아 고양시는 고양의 소중한 문화유산과 역사를 복원하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여기에는 ‘고양’의 이름으로 북한산성을 유네스코에 등재한다든지, 북한산의 산영루를 복원한다든지, 일본에 있는 육각정을 환수하는 작업이 포함된다. 고양과 인연이 많은 이무의 ‘혼일강리도’를 빼놓을 이유가 없다. 기획기사 ‘고양600년, 지역의 문화유산 환수를 위해’ 이번호는 일본의 류코쿠 대학에서 관리하고 있는 혼일강리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바다에 둘러싸인 아프리카 묘사 
1402년 제작된 혼일강리도는 아시아·유럽·아프리카를 포함하는 세계지도다. 혼일강리도가 세계지리학계에서 ‘명품’으로 극찬받는 이유는 아프리카라는 대륙에 대한 탁월한 인식 때문이다. 아프리카 남단이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형상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지리상식과 일치한다.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 케이프타운 맨 끝에 있는 ‘희망봉’이 1488년 포르투갈의 항해자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발견된 것보다 86년이나 앞서 아프리카를 바다로 둘러싸인 대륙으로 인식한 것이다. 혼일강리도보다 80년 뒤인 1482년 독일의 요하네 슈니처가 만든 세계지도에는 아프리카가 남극과 닿아있어 바다에 둘러싸여 있지 않은 형상으로 되어 있다. 이 지도에서 바다는 아프리카 대륙 때문에 둘로 쪼개져 있다. 

아프리카 땅을 밟아본 일이 없는 1402년 당시의 조선인이 어떻게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을까. 고지도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유럽인들과 달리 아랍인들은 아프리카 대륙에 대해 비교적 정확한 지리적 인식을 갖고 있었고, 이러한 지리 인식은 몽골 제국에 의해 동아시아지역으로 전파됐다는 설로 설명할 수 있다. 조지형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는 “혼일강리도 이전의 세계지도는 아프리카 남단을 역삼각형으로 그린, 즉 인도양과 대서양이 연결된, 그래서 대서양에서 출발해서 인도양으로 건너 올 수 있는 형태로 그려진 지도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고 말한다.

▲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혼일강리도 판본을 관리하고 있는 류코쿠 대학. 학계에서는 이 대학 도서관이 관리하고 있는 혼일강리도는 1402년에 제작된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류코쿠본, 명백히 조선인이 제작” 
혼일강리도가 있다는 일본의 류코쿠 대학은 1639년에 설립된 불교계열의 사립학교다. 고풍스러움을 풍겨낼 것이라는 예상 그대로 지난달 26일 취재차 찾아간 류코쿠 대학에 대한 첫인상은 1000년 이상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다운 차분하고 옛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혼일강리도가 있다는 이 학교 도서관은 외부인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었다. 이 학교 한인 유학생인 박영규(28세·국제문화학부 2년) 학생이 도서관 직원으로부터 들은 바로는, “혼일강리도 원본과 사본이 도서관에 모두 있다. 원본은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고, 사본은 학술대회가 열릴 때 관련 학자에게만 일시적으로 공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도서관 직원이 말한 ‘원본’은 태종 2년인 1402년 이무, 김사형이 최초 제작한 혼일강리도 최초 판본이 아니다. 태종 2년인 1402년 최초 제작된 혼일강리도는 원본을 바탕으로 후대에도 조금씩 여러번 개정됐다. 즉 1402년 이후에도 후대의 왕이 지리조사를 다시 해서 수정해야할 부분만 고쳐서 갱신한 여러 버전의 혼일강리도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일본 교토에 있는 류코쿠 대학이 현재 소장하고 있는 혼일강리도는 1402년에 만들어진 혼일강리도 원본이 아니라 1402년 이후 만들어진 개정된 여러 혼일강리도 중의 하나다. 지도 개정작업은 일본인이 아니라 조선인에 의한 것이다. 조지형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는 “당시 일본의 지리지식은 혼일강리도 류코쿠본에 나와 있는 것처럼 조선의 군현의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는 수준이 못 된다. 혼일강리도 류코쿠본은 조선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명백하다”고 말했다. 혼일강리도가 일본으로 넘어가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추정되는 이야기만 전해내려올 뿐 역사적 사실로 검증된 바는 없다.  
▲ 혼일강리도를 제작한 이무의 후손으로 단양이씨 31대손인 이영찬 고양향교 전교가 이무의 묘를 가리키고 있다.


“혼일강리도 원본 존재하지 않아”
조지형 교수는 “1402년에 만들어진 혼일강리도 원본은 어디에도 현존하지 않는다. 류코쿠 대학에서 현재 보유하고 있는 것은 1402년 것이 아니라, 1481년~1486년 사이에 제작된 판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도서관 직원이 말한 ‘사본’은 일본 학자에 의해 10여년의 연구를 통해 물질적 검토 및 연구를 통해 제작됐다. 조지형 교수는 “류코쿠본 사본은 1481년~1486년 사이에 제작된 판본을 원본으로 한 사본이다. 류코쿠본 사본은 비단으로 쓰여진 지명 등을 엄청나게 자세한 현미경과 사진기로 촬영해 글자의 번짐, 탈색 등을 분석한 후에 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조지형 교수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의 제작시기 - 류코쿠본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강리도의 원도는 현존하지 않으며, 현재 4개의 필사된 사본만이 전해진다. 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류코구대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 텐리대의 대명국도, 구마모토 혼묘지의 대명국지도, 그리고 사마바라 혼코지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地圖)가 바로 그것이다. 이중에서 세로 171cm, 가로 164cm의 채색지도인 류코쿠본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며, 나머지의 사본은 16세기 후반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조지형 교수는 이 논문에서 류코쿠본에 나타난 조선의 지명을 근거로 ‘1481년 2월 8일부터 1485년 11월 28일 사이의 기간에 제작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조지형 교수가 이처럼 류코쿠본의 제작시기를 밝혀낸 데에는 “경기 수군절도사의 혁파분만 아니라 평안도 강동의 복현이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고 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취재한 결과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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